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서 근무하는 덕에 티센 미술관을 여러 번 방문할 수 있었는데 방문할 때마다 컬렉션 전체를 볼 수는 없으니 그 날의 기분 따라 특정 유파 혹은 특정 시대에 집중하여 감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방문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찾게 되는 그림이 하나 있으니 바로 차일드 하샘(Childe Hassam)의‘뉴욕, 워싱턴 스퀘어의 5번가’라는 그림이다. 싱그러운 가로수를 따라 한 여인이 외출을 하는 모습을 잡아낸 이 그림은 언제 보아도 미소를 짓게 된다. 우울할 때 이 그림을 보면 잠시라도 마음이 환해지고 기분이 좋을 때 보면 날아갈 듯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차일드 하샘은 미국을 대표하는 인상파 화가 중 한 명이다. 보스턴에서 태어났으며 1880년대 중반에는 파리로 건너가 활동하기도 했다. 하샘은 1889년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에 자리를 잡는 데 그의 아틀리에가 있던 장소는 워싱턴 스퀘어 인근, 5번가였다. 하샘은 아틀리에가 있던 워싱턴 스퀘어와 5번가 의 모습을 화폭에 많이 담았다. 티센 미술관에 있는 그림도 바로 화가의 아틀리에가 있던 5번가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하샘은 소위 ‘The Ten'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인상파 화가들이 결성하였던 모임을 주도한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인상파 거장들이 초기에 평단이나 주류 예술계로부터 배척당한 것처럼 미국에서도 인상파 화가들은 주류 예술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이에 반발하여 10명의 화가가 결성한 모임이 'The Ten'이다. 현재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상주의 그림이 150년 전에는 유럽에서나 미국에서나 환영받지 못했던 것이다.
차일드 하샘의 ‘뉴욕, 워싱턴 스퀘어의 5번가’는 비교적 단출한 구성의 그림이다. 그럼에도 이 그림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푸르른 가로수 길을 여유 있게 산책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상상하게 되는 것은 호화로운 경험보다는 바로 이런 여유로운 한 때 일 것이다.
그림을 보면서 내 기분대로 추측을 해 본다. 일단 이 그림은 주말에 그려진 것일 테다. 이 그림이 뿜어내는 평화로운 공기는 바쁜 주중에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계절은 어떨까. 화면 속의 여인과 또 다른 행인의 옷차림새가 아주 가볍지만은 않은 것으로 봐서 여름은 아닌 듯하다. 여인의 손에 들린 양산으로 추측해 볼 때, 여름은 아니더라도 햇볕이 꽤나 따가운 계절이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 가을을 좋아하기에 이왕이면 초가을이면 좋겠다. 여인의 뒤에는 어린아이가 굴렁쇠를 들고 놀고 있다. 왠지 이 여인과 잘 아는 이웃집 아이일 것 같다. 조금 전에 둘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 않았을까. 그럼 여인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다소 진부한 느낌이다. 그것보다는 오랜만에 뉴욕으로 놀러 온 고향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조금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화가의 아틀리에가 있었고 이 그림의 배경이 되는 뉴욕 5번가는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 거리이다. 21세기의 뉴욕은 두 말할 필요 없이 멋진 곳이지만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뉴욕은 19세기가 좋았어!’라고 말하고 싶어 진다. 19세기의 뉴욕에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소위 19세기 후반에서 1차 대전 전을 아름다운 시절 즉 ‘벨 에포크’라고 부른다. 물론 이는 유럽과 미국 그중에서도 부르주아 개층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하샘의 그림은 근대 역사에서 손꼽히게 아름다웠던 시절, 아름다운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아주 일상적인 모습을 그렸을 뿐인데도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그림이 벨 에포크의 공기를 한 껏 머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현재의 뉴욕 워싱턴 스퀘어 >
하샘의 그림을 뒤로하고 미술관 밖으로 나오면 다시 21세의 세계가 펼쳐진다. 다행히 티센 미술관이 있는 프라도 산책로는 19세기 후반의 뉴욕 5번가 이상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프라도 산책로가 아니더라도 좋다. 주말 오후에 내가 사는 동네 한 바퀴만 천천히 걸어봐도 충분히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특별하지 않아서 더욱 행복한 것이 산책이라는 것이니까.
5. 앳킨스 그림쇼 (Atkinson Grimshaw)
글래스고 야경, 달밤
90년대에‘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 노래가 있었다. 여기 밤 풍경을 누구보다도 사랑한 화가가 있다. 앳킨스 그림쇼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화가이다. 도버 해협 건너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이 눈부신 햇살 아래 빛나는 풍경을 그리고 있을 때 그림쇼는 어둠에 잠긴 영국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쇼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얼핏 든다. ‘영국의 밤은 프랑스의 낮보다 아름답다.’
그림쇼는 1836년 영국 리즈에서 태어나 1893년 사망하였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빅토리아 시대를 관통한다. 산업 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도시의 근대화가 진행되었던 시기라 한 밤에도 불을 밝히는 상점들이 꽤 많았을 것이고 그런 만큼 도시의 야경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림쇼의 그림 소재는 도시의 야경과 교외의 야경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한 편으로는 인공적인 불빛이 어우러진 도시의 야경을 그렸고 다른 한 편으로는 달빛 아래의 야경을 그렸다.
