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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Sep 14. 2023

치과 의사 선생님 때문에 사랑니 발치를 포기했습니다

마음 약해서~ 뽑지 못했네~~

치과 의사 선생님 때문에 사랑니 발치를 포기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마음이 약한 편이에요 아니면 강한 편인에요? 이 질문에 딱 떨어지는 답변을 하기엔 어려울 것 같아요. 질문한 저부터 그렇거든요.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차가운 얼음처럼 마음을 강하게 먹을 때가 있고, 눈처럼 마음까지 스르르 녹을 때가 있으니까요. 이 이야기에서는 후자입니다. 자, 그럼 시작할게요!




가장 뒤에 난 어금니인 '사랑니'가 있나요? 있다면 진즉에 다 뽑았나요 아니면 그냥 두었나요?



저는 사랑니만 위에 2개, 아래 2개로 총 4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부자죠? 예전부터 어느 치과에 가든 "아프지 않으면 굳이 뽑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의사 선생님들 말이라면 곧잘 듣기에 그 후로 뽑을 생각을 안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양치할 때 엔간히 신경 쓰이더군요. 입 끝자락에 난 사랑니까지 박박 닦으려 할 때마다 마치 임신 초기 증상처럼 "우웩. 우웩." 하며 헛구역질이 동반됐어요. 아프지 않으면 사랑니를 뽑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더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뽑기로 마음먹었죠. 의사 선생님의 어떤 유혹(사랑니 4개가 예쁘게 나 있으니 뽑지 마세요 등)에도 흔들리지 않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드디어 대망의 날! 어제 치과에 갔습니다. (이 치과는 2019년 3월부터 다니고 있어요) 실장님이 먼저 와서 잇몸 치료를 해주었어요.





"그동안 불편하신 데는 없으셨나요?"​



이때다 싶어,




"저... 사랑니 4개 다 뽑고 싶어요."라며 마치 아이가 엄마한테 '엄마, 내 마음 좀 알아주세요~~~'라고 하듯 서글픈 눈망울을 뽐내며 사랑니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전했습니다. ​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지니 님은 사랑니가 잘 자리 잡아서 안 뽑아도 되지만, 그런 이유라면 원장님이 뽑아주실 것 같은데요? 그럼, 이따 원장님께 말씀드려 보세요!" ​




드디어 나도 20년 만에 사랑니를 뽑겠구나, 싶었습니다. 20년 동안 동고동락한 사랑니 4개와 작별할 생각하니 긴장과 설렘이 교차했어요. 이때 원장님이 기존에 있던 내 썩은 이를 치료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지잉-지잉- 눈을 감고 치과 도구 소리를 듣고 있는데, 원장님이




"아... 힘을 더 줘야겠네..."라고 하시며, 옆에서 돕던 치위생사 선생님한테 말을 이었습니다.




"일주일 전에 말이야. ○○ 치료하러 오신 분, $¥€}~{`} (치과 의학 용어라 기억 못해요) 그거 하다가 이틀 동안 어깨에 찜질했잖아..."




아... 말인즉슨, 비교적 힘이 많이 들어가는 치료 때문에 팔은 물론 어깨와 목이 많이 아프셨다는 거죠. 한 달 전인가? 공채 개그맨 출신 치과 의사 김영삼 님의 말이 떠올랐어요. 그는 진료할 때마다 고개를 숙여서 어깨, 목 디스크는 늘 달고 산다고요. 그렇다면 일반 발치와는 달리 치의학적 수술에 해당하는 사랑니 발치는 원장님 몸에도 마음에도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장님의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얼떨결에 듣게 된 나,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내가 만약 사랑니를 다 뽑고 싶다고 말하면, 분명 원장님의 목과 어깨가 남아나질 않을 거예요. 하루가 멀다 하고 해야 하는 어깨 찜질은 따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추석 지나고 한 달 후에 오세요~ 도중에 이가 아프면 바로 내원하시고요." ​



진료가 끝났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로비로 가려는데 아까 그 실장님이




"원장님께 말씀드렸어요?" ​

"아, 실장님... 잠시만요..." ​




원장님이 들으실까 봐 실장님을 삥 뜯기라도 하듯 구석으로 몰았습니다.




"저... 그냥 사랑니 놔둘래요... 원장님 건강이 더 염려돼서 안 되겠어요... 사랑니 때문에 이가 아픈 것도 아니고, 일상생활이 크게 불편한 것도 아니니까 그냥 안 뽑을래요..."​

"네? 아니 그래도... 말씀은 드려 보시는 게..."​




미련 없이 돌아서는 여인네처럼 실장님한테 먼저 뒷모습을 보이며 로비로 나갔습니다. 네, 저는 우리 아빠 또래(60대 중반)인 원장님의 건강을 더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넌 어느 때 보면, 있던 정까지 떨어질 만큼 너무 냉정해!"라는 말을 가족이나 지인들 입에서 종종 듣습니다. 믿기시나요? 이렇게 마음 약한 나인데? (셀프 칭찬이 정신 건강에 그렇게나 좋대요) 원장님이 무조건 사랑니를 뽑지 말라고 했다면, 다른 병원에 가서라도 뽑겠다고 말했을 나예요. 하지만 이틀 내내 찜질할 정도로 어깨에 무리가 갔다던 분 앞에 대고 어찌 상담(발치하고 싶은 고집)을 청할 수 있을까요. 때로는 솜사탕조차 명함을 못 내밀게 할 정도의 부드러즉, 마음 약함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요.






"원장님! 4년 전에 제 사랑니 4개가 예쁘게 잘 났다고 하셨죠? 그래서 굳이 안 뽑아도 된다고 하셨고요. 언제 마음이 또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네, 안 뽑겠습니다. 양치할 때마다 가장 안쪽까지 박박 닦느라 헛구역질이 나지만, 뭐 매일 그런 건 또 아니니까요. 그때마다 눈물 찔끔 흘리고 말겠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진료해 주세요!"






치료 후 먹은 돈가츠라멘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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