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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Jan 23. 2023

암환자이지만 아내이자 엄마랍니다.

암의 과정을 정서적으로 버텨나가기.

50대 여성 A는 자궁경부암으로 인해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다. 원래는 집에서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항암치료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요즘 암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걸 고민하고 있다. 평소 긍정적인 성격이라 암을 진단받고는 한동안 의기소침하기는 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잘 치료받고 회복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수술을 받고 나서 그래도 자신이 암 환자이고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는데 몸 관리는 커녕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자신을 알아차리고는 소위 현타가 왔다. 직장 생활을 잘하고 있는 남편도, 이제 중학생 아이들도 집안일은 자신들이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푹 쉬라고 한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막상 그게 되질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직 수술한 몸도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이전처럼 대부분의 집안일을 하고 있다. 가족들은 놔두면 자기들이 한다고 하는데 놔두는 게 안된다. 눈에 일거리가 보이고 막상 남편이나 아이들이 하고 있는 걸 보면 성에 차지도 않는다. 아이들도 내가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식사도 제대로 안 먹고 공부도 못 챙길까 걱정이다. 어느 순간 이렇게 되다 보면 항암치료를 하는 중에도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나도 내 몸이 소중한데 자칫 무리라도 해서 치료에도 방해가 될까 걱정이 된다.




흔히 유방암, 갑상선암, 난소암,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을 여성에서만 발생하거나 여성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해서 여성암이라고 합니다. 이런 여성암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은 다른 여타 암보다 암이 발생하는 나이가 보통 40-50대부터라 젊은 편입니다. 그렇다 보니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시기이기도 하죠. 여성을 상징하는 신체부위에 생기는 암이 많다 보니 암으로 인한 여성성의 손상을 느끼게 됩니다.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대인관계나 이성관계에서 이런 부분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임신과 출산 등과 관련된 경우라면 자신이 마치 여성으로서 역할을 못한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암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삶에서 손상을 경험하고, 그런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현실적으로 대처해 나갈 것이냐가 여성으로서 암을 헤쳐나가기 힘겨운 부분입니다.


물론 여성으로서 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연에서처럼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서의 역할입니다. 암 상황에서 직장 생활이 여러 난관에 봉착하듯, 가정생활에서도 암은 여러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첫 번째는 집안일입니다. 물론 집안일을 여성이 도맡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새부턴가 남편은 사회생활을 하니까,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하니까 등등의 이유로 자신이 청소, 빨래, 설거지, 음식 등 집안 여러 가지 일들을 도맡아 하게 되어버렸죠. 나만의 방식이나 정도가 있다 보니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 집안일에 손대기 시작하면 뭔가 마음에도 들지 않고 참고 지켜보는 게 오히려 답답한 느낌마저 듭니다. 둘째는 자녀 돌봄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아이들의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엄마의 역할은 더욱 큽니다. 아무리 내가 아프다고는 하지만 엄마의 손길 없이 지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죠. 더욱이 병원 치료 등으로 아이들의 기본적인 돌봄을 할 수 없게 되면 유치원이나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거나 식사를 챙겨주는 등 현실적인 영역에서 챙겨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집니다. 주변 다른 가족 친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마저 힘든 경우에는 병도 병이지만 아이들 걱정이 먼저 듭니다.


주변의 여러 도움으로 집안일이든 자녀 돌봄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이 불편한 건 여전할 수 있습니다. 이건 현실적인 부분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여러 상황을 그대로 바라보기 힘들어서 일 수 있습니다. 일종의 강박의 영역이지요. 다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런대로 지켜보고 받아들이기는 게 필요한데, 워낙 집안일이나 자녀 돌봄을 나 자신의 영역이라고 여겨 왔다 보니 남편이나 자녀이든,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척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손을 대는 것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이 정도 수준이 되면 내가 치료에 집중하지 못하고 가정 상황에 신경 쓰는 건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닌 나 자신의 불안 탓입니다. 삶에서 중요한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고 지금은 건강을 신경 써야 하는데 놓치고 마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대응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못 본 척하고 그냥 무시하는 거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혹은 당장 중요하지 않은 가사를 은근 요구하는 가족이 있어도, 아이들이 자신이 챙길 때처럼 깔끔해 보이지 않아도, 두 눈 질끈 감고 나만 생각하는 겁니다. 당연히 성격적으로 이걸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을 위해 일부러 그래 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또 다른 방법은 집안에서의 상황이 안 보이는 다른 공간으로 옮겨 지내는 거죠. 친정부모님 집에서 가서 지내거나 사연에서처럼 암요양병원으로 입원해서 일정 기간 치료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눈에 안 보이면 그나마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기가 수월해집니다.


솔직히 우리나라에 있는 암요양병원이라는 환경은 다른 나라에는 잘 없는 다소 기형적인 병원입니다. 여성에게 은연중에 가사를 압박하는 사회문화적 환경과 암보험이라는 형태로 많이 가입한 실손보험제도, 이 두 가지 요인이 만들어낸 특수한 의료환경입니다. 그렇다 보니 암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상당수가 중년 여성입니다. 집안일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들어 놓은 암 보험에서 지원도 된다고 하니 암요양병원에 안 갈 이유가 없는 셈입니다. 암요양병원에서 그간의 생활환경에서와 달리 건강한 생활습관을 익히면서 암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부가적인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다만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이나 암보험 가입여유에 따른 치료 양극화가 문제가 될 수 있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동반되는 정서적인 어려움도 고려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환경을 고려할 때 여성암에서는 사회적 지원 제도 마련도 필요합니다. 외국 같은 경우에는 암으로 인해 여성이 집안일에 대한 부담이 있거나 아이들의 돌봄이 필요한 경우에 이를 지원해 주는 민간지원사업이 있습니다. 여성암 환자를 지원하기 위해서 민간 기금마련이나 자원봉사자로 운영을 하고 있죠. 이러한 역할을 하는 단체가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 부족하고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한편으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처럼 암환자에서 치료기간 동안만이라도 실제적인 생활지원을 해주는 국가정책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사회가 되면서 노인의 신체기능 및 인지기능에 장애가 있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경우에 목욕이나 간병, 돌봄 등의 실제적인 생활을 지원해 주기 위한 사회보험제도입니다. 노인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와서 일정 시간 동안 돌봐주기도 합니다. 암 역시도 사회적으로 누구나 암에 걸릴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는 만큼 특히 여성암이나 청년암 등 가사 및 육아, 생업 등 사회적인 지원이 절실한 경우에는 실제적인 생활 측면에서의 지원을 포함한 별도의 사회보험제도가 고려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암을 통해서 가족 내에서 여성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암 경험자라 하더라도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이죠. 가족 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사람인데도, 우리는 막상 물이나 공기처럼 꼭 필요하고 소중한 대상을 당연한 듯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막상 그 부재를 경험했을 때에야 우리가 그간 아내와 어머니에게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암을 경험하는 여성 분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은 그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겁니다. 앞서 아내와 어머니의 경우처럼 나 역시 그 소중한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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