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홍 Mar 08. 2023

몽당연필





몽당연필 하면 생각나는 게 뭘까?

짜리 몽땅

작은 녀석이 생각나지


길을 걷는데 무릎이 아프다.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라고 했어야 하는 아쉬움 발걸음, 그림자를 뒤로하고 앞으로 뚜벅뚜벅 길을 걷는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솜사탕처럼 푹신한 바닥에 발이 슬그머니 빠진다. 무거운 어깨는 더욱 거세게 짓누른다. 어느새 허벅지까지 박혀있는 모습이 흡사 짜리 몽땅한 몽당연필과 같다.


몽당연필은 길쭉하고 곧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 멋지도록 쭉쭉 뻗은 손과 발은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고, 꽃피는 봄날을 기다리는 수줍은 여자아이들처럼 신이 났다. 힘차게 앞 뒤로 흔들거리는 희망과 꿈은 내일을 환하게 비추는 빛이 되고 올려다보면 눈부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지나가는 모든 것들은 그때와 지금이랑 똑같은데, 도대체 뭐가 바뀐 걸까.


걷다 보니 달빛에 빛나는 나의 눈동자가 아직도 환하게 나를 밝혀주고 있었다. 걷고 또 걸어서 제대로 닳아버린 짜리 몽땅한 몽당연필은 그래도 재미를 찾아 떠나는 모험가와 같다. 지금도 어제도 내일도 또 지금도, 비슷하다 못해 쌍둥이같이 똑같은 시간 같지만,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단지 희망과 꿈을 쫓아가다 보니 내 발아래 푹신하고 포근한 바닥들에 닳고 없어진 내 열정을 잠시 까먹고 있었을 뿐이다.


몽당연필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희망찬 가슴을 간직한 소중한 발자국이다. 항상 똑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매 순간이 새롭고 즐거움이 가득 찰 수 있다. 작은 달빛이 창을 통해 비추이는 어두컴컴한 방에 스위치를 단 숨에 켰다고 생각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공간은 나의 마음과 같도다.


생각 하나만 바꿨을 뿐이다. 짜리 몽땅 몽당연필은 결코 작은 녀석에 머물지 않는다. 잠시 멈춰 서,  위도 보고 옆도 보고 아래도 보고 뒤도 돌아볼 줄 아는 여유 있는 한량이 되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춘천 닭갈비 먹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