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Ssam Jan 29. 2023

암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산 좋고 물 좋은 데로 가서?

당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위암으로 치료를 받은 중년남성 A는 암 이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그간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왔고 삶의 목적이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암이라는 돌발적인 상황을 겪고 나니 이제까지 이루어왔던 일에서의 성취가 다 허무하게 느껴졌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다 마친 이후 A는 그간 마음에 품고 있던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바로 귀농이다. 예전부터 전원주택에 대한 꿈은 있었지만 바쁘게 살다 보니 이룰 수 없었지만 이제는 마음이 달라졌다. 지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 이 도시환경이 나에게 암을 걸리게 한 것 같고 자연 속의 시골마을로 가야 암이 재발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족과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다 함께 시골로 내려가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아이들도 아내도 도시생활을 벗어나기 싫어하는 눈치다. 괜히 나 때문에 다른 가족이 불편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혼자서 시골생활을 하기로 했다. 가끔 주말에 가족들이 나에게 오거나 내가 도시로 나가면 될 일이다. 그렇게 여러 군데 집을 알아보러 다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 계약을 하기로 했다. 계약을 하는 날, 어쩌다 보니 전에 그 집에 살던 사람을 만났다. 이야기인즉슨, 건강을 위해 시골 생활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힘이 들어 정리하고 도시로 돌아간다고 했다. A는 다시 마음이 복잡해진다.




암은 우리가 바라보는 삶에 대한 시각을 바꾸기도 합니다. 암이 아무래도 인생에서 커다란 트라우마이고 삶의 끝이라는 상황을 떠올리기 때문에 그간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가치를 다시 보게 만듭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기도 하고, 일에서 균형감을 찾게 되기도 하고, 종교적 믿음을 회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삶에서의 환경을 찾아갑니다. 술, 담배를 끊고, 건강한 식생활을 찾고 운동을 하고 규칙적은 생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연에서 처럼 삶의 환경을 더 건강한 자연환경으로 옮기려고 하기도 합니다. 암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말이죠.


물론 신체 건강이나 정신건강에 도시환경보다는 자연환경이 좋습니다. 산림치유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도시환경에서는 공기도 나쁘고 소음도 많고 긴장한 채로 많은 사람에 치이며, 정신없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도 교감신경이 항진되며 건강 면에서도 신체에 부담을 주게 됩니다. 반면 자연환경에서는 하루 해가 뜨고 지는 과정에 따라 규칙적인 느린 생활이 가능하고 적절한 움직임과 건강한 식단을 자연스레 할 수 있습니다. 시각, 청각, 후각 등에서 우리 감각도 불쾌한 자극보다는 건강한 요소가 많습니다. 도시환경과는 달리 자율신경계에서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기 좋고 우리 몸과 마음이 이완됩니다. 실제로 우리 몸의 심박변이도 및 뇌파, 수면 등의 지표도 자연환경에서 개선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암을 관리하는데도 도시환경보다는 자연환경이 더 나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 하더라도 하나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나를 가장 안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습관이 형성됩니다. 즉 내가 도시 생활에 오랜 시간 있었다면 그 환경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그런 영향을 덜 받게끔 적응된 나의 생활패턴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라 하더라도 내가 그 스트레스에 익숙해지고 피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스트레스로 인한 영향이 줄어듭니다. 반면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내가 그 환경에 익숙하지 않다면 새로운 자극이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활의 공간을 바꾸려 하고 하는 건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연에서의 상황을 돌아본다면 염려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은 내가 시골 생활에 대한 경험이 있는지입니다.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해서 그 생활에 익숙한 건 아닐 겁니다. 막상 호기롭게 전원생활을 시작했다가 여러 가지 불편함에 힘들어하고 포기하는 이야기는 드물지 않죠.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노동이 필요합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 생활이 나를 위한 생활인지, 전원주택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인지 분간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또 다른 불안요인은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고 해도 낯선 이방인에서 가까운 사람이 되어간다는 건 꽤나 힘든 일입니다. 건강한 환경을 찾아간다고 하지만 막상 관계적인 지지기반 측면에서는 나를 더 고립시키는 것이고 건강에는 오히려 더 나쁜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암의 상황에서 내 삶의 환경을 건강한 환경으로 만들어 나가려는 건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라는 공간이 있죠. 그 현실이라는 공간을 단시간 내에 이상적인 공간으로 바꾸려고 하면, 결국 이상이 만든 환상은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단계적으로 내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가야 합니다. 때론 정말 나의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이 나를 위해 절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자신이 그런 변화를 감당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1달 살기 식으로 시골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건 도시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어서 일 겁니다. 그런 스트레스가 우리 건강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스트레스는 피하고 줄이는 것이 해결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삶에서 적절한 스트레스는 삶의 활력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내가 삶에서 가지고 있는 목표나 욕심이 스트레스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를 피한다는 건 그만큼 내가 삶에서 가지는 욕심도 포기한다는 의미죠. 나는 그간 지금의 환경에서 그런 성취를 이루기 위해 스트레스를 감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도 만들어 갔고요.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살아왔던 삶의 환경을 부정하기보다는 더 나은 환경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입니다. 그 과정이 낯선 환경에서 보다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굳이 내가 잘하지도 못하는 걸 하려 하면 스스로 괴로워질 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날이 발전해 가는 암치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