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작년 12월 넷플릭스에서 ‘위처’라는 드라마의 시즌1을 스트리밍 하기 시작하였다. 위처는 드라마로 방영되기 전, 이미 비디오 게임으로 여러 시리즈가 나왔고 소설도 있는 작품이기에 스토리와 세계관이 탄탄하며 방대하다. HBO에서 방영하던 ‘왕좌의 게임’을 이을 판타지 대작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시즌1만으로는 ‘왕좌의 게임’만큼 흥행하지 못했다. 기대와 다르게 흥행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드라마에 입문하기 위한 장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드라마만 봐서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유튜버들은 `위처 감상을 위한 필수 정보 모음’, ‘위처 스토리 한방 정리’ 같은 콘텐츠들을 만들어냈다. 이런 보완설명이 존재하더라도 사람들의 반응은 각각 다르다. 배경지식 없이 위처를 보던 사람들 중,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워 중도하차하는 사람도 있고 유튜브나 인터넷의 보완설명을 보고 시청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드라마, 영화, 문학작품, 만화와 같은 스토리 콘텐츠의 경우, 흐름이 이상하거나 맥락이 끊기면 우리는 쉽게 혼란스러워한다. 다른 요소들보다도 스토리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콘텐츠의 퀄리티를 떠나 작품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며 감상을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 스토리에서의 흐름과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공감하지만 현실에서의 흐름과 맥락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만큼 관심을 갖지 않으며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보편적으로 상권에 대해 알아보면 어떤 업종이 분포되어 있는지 경쟁사들은 어디에 있고 얼마나 분포되어 있는지 전체적인 매출이 어떻게 나오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점포가 있으며 얼마나 장사를 유지하는지 유입되는 사람들이 직장인인지 지역주민인지 그리고 어느 시간대와 요일에 매출이 잘 나오는지 어떤 주요 시설이 주변에 분포하는지 유동인구수가 얼마나 되고 연령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알아본다. 이는 분명히 중요하고 귀중한 정보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수준까지 상권분석을 한다. 하지만 이 정보들이 유의미하게 작동하는지는 좀 더 알아봐야 하고 모든 정보를 점으로 이해하게 되면 이 데이터들의 속내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점들의 흐름(flow)과 맥락(context)을 선형에서 이해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은 유동인구의 흐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어느 길을 택하는지 직업뿐만이 아니라 어떤 목적으로 보행하는지 혼자 이동하는지 삼삼오오 이동하는지 아이와 함께 이동하는지 연인과 함께 이동하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이해해야 하는 것이 시선의 흐름이다. 우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을 경우, 시야가 124도 밖에 되지 않고 그중에 집중할 수 있는 범위는 10-60도 이내이다. 우리의 귀와 코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도 한정적이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무엇을 보고 어디로 시선이 이동하고 어느 곳의 경관이 시선을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비어있고 어느 곳의 경관이 산만한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일반적인 상권분석의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역 사람들 또는 유동인구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스토리다. 사람들의 스토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설문이나 인터뷰 같은 조사방법이 있지만 인간은 일상생활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하며 별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은 왜곡하여 기억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의 행동과 모습을 관찰하여 얻는 데이터가 더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명시해야 할 점이 있다. 사람은 패턴과 생각이 균일한 기계가 아니다. 사람은 문화나 연령에 따라 유사한 결과를 보이는 어느정도의 보편성이 존재하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하는 유기체다. 한마디로 위의 데이터들은 시시각각 계속 변하기 때문에 고객 공략을 위한 전략은 상황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해야 한다.
흐름만큼 맥락도 중요하다. 어떤 종류의 시설들, 업종이 분포되어 있고 그 분포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맥락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지 위에서 알게 된 흐름과 맥락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작동하는지 서로 동떨어진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알아봐야 한다.
‘모든 것의 조화 만들기’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의 매장은 아무것도 없는 한복판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다. a, b, c 세 점포가 나란히 있다. 1번 장소에는 a점포에 횟집이 c점포에는 조개구이집이 입점해있어서 매장 외부에 수조탱크가 있고 매장 앞 인도가 젖어있으며 살짝 짜고 비린내가 난다. 2번 장소에는 a점포에 베이커리가 입점해있고 c점포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입점해있어서 매장 외부에 와인병으로 장식을 해두었고 빵 냄새가 난다. a와 c점포 사이에 있는 b점포에 카페를 입점하려 한다. 두 가지 상황은 너무 극단적 이어서 카페를 하려는 사장님은 1번 장소에 카페를 입점시키지 않을 것이지만 이와 같이 주변에 어떤 업종들이 놓여있느냐에 따라 매장과 제품에 대한 가치가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당연히 입점 후 a와 c점포에 원하지 않는 업종이 들어오기도 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요식업뿐만 아니라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에도 이런 효과는 나타나고 같이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여러 매장이 모이면 집적효과를 발휘하여 쇼핑몰, 백화점과 같은 엥커 시설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엥커 시설이란 지하철역, 쇼핑몰, 백화점, 병원, 관광명소 등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표적인 시설을 지칭한다.
