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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y 21. 2020

하루의 문화생활 / 지난한 삶의 가치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 ‘인 디 에어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미국 최고의 해고 전문가입니다. 기업의 의뢰를 받고 해고 대상자를 만나 최종 선고하는 것이 그의 일이죠. 미국 전역을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지만, 세상의 모든 관계가 귀찮다고 느끼는 그에게 이 일은 천직입니다. 그는 천만 마일리지를 모아 플래티넘 카드를 얻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안정적인 그의 삶은 어떤 두 사람이 나타나면서 흔들리게 됩니다. 출장 중 자신의 사상과 꼭 닮은 알렉스(베라 파미가)를 만납니다. 자신과 똑같이 관계 맺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며, 마일리지 카드에 흥분하는 알렉스. 라이언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또 다른 한명은 신입사원 나탈리(안나 켄드릭)입니다. 당돌하고 똑똑한 나탈리는 해고의 효율성을 위해 온라인(비대면) 해고시스템을 개발합니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전국을 여행할 필요가 없게 되죠.






극 중 라이언이라는 인물을 잘 나타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라이언의 강연입니다. 잠시 소개하면, 인생을 여행이죠. 여행을 할 때 필요한 것들을 챙겨봅시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가방에 넣는 거예요. 스마트폰, 책, 옷. 차와 집도 넣고요. 친구들, 연인, 가족도 넣어봅시다. 이제 걸어봅시다. 걸을 수 있나요? 무겁죠? 그 무게는 아마 책임감의 무게일겁니다. 라이언은 가방의 무게를 과감하게 줄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그의 가방은 무척 가볍죠.


라이언과 비슷한 듯 다른 두 인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볼게요. 라이언과 나탈리는 둘 다 해고를 대신 하는 일을 하죠. 라이언은 얼굴을 직접 마주보고 해고를 통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해고 후의 삶을 계획하여 줍니다. 나탈리는 비대면 해고를 선호하고, 표준화된 매뉴얼과 절차대로 진행하려 합니다. 효율을 위해서죠. 라이언이 아주 약간 더 인간적이죠?


알렉스와 라이언은 꼭 닮은 인물입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영화를 보며 직접 확인하시죠.


라이언의 쿨한 삶을 옹호하는 듯 시작하는 이 영화는, 약간의 차이가 라이언을 흔들기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바쁘게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인의 삶. 그에 맞추어 ‘책임감’이나 ‘충실함’ 같은 가치는 다소 낮게 평가되곤 합니다. 안정적이고 평온한 삶은 늙은 삶이라며 평가절하 받기 일쑤죠. 자기의 역할에 책임을 지고, 하루하루를 묵묵히 이어나가는 지난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라이언의 쿨한 생각은 분명 매력적이죠. 사실 개인의 삶이 절실할 때가 있잖아요.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있지 않나요? 일은 어때요. ‘평생직장’ 이라는 말은 여러분에게 안정감을 주나요, 답답함을 주나요? 삶의 무게가 버거우신가요, 아니면 그것이 동력이 되나요.


라이언은 결국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는데, 결혼식 직전 결혼을 고민하는 매제(알아요, 못났죠.)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Life is better with company.’ 라이언이 추구하는 가치와 전혀 다른 의미의 말입니다. 이 말이 어떻게 돌아오는지는 영화를 보시면 알거예요.






감독과 배우 얘기를 해볼게요.


이 영화의 감독 제이슨 라이트먼은 좋은 ‘톤’을 가졌습니다. 이 영화는 2008년을 배경으로 하고 (아시다시피 그 해는 미국 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은 시기죠) 해고전문가를 내세운 영화입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균형잡기가 쉽지 않겠죠? 이 감독은 이런 배경을 갖고 뻔하지 않은 얘기를 냉철한 주제의식을 갖고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 무겁지 않아요. 유머러스해요. 유머도 시니컬하기보단 따뜻한 유머가 담겨있어요. 감독의 이런 톤은 다른 작품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초기작 ‘주노’는 10대 임신을, 최근작 ‘툴리’는 독박육아와 산후우울증을 다루는데 현실적인 주제를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게 다루죠.


라이언을 연기한 조지 클루니는 커피광고로 익숙하실겁니다. 이 배우 잘생기고 목소리도 멋지지만, 외모에 연기력이 가려진 배우예요. 일단 이 영화는 라이언이 매력적이어야 성공합니다. ‘라이언처럼 사는 것도 좋겠다’는 설득이 성공해야 이 영화의 메시지가 더 잘 다가오거든요. 이 역할을 조지 클루니는 200% 해냅니다. 개인적으로는 배우의 매력을 가장 잘 살린 영화라고 생각해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배우를 이용한 영화도 있습니다. 조지 클루니를 완전히 바보처럼 다루는 영화가 있죠, 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입니다.)






이 영화는 에필로그를 포함해서, 일부 장면에는 그 당시 실제로 해고된 직원이 나옵니다. 배우 경험이 없는 일반인을 영화에 쓰는 경우가 있죠. 실제로 해고된 사람을 해고되는 직원 역할로 쓰다니 너무 잔인한거 아니야? 싶지만, 이 영화는 예의 있고 효과적으로 다룹니다. 잘 찾아보세요.



Tip: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강한 울림을 줍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난 1000편에 가까운 영화 중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엔딩크레딧에 재밌는 노래가 나오니, 끝까지 지켜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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