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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Jul 18. 2022

위플래쉬 ( WHIPLASH )

2015

영화 위플래쉬는 다시 보게 된 것은 마일스 텔러 배우의 예전 모습과 음악 관련 영화를 보고 싶어서 보게 되었다. 오늘로 본 것이 2번째이며, 오늘 보기 이전의 위플래쉬는 학생을 몰아세워 한계에 다다르게 하는 J.K. 시몬스의 모습이 불편했던 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다시 영화를 보고 기존 생각과 많이 달라졌다.



나무 위키를 통해 찾았을 때 위플래쉬 영화의 개요를 설명하자면 데미언 샤젤 연출, 마일스 텔러와 J.K. 시몬스 주연의 2014년 영화이다. 국내에선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최초 상영했다. 개봉 직전에 아카데미 특별전 형식으로 CGV에서 선행 상영되었고 < 2014년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편집상, 음향상 >을 수상했다.


출처 - Haaretz


 이 영화는 당대 최고의 지휘자인 '플래쳐'의 스튜디오 밴드를 학생들을 지도해 나가는 과정이 메인 스토리 이이다. 그 속에서 '앤드류'라는 주인공은 평범한 19세 '앤드류'의 삶의 모습에서 드러머 '앤드류'로 성장함과 동시에 본래의 자신을 잃어간다. 


출처 - csmonitor.com


 흘러가는 러닝타임 속 일어나는 많은 선택과 감정들은 영화에 대한 집중도를 올리기엔 충분했으며 거기에 더해지는 '재즈'와'드럼'은 이 영화의 전체를 설명하였다. 


 나는 위플래쉬를 보는 내내 '앤드류'가 속해있는 최고의 스튜디오 밴드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로 보였으며 밴드 내 무한한 경쟁은 현 사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플래처' 교수의 직설적이며 과격한 언행은 그만큼 냉정한 사회의 평가와 시선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출처 - whatCultures.com


 극 중 '앤드류'는 스튜디오 밴드에서 보조 - 메인 -  탈퇴 - 메인 드리머로 사회를 적응해 나가고 있는 개인이다. 경쟁 속에서 승패를 위한 노력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노력으로 꿈을 향하였다. 


러면서 영화 시작 속 '앤드류' 다르게 분위기마저 점점 변하는 모습개인이 사회 속에 스며들기 위해 변해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영화 속에서 '플래처'를 보며 저렇게 화를 내면서 학생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싶은 것일까 궁금했다. 

바른 길로 가게 도와주며 좋은 말을 나누는 것만이 좋은 교육일까? 한계를 다다를 때 자의적이던 타의적이던 그 너머의 가능성을 바라보게 하는 교육이 좋은 교육일까? 


출처 - Getty images


플래처는 혹시 강하다 못해 병적으로 학생들을 대했던 것은 그런 현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자신을 만들고 좀 더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을 만들어 주려고 하지 않을까? 이런 또한 비슷한 교육을 받지 않았을까? 



출처 - pintrest

 

'플래처'가 영화 도입 부의 자신의 탬포로 오지 않는다며 '앤드류'에게 갖은 패설과 소리치며 구석으로 몬 장면이 있다. 그때 나온 말이 너의 연주는 자신의 속도에 따라오지 못한다라는 말인데 사실 그 말의 자신은 교수인 플래처가 아니라 아닌 '앤드류'를 말한 것이지 않을까? 바로 앞사람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앤드류에게 메시지 던진 것이다. 


 감독은 앤드류를 통해 앞으로의 인생은 '타인, 단원, 악보'와 같은 정해진 것을 따라가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탬포를 만들어 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 끝에 플래처가 앤드류에게 "그 눈알 다 뽑아버릴 거야"하면서도 끝엔 둘이 눈을 마주치며 웃는 장면이 앤딩 장면으로 나온다. 개인이 온전한 자신으로, 자신의 템포로 대했을 때 사회에 부딪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출처 - Daily Nebraskan.png


한계에 임박했다.라는 말은 그 너머보다 그 이전을 보게 하는 말이고,

한계를 돌파했다.라는 말은 그 이전 과정보다 그 너머를 바라보게 한다. 


'한계'는 정해져 있으나 이 이전과 이후를 정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모두에게 한계를 돌파하라는 것은 생각보다 폭력적인 말이고 그 한계를 이후가 전부 성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끝이 아닌 것 같은 상황을 끝인 것처럼 바라보는 '나'로 만들 수 있고 그 끝을 향해 미친 듯이 도전하는 '나'로 만들 수도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내게 없는 열정과 끝내 실패했던 일들을 떠올리는 것보단 '한계'와 같은 큰 벽을 만날 때, 벽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갖고 있는 마음의 눈높이에 맞게 정하길 바란다. 그럼, 절망보단 내 마음을 지키면서 한발 한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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