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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연 Mar 01. 2024

육각형 인생을 찾아서

내 인생의 황금 밸런스를 찾아보자

(1) 육각형 인간

'육각형 인간'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이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직업, 학벌, 외모, 성격, 집안, 자산이라는 6개 요소를 종합적으로 충족하는 인간이다. 셀러브리티를 선망할 때 많이 사용되고( ‘여신 미모 A씨, 알고보니 금수저 집안에 엘리트...다 가졌네‘ 이런 식), 연애 혹은 결혼 상대의 조건을 말할 때도 자주 쓰이는 말이다(육각형 남자, 육각형 여자...). 여기서 육각형은 어디에도 붙일 수 있는 형용사와 같다. 육각형 인생, 육각형 직업, 육각형 노동자. 과연 육각형 직업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육각형 노동자일까?


서른 살.. 아니 만 28세가 된 나의 가장 큰 고민 중에 하나는 직업이다. 동경하던 직업이었던 PD가 되어 5년을 일했다. 처음 2년은 일이 너무 재밌고 간절했다. 그 다음 2년은 어떤 기대감으로 일을 했다. 그리고 5년차에는 고민이 찾아왔다.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직업적인 고민을 많이한다. 만나면 하는 얘기가 그렇다. '월급이 너무 낮아서 점점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져'라는 친구가 있었고, '건너편에 있는 저 선배가 내 미래라고 생각하니 별로였어'라는 친구도 있었고, '이렇게 순환근무 많으면 나 결혼 못할 거 같아..'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도 많은 고민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고민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작년에 퇴사했다. 이직처를 찾아보지도 않은 '쌩퇴사'다. 현실보다 좀더 나은, 육각형 인생을 찾아 떠나겠다는 출사표였다.


(2) 육각형 직업

직업에 대한 나만의 6가지 기준은 적성, 흥미, 안정성, 수입, 워라밸, 커리어다. PD는 정말 ‘흥미’로운 일을 하고, 멋진 ‘커리어’를 만들어갈 수 있는 직업이다.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였다. 


하지만 PD는 가질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바로 '워라밸'이다. 내가 고민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방송업은 주 52시간 근무에 해당하는 업종이 아니다. 한창 프로젝트 중일 때는 주 7~80시간 근무가 흔하다. 인스타스토리에 8시, 9시에 퇴근하면서 야근한다고 툴툴대는 친구들이 나에게 기만을 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들이 평범한 거고 내가 특이 케이스인데, 나에게는 내가 평범한 거고 그들이 특이 케이스처럼 느껴지니까. 


지난해, 잦은 밤샘 작업이 체력에 부쳐 몸이 아파도 시간이 없어 병원에 못 간 적이 있다. 사실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PD들이 비슷하다. 아파도, 졸려도, 친구가 결혼을 해도, 남자친구가 화가 나도 시간을 빼기가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이런 워라밸의 부재가 더 크게 느껴졌다.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나 자신과의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었다.


'적성'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일을 하면서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더러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이게 나에게 최선의 선택일까?’, ‘나와 가장 fit하는 직업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이런 의구심은 자기효용감을 떨어지게 했다.


어릴 때부터 선망했던 업계에 들어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꿈과 열정의 자리에는 낙망과 갈증이 대신하고 있었다.


(3) 워라밸을 찾아 떠나는 모험

그래, 워라밸이 있는 직업을 가져보는 거야! 프리랜서를 하거나 혹은 대기업에 다니면 워라밸이 있지 않을까? 프리랜서는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내가 쉬고싶을 때 쉴 수 있어서 워라밸이 보장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대기업은 안정성을 잡을 수 있어서 좋고, 대기업에서 아무리 바쁘고 업무가 많아도 PD의 워라밸을 생각하면 만족스러울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직무를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회사 다닐 때 나는 할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인 거 같았는데, 프리랜서 영상 제작자로 활동하려고 보니 분업화된 사회에서 내가 했던 일들은 너무 부분적인 것들이었다. 하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기획과 편집만 할 줄 알았지 촬영은 촬영 감독에게, 녹음은 동시 감독에게, 자막과 모션은 자막 감독에게 맡겨왔던 것이다. 하지만 개인 사업자는 종합적으로 모든 과정을 할 줄 알아야 했다. 내가 먼저 육각형 능력자가 되어야 했다.


대기업 콘텐츠팀을 가려고 보니 TO가 적다. PD를 하다가 빠르게 판단해서 대기업에 먼저 간 친구들이 부럽다. 주변 후기에 의하면 예능PD에 비해 재미는 덜하지만 업무 강도와 워라밸은 상당히 만족스럽다고 한다. 뭐 하나가 특출나게 좋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훌륭한 육각형 직업이라는 게 대기업 사무직 아닌가 싶다. 이래서 현대자동차 사무직을 킹차갓무직이라고 부르는 걸까.


(4) 내 인생의 황금 밸런스

제 2의 직업을 찾아 떠나는 모험은 현재 진행 중이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인생을 이렇게 대책없이 살았던 적이 없다. 계획적이고 추진력 강한 성격에 독기 가득한 허슬러로 20대를 보냈다. 지금의 나는 물에 한번 헹군 치킨무처럼 톡 쏘는 신맛이 빠진 밍밍한 상태인 것 같다. 계획? 없다... 독기? 없다.... 하지만 오히려 마인드는 지금이 더욱 긍정적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다. 스스로가 세운 기준에 부합하는 인간이 되어서 나의 기준에 이상적인 직업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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