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BTS는 하루아침에 글로벌하게 성공한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대다수겠지만 대다수가 생각하고 있는 BTS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BTS의 성공은 200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드라마와 k-pop 등 다양한 한국문화의 글로벌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 드라마에 심취한 부모세대 밑에서 자란 90년대부터 2000년대 생들이 어려서부터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한국문화에 익숙해지고 청소년기에 k-pop을 접하게 된다. 아이돌을 앞세운 k-pop은 아시아에서 저력을 발휘했지만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으로의 확산은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마트폰이라는 발명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접근성은 폭발적으로 향상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2011년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인의 k-pop에 대한 관심을 견인하였다. 음악 외에도 한국영화, 한식 등 여러 영역의 한국문화가 세계의 다양한 곳에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이런 초석은 조금씩 쌓여 충분히 대들보를 지탱할 만큼 커졌고 그 위에 BTS라는 결정이 결실을 이루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누구나 즐기는 초밥과 회는 처음 서방국가에 소개되었을 때 배척당했으며 서양인들이 초밥과 회를 받아들이는 데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a라는 문화가 b라는 문화권에 자리를 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진통을 겪고 b 문화권에 통용되는 현지화 과정을 거쳐 a의 형태가 b문화권에 적합하게 변하거나 a의 오리지널까지 받아들여져 b문화에 정착하게 된다.
‘문화’라고 하면 그림, 음악, 공연과 같은 ‘예술문화’를 먼저 떠올리지만 식사, 예절, 의상, 건축 등과 같은 ‘생활문화’도 있으며 생활문화의 차이가 민족과 국가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축적되며 고유성을 더욱 갖추게 된다. 음식이나 물건의 경우, 축적된 과거의 기억과 연결되기도 하며 그런 음식과 제품의 의미는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 ‘기생충’으로 화두에 오른 짜파구리가 대표적이다. 영화 속에서 그 음식을 본 외국인은 먹어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겠지만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통해 한국인이 느끼는 정서나 떠올리는 추억을 공유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은 주거환경인 반지하를 보고 열악한 주거환경이라는 정보를 넘어서 반지하가 주는 상징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외국인은 이해하고 느끼는 바가 한국인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문화가 중요한 것은 ‘익숙함’때문이기도 하다. 수십 년을 나고 자라 온 문화권에서 생활할 때, 우리의 뇌는 바캉스에 온 것 같이 게을러진다. 하지만 이질적인 문화권에 도착하면 우리의 뇌는 새로운 정보들을 파악하느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우리의 뇌는 최적화와 효율을 좋아하기에 적은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과를 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가 정보를 만나게 되면 우리의 뇌는 최대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기억 속에 유사한 정보가 있는지 확인하고 유사한 정보가 있다면 그 정보를 활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치하는 정보가 아닌 유사한 정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 ‘익숙함’이라는 녀석은 우리의 눈과 귀를 멀게 한다.
1990년대 후반 의도적으로 상표나 로고를 모방한 제품들이 유행했다. 많은 상품들이 스포츠 브랜드의 로고나 이름을 바꾸어 재치 있게 모방하였다. 그중 아직 기억에 남는 브랜드가 푸마다. PUMA의 로고에 있는 표범을 파마머리로 바꿔 PAMA라고 고치고 표범을 하마로 바꾸어 HAMA라고 고치고 표범에서 피가 나는 것을 표현하여 PINA라고 써놓았다. 우리는 이런 이미테이션 제품을 멀리서 보거나 지나치면서 보게 되면 작은 변화들을 쉽게 인지하지 못하고 이미테이션이 아닌 진짜 제품을 봤다고 믿게 된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매 순간 집중하고 살지 않기에 작게 바꾸면 바꿀수록 이미테이션인지 아닌지 더욱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코카콜라의 경우, 코카콜라 폰트로 다른 단어를 써놓아도 사람들은 코카콜라 상표를 봤다고 기억한다. 이를 가용성 휴리스틱(편견)이라고 한다.