추가적으로 a, b, c점포가 있는 장소도 설정해보자. 만약 횟집과 조개구이집의 위치가 해변이고 주변에 카페가 거의 없다면 b점포에 카페를 입점하는 것이 꺼려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베이커리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전통시장에 있고 시끄러운 환경이라면 b점포에 카페를 입점하는 것이 꺼려질 것이다. 위의 상황에 장소만 추가하니 선택의 결과가 달라졌다. 이렇게 행동경제학에서 나오는 ‘틀짜기 효과’는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틀짜기 효과’란 동일한 결과라도 제시되는 방법 또는 틀에 따라 사람들의 해석이나 선택이 달라진 다는 이론이다.
질문을 하나 더 해보겠다. 허름한 길가에 있는 중국집이 파란 플라스틱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이 중국집의 주방장은 이연복 셰프이지만 고객은 이 사실을 모른다. 이연복 셰프가 만든 짜장면을 a의 경우, 일반적으로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아주머니가 가져다주었고 b의 경우, 이연복 셰프가 직접 가져다주었다. 사람들은 어떤 짜장면을 더 맛있다고 판단할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 답을 외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맥락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흐름과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 유의해야 할 점 5가지를 하단에 제시한다.
-흐름은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다! 보행, 주행, 대중교통, 유동인구의 흐름은 중요하다. 거기다 시대, 시선, 경관, 주변의 변화, 패턴의 변화, 유동인구 구성의 변화 등 동적이지 않는 요소들의 흐름도 읽어야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다. 보편적인 상권분석에서 파악하게 되는 정보는 현재를 알려주는 좋은 정보이지만 이 정보는 미래를 예측하기에 충분한 정보가 아니다.
-맥락은 업종과 시설만이 아니다! 집적효과나 시너지 효과를 내는 업종과 시설 간의 맥락은 중요하지만 위에 제시한 짜장면 질문처럼 종업원이 누구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 추구하는 가치, 목표, 수준, 제품, 디자인 등의 맥락들도 함께 존재한다. 매장 주변에 동일한 제품을 파는 매장이 있더라도 그 매장이 추구하는 맥락과 우리 매장이 추구하는 맥락이 다르다면 경쟁업체가 아닐 수 있다. 다른 업종과 제품의 매장이 우리 매장에서 추구하는 맥락과 같은 맥락에 있다면 그 매장은 경쟁업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지역 사람들과 유동인구의 행태를 살펴 스토리를 알아내라!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장소의 이미지는 과거의 정보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미지는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미지와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물리적 공간에 이미지를 입히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장소성을 만드는 것은 현재 당신의 매장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전체 스토리를 알고 그 스토리의 한 조각으로 들어가야 현재에 대응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여러 개의 맥락을 파악하고 그중 적합한 맥락과 함께하라! 맥락은 하나만이 아니다. 위에 제시한 업종간의 맥락도 있고 장소와 주변 환경의 맥락도 있고 종업원, 유명인 등 사람과의 맥락도 있다. 이외에도 역사를 포함한 문화, 랜드마크, 제품의 퀄리티 등 다양한 맥락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으며 여기서 가장 사업이 잘 될만한 맥락 또는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와 가장 어울리는 맥락을 찾아 그 맥락을 이어주는 흐름 속에서 매장의 스토리를 짜면 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사람과 관련된 정보는 고정값이 아니다. 언제나 변하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결국 점들이 변하면 선도 변하기 때문에 그 변화에 따라 흐름과 맥락도 같이 변한다.
‘지금의 나’는 선 위에 있는 ‘점’이다. 현재라는 ‘점’은 과거를 지나 지금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고 수없이 많은 과거의 점들이 만든 선이 ‘지금의 나’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우리 모두 시간의 선 위에 놓여있고 그 선 위에는 수많은 정보들이 있다. 시간뿐만 아니라 장소, 위치, 정보, 지위 등 모든 것이 선위에 놓여 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선은 그 흐름대로 나아가고 과거의 맥락이 이를 지탱하고 있다. 사람, 매장, 제품, 이 모든 것들도 맥락이 지탱하고 있는 여러 흐름 위에 놓여있는 ‘점’이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휴머네이션은 행태조사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석을 하여 흐름과 맥락을 파악하고 매장에 적합한 흐름과 맥락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 글은 4월 20일 발행된 Bwith magazine에 기고한 글 입니다.
http://bwithmag.com/archives/3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