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때굴 Jan 11. 2024

언제까지나 얼죽아

아메리카노 한 잔의 힘

어쩌면 사람은 정말 사소한 것에서부터 지금을 살아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때 마음을 현재에 두는 최고의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적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과거를 떠올리니 후회만 남고, 미래를 생각하니 걱정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순간에 충실하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해 봤는데, 사실 별 소용은 없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너 학생 때로 돌아갈 수 있으면 갈래?’를 주제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로또 번호를 외워갈 수 있냐, 수능 답안지를 보고 가도 되냐처럼 ‘인생역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돌아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살겠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학주의 눈을 피하느라 등교할 때 차가운 ‘아아’ 한 잔 사갈 수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나와 친구들은 대부분, 학생은 단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고집스레 자리 잡은 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교복을 수선한다거나 비싼 아메리카노를 턱턱 사 마시는 건 학생다움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한 여름에도 무릎을 덮고도 기장이 한참 더 남는 치마를 입고 땀을 흘려야 했고, 아무리 피곤해도 500원짜리 비타민 음료 한 캔을 뽑아 마시면서 밤 11시까지 학교에 남아있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키가 작다는 핑계로 최대한 짧은 기장의 바지만 입고 다녔고 하루에 커피만 3잔씩 마시기도 했다.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짧은 옷과 커피가 ‘어른’의 상징이라도 된 듯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6시간씩 서 있을 때도 그랬다. 같이 일하는 친구와 얼음 동동 띄운 커피를 마실 때만큼은 부은 다리와 굳은 허리보다 ‘나도 스스로 돈을 버는 어른’이라는 생각이 선명해져 마음 한 구석이 뿌듯했다.




하지만 커피의 환상도 잠시. 20대 후반으로 접어든 지금은 살기 위해 대용량 저가의 가성비 커피를 쏟아붓고 있다. 어른의 특권 같던 커피는 낭만을 지나 현실을 거쳐 ‘생존템’이 되었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카페인의 힘을 빌려 머리를 깨워야 하고, 술에 잔뜩 취한 다음 날에는 속을 달래기 위해 커피를 마셔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커피 한 잔을 편하게 마시고 싶어서 훨씬 몸과 마음이 편했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아이러니는 대체….)




다만 한편으로는, 도서관에서 함께 밤을 새우던 친구에게 말없이 슬쩍 커피를 건네주던 시간과 출근 전에 빠른 걸음으로 대용량 커피를 사던 순간. 3잔째 마셔 쓰린 속을 부여잡으면서도, 할 일을 끝내고야 말던 기억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현재’에 집중했던 모든 과정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당시에는 아주 별로였지만, 돌이켜보면 조금의 뿌듯함과 약간의 안도가 남아있는 과거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현재를 산다는 것은 현재의 모든 감정에 충실하고 순간에 집중해, 이후에 돌이켜봤을 때 그럭저럭 봐줄 만한 기억으로까지 남겨내는 것은 아닐까 한다. 과거의 기억을 톺아보며 사는 것이 삶이고, 그 기억의 궤적을 따라 또다시 지금 나의 기분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어쩌면 지금은 아주 사소한 순간에 몰입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크리쳐와 망태 할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