가용성 휴리스틱과 연관된 뇌의 작동방식은 우리의 현실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배낭여행으로 해외여행을 가면 하나부터 열까지 낯선 환경에서 지내게 되고 평소보다 하루가 더 길게 느껴졌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단순노동을 하는 날이 이어지면 그렇지 않은 날들보다 하루가 더 짧다고 인식하고 나이가 들수록 어렸을 때보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낀다.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들보다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게 될 일이 많고 여러 가지 이유로 두뇌가 훨씬 많이 가동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적 시간은 24시간으로 같지만 심리적인 시간은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보다 더 길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의 두뇌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인해 우리는 익숙한 물건이나 음식을 대충 평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을 평가할 때는 뇌가 다양한 정보를 취득하고 분석하기 위해 매우 바쁘게 활동한다. 이 의미는 디테일과 같은 장점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결점도 발견하기 좋은 조건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1만큼의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동시에 존재한다면 인간은 부정적인 요소를 더 크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장단점이 둘 다 잘 보이게 된다면 부정적인 평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두뇌의 피로이다. 우리의 두뇌는 편안함 속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이 나온다. 두뇌의 피로도가 높으면 알게 모르게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두뇌를 피로하게 만들어야 매출이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충동구매를 유발해야 하는 비즈니스에서 그렇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소비에 대한 결정을 하는 상황 속에서 감각적으로 또는 정보적으로 피로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면 충동적으로 구매, 소비 또는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 편안한 환경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생각하면 십중팔구 자신의 고민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사업이 어느 문화권에 속해 있는지 염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문화보다 작은 범주도 고려를 해야 하고 상권으로 따지면 광역상권과 지역상권으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의 비즈니스 범위는 매장 자체의 역량으로 찾아야 한다. 범위는 넓게 수도권, 전국 전역을 봐야 하는 광역 비즈니스가 있는 반면 읍, 면, 동이나 그보다 더 작은 권역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지역 비즈니스가 있다. 요즘은 정보의 전파가 쉽고 모빌리티가 발전하여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넓어진 세상이다. 그래서 광역적으로 마케팅을 하는 매장이 늘어났지만 무조건 광역으로 접근하는 마케팅은 문제가 있다. 참고로 최근 마케팅 대행업체에서 보편적으로 진행하는 방법이나 책으로 나와있는 마케팅 방법은 광역상권을 위한 마케팅에 치중되어 있기에 지역을 대상으로 사업을 해야 하는 경우, 이 방식을 무작정 채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권역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업종, 제품, 매장환경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결정된다. 이를 잘 파악하는 것은 비즈니스를 성공시키는데 매우 중요하다.
익숙함과 범위를 고려할 때 또는 활용할 때 유의해야 할 점 4가지를 하단에 남긴다.
-고객의 문화를 잊지 말아라! 콘셉트 있는 매장이나 에스닉 음식을 취급하는 요식업이 많이 늘었지만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게 세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두뇌는 균형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사업에 적용할 때는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 매장 내외부 전체 환경과 제품의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적정 수준을 넘으면 그 매장은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어렵게 된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칙은 없듯이 관광상권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매장은 자국의 문화를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익숙함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라! 고객의 두뇌를 편안하게 해 주려면 가장 보통의 방법을 택해야 할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매장에 와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렇기에 전체적인 방향은 ‘익숙함’을 지키되 하이라이트 조명을 주듯이 확실하게 차별되는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경쟁력이 된다.
-가용성 휴리스틱을 잘 이용해라! 가용성 휴리스틱의 존재를 이해하고 잘만 이용하면 그로스 해킹을 하는 것과 같은 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오용하거나 남용하면 저작권 침해 소송이나 타사만 홍보해주는 것과 같은 독이 될 수 있다.
-무작정 인터넷 마케팅에 의존하지 마라! 인터넷 마케팅은 정보의 노출지역을 선택할 수 있지만 지역단위로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선택 지역의 범위가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인터넷에서 정보를 접하는 잠재고객들은 가용성 휴리스틱에 의해 인터넷 광고가 번화가의 서비스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인터넷 마케팅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검색이 생활화되어 있는 지금 세상에는 어떤 형태로든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정보를 남겨놓을 필요가 있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만들어진다. ‘맥락과 흐름을 알아야 해’에서 ‘점’과 ‘선’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당연히 그 ‘선’도 여러 ‘면’ 위에 놓여있다. 그중 간과하면 안 되는 중요한 ‘면’이 문화다. 사업하는 곳이 대상이 어떤 문화 위에 올려져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준비 중 하나이다. 그리고 상권, 장소라는 것도 하나의 ‘면’이다.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사업의 형태가 지역상권이라는 면에 올라가 있는데 광역상권이라는 면에 올라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휴머네이션은 매장과 주변 환경 및 지역의 문화와 익숙함에 대하여 자체 개발한 지수를 적용하여 분석하고 평가하여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 글은 5월 5일 발행된 Bwith magazine에 기고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