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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쓰 Eath Jul 07. 2022

클렌저 브랜드에서 '노샤워데이'를 기획하며

마케터의 일 1.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프로모션


참으로 기이하다. 분명 하나하나 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 날인데, SNS를 보면 죄다 그냥 물건 사는 날이다. 빼빼로를 팔기 위해 만든 빼빼로데이는 차라리 정직해서 도덕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특히나 화장품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 피로도가 어마어마하다. 나조차도 그 구정물에 몸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화장품 업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마케팅 수단은 ‘친환경’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기 어려울 거다. 그 ‘유행’에 염려하기를 몇 년째, 이제는 거의 포기했다. 의도가 뭐든, 결과가 환경에 도움이 된다면 그래, 그게 어디냐 하고 자위한다.


매년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지구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알고 지구의 날을 감히 인간이 정한 건지는 몰라도, 지구의 날이다. 올해도 ‘지구의 날’을 맞이하야 우리 브랜드에서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진즉 나왔다. 내적 갈등이 어마어마했다. 무슨 무슨 날에 ‘결론은 우리 물건 사라’고 답을 정해 넣고 구실을 끼워 맞추는 것이 나의 일인데, 정말 너무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다른 팀원들과 하니, 마니로 다퉜다.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물건을 팔고자 애쓰는 행동이 그르다는 말을 하자는 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제조판매업의 근본적인 목적은 물건을 만들어서 파는 거다. 그걸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근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은 그 업을 하는 사람의 성실한 책임 이행이다. 그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절대 아니다.


내가 무슨 무슨 날 프로모션에 거부감을 느꼈던 건, 시장에 물건을 팔겠다는 근본적인 목적을 아닌 척 숨기고, 오롯이 공익적인 목적만을 위하는 정의로운 시민단체인 양 광고하는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상황 때문이었다.



| 노 샤워 데이 NO SHOWER DAY


결론부터 말하면, 올해 지구의 날에 우리 브랜드에서는 물건 판매 프로모션을 하지 않았다. 대신 ‘노 샤워 데이 NO SHOWER DAY’를 기획해서 진행했다. 그렇다. 지구의 날 하루는 샤워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 머리를 감아서도 안 된다. 세수도 안 하면 좋다. 양치는 해야 한다. 이것이 노샤워데이 캠페인이다. 우리는 샴푸와 바디워시 등의 목욕용 소비재를 판다. 그래서 더욱 ‘노샤워데이’를 밀어붙였다. 나는 샤워를 사랑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행위인지도 잘 알고 있다. 매일 샤워의 기쁨과 죄책감을 함께 느끼는데, 그것을 이번 기회에 (지구의 날이니까) 사람들도 느꼈으면 했다. 어차피 안 씻을 수는 없으니 이런 걸로 사람들이 샤워를 안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샤워를 하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구의 70%가 물이라지만,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니다. 우리가 마시고 씻는 데에 쓸 수 있는 담수는 그중의 2.5% 뿐이다. 그런데 그 담수의 69.55%도 빙하나 만년설 등으로 존재하고, 나머지의 30.06%는 또 지하수로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쓸 수 있는 물은 전체 담수 중에서 고작 0.39%다. 지구 전체의 물에서는 0.0075%다. 그마저도 기후온난화로 인한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로 극심한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어 ‘쓸 수 있는 물’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일반적인 샤워헤드의 최대 유량은 분당 12리터라고 한다. 들기에도 무거운 2리터 생수 6팩을 1분 동안 그냥 다 쏟아버린다는 거다. 샤워는 보통 20분 정도 한다. 한 번의 샤워에 240리터의 물을 써버리는 셈이다. 양치를 할 때 물을 그냥 틀어놓으면 평균 6리터의 물을 흘려버리게 된다.


지구 상에 이렇게 깨끗하고 따뜻한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축복 받은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호사라는 것을 모른다. 어느 가수의 콘서트에서 ‘낭비된다는’ 물 때문에 한참 시끄러웠는데, 우리 욕실에서는 몇 배나 더 많은 물이 매일 버려지고 있었다. 


이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사람들이 샤워를 더 많이 할수록 벌이가 늘어나는 클렌저 전문 브랜드에서조차 ‘샤워를 줄이자’고 할 정도로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함을 인지하고, 샤워의 즐거움에 더 크게 감사하고, 감동하며, 이 즐거운 샤워를 더 오래오래 즐길 수 있도록 앞으로는 물을 아껴서 잘 쓰자는 거다.


‘노샤워데이’는 별다른 반향 없이, 매출에도 아무런 영향 없이 그렇게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 ‘노샤워데이’를 우리 브랜드의 환경 관련 메인 캠페인으로 만들고 싶다.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회사에서 안 되면 혼자서라도 해야지.


다음에는 물을 아끼면서 샤워하는 법에 대해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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