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빠지는 날입니다.
내일이 출근이라서
심지어 외근으로 평소보다 일찍 나가야 해서
이번주 일이 산더미처럼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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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은 아닙니다. 이런 건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오늘 또 시험에서 떨어졌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3년 째라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낙방 소식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떨어질 때마다 울거나 같이 공부하는 친구와 술을 마시며 속상함을 풀었다면, 이제는 꽤 의연해졌습니다. 지금도 카페에 와서 내일 출근을 위해 할 일을 정리 중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브런치를 쓰는 이유는,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쓰린 탓입니다. 물론 지난 3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우울함도, 패배감도, 씁쓸함도 한순간의 감정일 뿐입니다. 아마 오늘 푹 자고 나면, 내일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그렇게 퇴근해서 다시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면 오늘 기분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불쑥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의 진폭은 여전히 거대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지금 상황을 바라보고 평정심을 되찾아야 합니다. 브런치를 쓰는 건 이를 위함입니다. 지금 드는 생각을 글로 걸러내며 차분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습니다.
오랜 기간 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우울해지기 쉬운 상황에서 재빨리 벗어나기 위한 장치 찾아낼 수 있게 됩니다. 종종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이 그렇고, 시험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때때로 인생 계획을 다시 점검하는 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다행히도 며칠 전, 올해까지 언론사 시험을 끝내지 못했을 경우에 어떻게 살아갈지 제법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전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플랜 B를 정하고, 새로운 직업을 찾고, 인생 계획을 고민했다면 이번에는 비교적 단기적인 관점에서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보통 언론사 채용은 6월이 넘어가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올해 시험을 끝내지 못하면 저는 또 내년 상반기에 공부를 하며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겁니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생산적이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걸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대만 어학연수를 결심했습니다. 시험과 일을 병행하며 모은 돈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오려고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어를 충분히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다른 언어를 쓰는 곳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함께 배우고 싶었습니다. 저마다의 삶을 사는 제 또래 사람들을 만나고도 싶었습니다. 사실 무엇보다도,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익숙한 곳에서 마냥 공고를 기다리며 불안해하기보다는, 새로운 곳에 저를 던져 놓아보고 싶었습니다.
올해 언론사 시험을 끝낼 수 있으면 더나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끝내지 못할지라도 크게 상심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은 까닭입니다. 짧지 않은 수험 생활에서 하나 얻은 것이 있다면,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 올해만 해도 그랬습니다. 언론사 입사 시험을 포기하고 지원했던 청년 인턴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일을 하며 돈을 벌어뒀기 때문에 어학연수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뭐든 움직이고 경험하면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얄팍한 깨달음. 이 얄팍함 덕분에 저는 올해까지 힘을 내서 시험을 준비하고, 이후에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고 떨어지면 또 슬퍼하겠지만요… 그래도 점점 ‘인생=시험’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지고 있습니다. 속상함을 받아들이고, 울적한 기분을 재빨리 소화해 다음을 기다리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