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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Jan 20. 2023

어린아이에게 암을 어떻게 전할까

지나가는 이야기

사실 이 주제는 저에게도 어렵습니다. 우선 어른에게도 전하기 힘든 암이라는 트라우마를 아직 돌봄이 필요한 어리고 여린 아이에게 설명하는 것도 힘든 과정일뿐더러,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을 마음의 고통이 안타깝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역시 암이라는 힘든 상황을 알려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부모의 얼굴만 봐도 어떤 상황인지 어렴풋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부모를 보며 자기들이 안전한 지를 확인합니다. 이건 본능이라 아무리 부모가 감추려 해도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건 직감적으로 전달됩니다. 뭔가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어렴풋이 알고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의 더 불안해집니다. 아이들도 우리 어른과 마찬가지로 그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면 결국에는 받아들이고 대처하고 버텨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불확실성만 커져 있을 때는 공포가 모든 상황을 압도해 버립니다. 그렇기에 암 상황에 대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확한 설명을 해주는 과정은 필요합니다.


아이들에게 암을 전달하는 상황은 두 가지입니다. 아이가 암에 걸려 힘든 치료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고, 암에 걸린 가족으로 인해 이전과 다른 환경을 감당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두 상황 모두에서 우리가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어야 할 슬픈 상황에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해야 할 수 있습니다. 어른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지만 가족 모두가 이 모든 상황을 함께 받아들이고 대처하기 위해서 아이들이 그 과정을 이해하고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소통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암의 상태에 따라, 암 당사자가 누구나에 따라, 아이들의 나이에 따라, 가정 내에서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겠습니다만, 여기서는 트라우마 상황을 아이와 소통하는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선은 어느 정도 안정된 환경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모도 아직까지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에게 더 큰 공포를 키울 수 있습니다. 진단과 대략의 치료과정이 정해진 후, 부모도 다소 마음을 다잡았을 때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도 자녀에게 암을 이야기하는 것은 트라우마 감정이 자극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다잡았던 마음이 다소 약해지고 안타까움과 두려움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아이들 앞에서 드러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럼에도 어른으로 다시 감정을 추스르고 현실에서의 든든함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선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소통이 그렇듯 한 번에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상황에 맞게 이야기해 나갑니다.


아이들은 이미 가족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그간 어수선하고 다소 혼란스러웠을 상황을 이해해 주고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예정되어 있는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질병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면 '암'이라는 단어도 사용해서 신체의 어느 부위인지 어느 정도의 상태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어떤 종류의 치료를 받게 되고 이런 치료에 인해서 어떤 변화나 불편함이 생길 수 있는지도요. 잘 모르는 영역은 어른들도 아직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함께 알아보자고 하거나 알게 되면 이야기해 주겠다고 말해 줍니다. 돌봄에 있어서 친척이 오는 등 바뀌는 상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그 변화될 계획을 이야기해 주고 아이들이 그 상황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도 확인하면서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느낄지도 모를 죄책감도 조심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들이 잘못해서, 부모님 말을 안 들어서, 거짓말을 해서 벌을 받고 나쁜 일이 생겼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암이라는 상황은 누군가의 잘못에 의해서 생긴 것도 아니고 그저 갑자기 생긴 돌발적인 상황이기에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대처해 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아이들 뿐만 아이라 어른인 부모 역시도 마음에서 복잡한 불편한 감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슬픔, 당황, 걱정, 불안, 죄책감 등의 감정은 이 상황에서는 누구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렇기에 부모가 이런 자연스러운 모든 감정을 자녀에게 숨길 필요도 없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감정이 있지만 잘 추슬러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도움이 되죠.


당연히 아이들은 어른보다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대화를 거부할 수도 있고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낼 수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부모의 가슴을 후벼 팔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 시기 나름의 방식으로 감정을 토로하면서 이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면 그런 토로를 조금은 지켜봐 주는 것이 낫습니다. 조금은 차분해졌을 때 아이들이 어떤 마음 상태에 있는지 무엇을 염려하는지 다시 들어주고 소통합니다.


아이들의 혼란한 감정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우리 가족 전체가 처해 있는 어려움에 대해 아이들에게도 할 수 있는 또는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런 부분은 학교나 가정에서의 자녀의 기본적인 생활일 수도 있고 치료나 간병 과정에서의 도와주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라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런 역할을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아이들 역시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중요한 것은 암이라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소외되거나 문제시되는 것을 경계하는 겁니다.


 때론 받아들이기 힘든 슬픈 상황에 대한 가능성도 이야기해야 할 수 있습니다. "나을 거다", "괜찮을 거다" 식의 무조건적인 긍정은 아이들이 이미 그렇지 않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뿐더러 나중에 부정적인 상황을 마주했을 때 더 크게 혼란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힘든 상황이 있을 수 있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분명 희망이 있기에 어른도 포기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혼자 방치되는 일은 없을 것이고 가족이 애정으로 다 함께 이 상황을 견뎌갈 것이라고도요.


부모 된 마음에서 아이들이 상처 없이 트라우마 없이 순탄하게 자라나기를 누구나 바랄 겁니다. 그렇지만 끊임없는 장애물이 눈앞에 나타나고 그걸 또 견뎌내고 넘어서는 게 삶의 과정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물론 부모입장에서 그걸 바라보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말이죠. 그 힘든 과정에서 부모는 그래도 곁에 있어주고 필요한 도움이 되어 주면서 함께 할 따름이지 그 과정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아이들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지금의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분명 소망이 있고 우리가 함께 하고 있고 이 과정을 견뎌 냈을 때 남겨지는 소중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자녀에게 암 알리기

http://cancer.snuh.org/board/B031/view.do?bbs_no=3696&searchKey=all&searchWord=&page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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