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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Jul 20. 2022

군산에 볼 거 없지 않아요?

전북 군산 |  여행기를 쓰기 전 남기고픈 말이 많아서

 여행의 첫째 날. 전북 익산으로 향한 오전. 아가페 정양원에서 신록에서 조금 더 지난, 여름 중기의 푸르름으로 서울에서 가져온 고민을 지웠다. 볕이 따가운 오후는 매우 아끼는 뮤지컬 '팬레터'를 관람하며 지쳐버린 인생살이에 잠시 감춰둔 '감성'을 채운 뒤 PM 18:08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전북 군산으로 향했다. 한 달여만에 타는 KTX도 설렜지만 무궁화호라니. 여기저기를 둘러봐서 좋은 여행이 아니라 기차를 타서 좋은 여행인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선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무궁화호 열차에 앉아 푸른 논이 펼쳐진 차창 밖을 바라본다. 비행기를 탔을 때는 구름을 보는 게, 여객선을 탔을 때는 배가 지나간 자리에 생기는 부서진 바닷물의 기포를 바라보는 게 여행의 즐거움이듯, 기차를 탔을 때는 드넓고 끝없이 펼쳐지는 논을 보는 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니, 바로 전 보고 온 '팬레터'의 넘버 중 하나인 '내가 죽었을 때'가 떠오른다. 이 넘버가 나오기 전 해진의 넘버인 '해진의 편지' 속, '그게 누구라도 편지의 주인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가사부터 늘 울기 시작한다. 그 후 세훈의 '내가 죽었을 때' 넘버가 흘러나오면 눈을 가리고 울만큼 많이 우는데 지나가는 기차 밖의 풍경은 아직 남은 여운을 한 번 더 건드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텅 비어 있는 좌석, 적막한 객실, 세월이라는 때가 그대로 묻은 낡은 무궁화호 객실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향수'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향취를 내는 물이라는 향수(香水)라는 단어보다 고향의 그리움을 뜻하는 향수(鄕愁)가 먼저 떠오르고는 한다. 그러면 연이어 '넓은 벌 동쪽 끝으로…(중략)'로 시작하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鄕愁)가 자연스레 읊어진다.


 서울이 고향이기에 명절 때마다 찾아갈 시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조부모는 내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셨기에 뵌 적도 없지만, 무궁화호에 타니 대나무 돗자리 아래 보이는 시골집 노란 장판의 그을음이, 여름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 논밭을 뛰어다니며 흔들던 잠자리채가, 들고 다니던 녹색 곤충 채집통이 눈앞에 그려진다. 아마 여름 방학이 지나 개학을 하고서 듣는 친구들의 '내가 더 재밌는 여름을 보냈다.'는 자랑 속에서 들었던 말일 것이다. 무경험은 상상력을 이끌어낸다. 무궁화호에서 느낀 향수는 내 수많은 상상 중 하나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포근하고 편안하다.


 이동 수단으로 장소를 이동하는데 쓰는 시간은 생각과 상상을 하기 좋은 시간이다.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오늘 느낀 벅찬 감정과 추억 어린 감정이 교차되며 복잡했던 일상을 잊어 본다. 승차 인원이 단 한 명도 없던 대야역을 지나 군산역에 도착했다. 오지 않는 시내버스를 한참이나 기다리다 결국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고, 아침을 맞았다.

 군산 여행은 오후 16:05 기차를 타고 익산으로 가 익산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며 마무리할 계획이었기에, 아침과 점심을 잘 챙겨 먹고 둘러보는 곳은 두세 곳 정도만 가기로 계획했다.


 여행 둘째 날의 첫 일정인 아침 식사. 군산 여행을 검색하면 꼭 나오는 몇몇의 유명 중식집 중 한 곳을 갔다. 매운 자장면과 매운 짬뽕이 유명한 곳이었는데 넉살 좋은 동행인이 식사 중인 옆 테이블에 앉은 여행자에게 많이 맵냐며 물었고, 그들은 "겁나게 맵다."며 연신 코를 훌쩍이고 먹다 쉬기를 반복했다. 맛있게 먹으라며 인사를 하고 먼저 자리를 뜬 그들을 바로 옆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다시 만났고, 이번에는 그들이 먼저 물어본다. 여행을 왔냐며, 어디서 왔냐며, 어딜 갔다 왔냐며, 어딜 갈거냐며 묻는다. 그리고 철길마을을 갈 건지, 선유도도 갈 건지 물었다.

 

 어제 익산에서 왔고, 철길마을과 선유도는 시간상 안 갈 거라고 대답을 하자마자 잔뜩 인상을 쓰며 우리에게 푸념을 한다. "군산에 볼 거 없지 않아요? 여긴 너무 할 게 없어. 길거리에 사람도 하나도 안 돌아다니고, 식당은 죄다 문 닫고, 철길마을 가지 마요. 선유도도 뭐 볼 것도 없고. 우리는 할 게 너무 없어서 어제 OO(다른 지역)까지 갔다 왔어요."라면서.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한 듯했다.

 군산과 목포가 유사한 느낌인데, 여러   곳을 방문했던 경험을 토대로 몇 자 적자면 사람에 따라   곳을 '  없다. ' 생각할  있는 이유는 명성에 비해 취향이 맞지 않으면 속된 말로 '노잼'  가능성이  지역이라는 점이다.


 먼저 부산이나 제주처럼 넓은 도시에 다양한 할 거리가 있는 곳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주요 관광지는 가까운 위치에 모여 있고, 관광지도 그 규모가 크지 않은데, 관광객의 성향에 따라 이게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바다의 경우 서해와 일부 남해권은 동해권과 다르게 조수 간만의 차가 있어 시간에 따라 풍경이 다른 점도 매력적이고, 소소하게 아름다운 곳도 많은데, 이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에 따라 단순하게 썰물 때는 '뻘 = 바닷물이 없는 진흙', 물이 들어찬 시간에는 '흙탕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두 지역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 역사관, 기념관 등이 주요 관광지이기에 역사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은 '볼 게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시간'을 여행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테마를 쉽게 잡을 수 있다. 일본식 가옥을 터 삼아 운영 중인 카페, 식당, 게스트 하우스 등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거나, 대부분의 식당에서 보통 이상의 맛을 느낄 수 있으니 식도락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많은 기대를 갖기보다는 소소히 둘러보는 곳으로 예상하고 오면 더 즐겁게 다녀올 수 있다.


 군산 여행에서 많은 아쉬움만 가지고 가는 듯 보였던 그들이 생각나 말이 길어졌다. 군산 뚜벅이 여행기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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