먼저 글레스고의 야경을 묘사한 Canny Glasgow를 보자.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 제2위의 도시이자 스코틀랜드의 최대 항구도시이다. Canny란 단어는 스코틀랜드에서 조심스러운, 고요한 이란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즉 이 그림은 고요한 글래스고의 야경을 그린 것이다. 늘 안개가 많은 나라답게 그림 속의 야경도 안갯속에 잠겨 있고 바닥은 물기를 머금고 있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비 온 후의 거리를 걷는 듯, 코 끝에 물 내음이 전해진다. 졸릴 눈으로 바라보는 것 마냥 뿌옇게 잠겨있는 공기 속에서 오른쪽 상점가의 불빛이 눈에 띈다. 물기를 머금은 불빛이 몽환적이면서도 따뜻하다.
< 앳킨스 그림쇼 - 글래스고 야경 >
다음으로 Night with moon이란 그림을 보자. 교외의 대저택을 배경으로 오른쪽 나무 위에 보름달이 걸쳐져 있고 환한 달빛 아래에는 한 소녀가 뒤를 돌아보고 서 있다. 앙상한 나무 가지와 인적이 끊어진 거리로 인해 이 그림은 조금 으스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두려움 보다는 밤공기가 전해주는 신비함이 느껴진다. 이 소녀도 우리처럼 달의 마력에 사로잡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 앳킨스 그림쇼 - 달밤 >
앳킨스가 그린 밤 풍경에서 쓸쓸함을 느낀다는 사람이 많다. 확실히 몇몇 그림에서는 밤의 고독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앳킨스의 야경에서 평화로움, 휴식, 밤의 신비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대부분 낮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휴식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밤이라고 하면 휴식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동화나 영화 속의 신비로운 일들은 모두 밤에 일어나고 우리의 상상력도 낮보다는 밤에 만개하기 때문에 달빛을 보면 신비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흑백사진에서 느끼는 향수와 같은 것을 앳킨스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다. 밤의 풍경이다 보니 색감이 흑백사진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퇴근 후, 밤이 찾아오면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앳킨스의 야경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어 진다.
6. 에리히 헤켈 (Erich Heckel)
벽돌공장
< 에리히 헤켈 - 벽돌 공장 >
에리히 헤켈(Erich Heckel)은 독일 표현주의 화가이다. 표현주의는 근대미술을 즐겨 감상하는 분들이 아니라면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회화 운동이다. 근대 이후의 회화 운동을 설명하려면 다소 복잡하고 난해한 용어가 난무하기도 하는 데 표현주의도 설명하기가 만만치 않다.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주의는 시기적으로 ‘20세기 초반’, 지역적으로는 ‘독일’ 지역, 양식상으로는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대담한 선과 색채의 사용’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표현주의란 말을 들으면 뭔가 한 가지 설명이 빠진듯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뭘 표현한다는 애기인가? 그것은 작가 내면의 ‘감정’과 ‘감각’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럼 다른 의문이 떠오른다. 그럼 과거의 예술가들은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애기인가? 고전 화가들도 물론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였다. 다만 감정과 감각을 드러낼 때도 어디까지나 자연을 재현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나무와 루벤스가 그린 나무의 색체 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을 테지만 기본적으로 나무는 초록색이다. 하지만 표현주의 작품에서 나무는 노란색일 수도 있고 파란색일 수도 있다. 즉 표현주의 화가에게 선과 색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고전 화가가 자연을 재현(Imitation) 했다면 표현주의 화가는 내면을 표현(Expression)한 것이다. 재현 VS 표현, 한글로 적고 보니 라임이 살아나면서 대비 효과가 뚜렷해지는 느낌이다.
헤켈의 벽돌공장(Brickworks)란 그림을 보면 대번에 한 명의 화가가 떠오른다. 바로 반 고흐(Vincent Van Gogh)이다. 물감이 너무나 두텁게 칠해져 회화가 아니라 부조를 보는 느낌이다. 흔히 반 고흐 작품의 특징 중 하나로 조각을 연상시킬 정도의 두터운 ‘임파스토(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회화기법)’기법을 꼽을 수 있는데 헤켈의 작품은 그 보다 한 단계 더 나간 느낌이다. 모든 그림들이 책으로 인쇄된 것을 볼 때와 실제 볼 때의 느낌이 다르다고 하지만 헤켈의 이 작품은 특히나 그 차이가 크다. 그 두터운 물감의 질감은 직접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 반 고흐 -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
색체는 어릴 때 학교에서 받아본 적 있는 ‘색맹’ 검사지를 보는 것 마냥 여러 색이 강하게 뒤엉켜 있다. 음악으로 치면 화음과 불협화음의 중간쯤 되는 듯하다. 조화를 이루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형체를 못 알아볼 정도로 불화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색이 뒤엉켜 있는 가운데도 건물을 이루고 있는 붉은색은 확실히 눈에 띤다. 헤켈은 이 그림은 교외의 벽돌공장을 그린 것이다. 헤켈은 이 풍경에 매료되어 비슷한 주제로 여러 그림을 그렸는데 티센 미술관의 작품은 그중 첫 번째 그림이다. 극한의 임파스토 기법과 거침없는 색체가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표현주의는 인상파나 야수파에 비해 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알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고전회화에 비해 사전 지식이 덜 필요하면서도 구상화의 형식을 갖추고 있고 대담한 색체의 사용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티센 미술관의 표현주의 콜랙션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훌륭하다. 소위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그룹으로 ‘다리파’와 ‘청기사파’를 꼽는다. 티센은 다리파의 대표화가인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헤켈, 로틀로프(Karl Schmidt Rottluff), 청기사파의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칸딘스키(Wasilly Kandinsky) 등의 작품을 고루 가지고 있다. 티센에서 표현주의 전시실은 인상파 전시실에 비해 다소 관심을 덜 받는 느낌인데 대담한 색채의 향연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아울러 티센에 있는 야수파나 고흐의 그림과 표현주의 작품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적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