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어째서

부자유친 유럽여행 1일 차

by 본드형
드디어 출발이다


아들과 약속한 둘만의 여행 가는 날.


폭염주의보가 내렸던 어제와 달리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15년 만에 다시 유럽에 간다는 설렘보다는

15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부담이

더 큰 걸 보면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비행기표를 일찍 싸게 잘 샀다 했는데

자리가 아들과 떨어진,

창가와 복도 중간에 낀 B석이다.


내심 옆사람에 부탁해 바꿀까 하고 있는데

젊은 여자 둘 사이에 앉은 녀석 표정이

뭘 굳이... 하는 눈치라 그냥 떨어져 가기로 했다.


가는 동안 영화나 왕창 보리라 마음먹고

이어폰 꽂는 곳 찾아 한창 헤매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옆자리 외국인이 웃으며 스크린 아래를 가리킨다.

(이상하다. 옛날엔 분명 팔걸이 부분에 있었다)


영화를 두 편 보고

기내식을 두 끼나 먹고

어색한 불어로 'Excusez-moi'

화장실도 두 번이나 눈치 보며 다녀왔건만

시간은 왜 그리 안 가는지...


화장실 가며

아들은 뭐 하나 슬쩍 보니

추억의 카드 게임에 한창 빠져 있었는데,

막상 자리에 돌아와 해 보니 시간 보내기엔 최고였다.




무려 13시간 44분 만에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를 하고

짐을 찾고

교통카드도 만들어

숙소로 가는 지하철을 타니

오일향 비슷한 것이 코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오래전 유학 시절에 맡았던

파리란 도시의 바로 그 이국적 냄새다.


12구 근처 역에서 내려 센 강을 따라 걷는데

이번 일정에 전권을 쥔 팔팔한 아들이

뒤따라 가는 아빠가 힘들어 보였는지 돌아보며

사진을 찍고 엄지 척을 한다.


내가 아니라 등 뒤 노을에게 한 거란다.


파리는 어째서
이름도 파리인건지...


얼마 전부터 유튜브에 자주 뜨던

스텔라장의 샹송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던

한 항공사 광고 카피처럼


파리는 어쩌면

여전히도 그 모습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