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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청년 Aug 10. 2019

우리 학교 전교 1등은 어떻게 공부를 잘하게 되었을까?

나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우리 학교 전교 1등은 어떻게 공부를 잘하게 되었을까?


"쟤는 어떻게 저렇게 공부를 잘할까?"

"쟤는 어떻게 서울대를 갔을까?"


다들 한 번쯤 스스로 물어보고 답도 해본 질문일 것이다.


"쟤는 부잣집에 자기 부모님도 서울대고, 맨날 학교 마치면 과외에, 학원에 돈을 처바르는데 공부를 못할 수가 있냐"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쟤는 학원 같은 데 돈도 안 쓰고 교과서만 보면서 공부하는데, 진짜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고, 주말에도 공부하고, 놀고 싶은 거 참고 진짜 열심히 노력해서 저렇게 된 거야"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요?


뜬금없이 이걸 왜 묻냐고? 놀랍게도 이게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다.


보수에게 전교 1등은 온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공부를 잘하게 된 사람들이다.

마찬가지로 부자들이 부자인 이유도 남들 놀 때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고생해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는다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남들 놀 때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상은 못 줄 망정, 세금을 걷어 그 사람들 일할 때 놀았던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심지어 [SKY 캐슬]에서 혜나 같이 집안이 어려운 사람도 혼자 노력해서 전교 1등을 할 수 있는 세상인데, 복지는 무슨. 얼토당토 안 한 소리다.


반면 진보에게 전교 1등은 고액 과외, 학원, 정보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해주는 '집안'이 있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게 된 사람들이다.

이 세상의 부자들 역시 자신의 노력보단 '운'에 의해 부자가 된 것다. 좋은 집안에 태어난 '운'. 이재용이 자기가 노력해서 부자가 됐나? 이건희 아들로 태어나서 부자가 된 거 아니냐. 세상 대부분의 전교 1등도 부잣집 딸 강예서의 모습이지, 김혜나가 아니다. 김혜나는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다. 성공한 사람들이 서울대를 나오고, 전교 1등을 하는 건 그 뒤를 서포트해 줄 재력과 권력이 있는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성공은 완전히 공정하고, 공평하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운' 좋았던 부자들의 부에는 세금을 매겨야 한다. 그리고 그 돈을 공정함과 공평함을 메꾸는 데 써야 한다. 이것이 진보의 입장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우리나라는 같은 연구소 2016년 데이터 기준 43.3%


물론, 요즘은 워낙 전 세계적으로 소득 불평등이 극심하고, 부자는 계속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해지는 현상이 심하다 보니 보수도 태어난 집안(사회적 배경)에 따라 출발지점이 달라진다는 것을 생판 부정하지는 못한다. "보수도 복지 합니다"란 말은 유럽의 보수는 일찌감치 해온 말이며, 이제는 우리나라 보수들도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기본적인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보수가 말하는 복지와 진보가 말하는 복지는 차이가 난다.


현실이 아무리 불평등하다 해도, 보수는 일단 개인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복지를 하는 주체도 정부가 나서기보다 기본적으로 부유한 개인, 교회, 자선단체에서 같은 곳에서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정부가 복지를 한다고 해도 딱 필요한 만큼 최소한만 해야 하고, 결국 남은 부분은 개인의 노력으로 채워야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를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에 비유하기도 한다(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하지만 진보에게 이런 보수의 복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진보의 목표는 모든 사람의 출발점이 최대한 같아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의 기부, 자선단체 활동 같은 것으로 현시대의 소득불평등을 메꿀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불평등을 없애고, 어떤 사회적 배경을 타고 나든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서 진보는 '자상한 부모'에 비유한다(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캡틴 아메리카 vs. 아이언맨 = 자유 vs. 통제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도 진보와 보수를 볼 수 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싸운 어벤져스들은 계속해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죽거나 다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미국 정부는 히어로들을 법적으로 등록하여 UN의 통제하여 두고,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일명 '스코비아 협정'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 이 협정을 두고 어벤져스 내부에서는 극심한 대립이 일어나고, 결국 캡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스코비아 협정' 반대파와 아이언맨을 중심으로 협정 찬성파로 나뉘어 싸우게 된다. 이 대립은 다름 아닌 진보(캡틴 아메리카)와 보수(아이언맨)의 대립이다.


(시빌 워의 내용을 정치적으로 해석한 발상은 조윤호 작가의 [포기하지 않는 자유주의자, 캡틴 아메리카]란 글로부터 영감을 얻었습니다. https://jobonzwa.tistory.com/2350)


캡틴 아메리카는 '자유와 책임'을 말한다. "협정에 서명하면 우린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원치 않는 곳에 강제로 보내고, 정작 가야 할 곳에 못 가게 하면 어쩔 거냐"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통제'를 말한다.  "우리는 위험하다. 통제되지 않는 우리는 나쁜 놈들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아이언맨의 생각이다. 캡틴 아메리카는 다시 반박한다. '그건 포기하자는 것이다. 국가의 통제를 따르는 건 죄책감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다. 완벽하진 않지만 우리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도 우리가 져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아이언맨의 경우 무고한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협정에 서명하려고 하는 반면, 캡틴 아메리카는 "우리 임무는 사람을 구하는 거지만, 때로 모두를 다 구하진 못해. 그 죄책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다음엔 아무도 못 구할지 몰라"라고 말하며 죄책감과 책임을 모두 안고 돌파하려고 한다. 그에 눈으로 볼 때 협정에 서명한다는 것은 '명령이 내려지지 않아 못 구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 그때도 무고하게 죽어갈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나 자신이 아닌 국가에 돌리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판단하고 시켜서 한 일이라는 핑계로 말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회피하는 대가로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언맨이 볼 때, 히어로 개개인을 지금처럼 자유롭게 풀어두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고, 그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는 캡틴 아메리카의 말은 애초에 불가능한 말이다. 자신들로 인해 무고하게 죽은 시민들을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말인가?


아이언맨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집 안에만 머물도록 만든 '완다'에 대해서도 캡틴 아메리카는 '그건 감금이야'라고 말하는 반면, 아이언맨은 '보호'라며 맞선다.


실제로 진보는 사회적으로 '자유'를 말한다. 학생들의 두발과 복장을 자유화한 '학생인권조례'에서부터 '간통죄,' '낙태죄' 폐지까지.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발과 복장을 풀어줬다고, 학생들이 불량?해질 까 봐 그걸 금지하는 것은 국가의 '오지랖'인 것이다.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다. '자유와 책임'은 인류가 진보함에 따라 사회가 나아가는 필연적인 방향이라는 것이다.


반면 보수는 '통제'하려고 한다. 자유보다는 통제를 통한 "위험과 무질서 예방"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는 학생인권조례에도 반대했고, 동성결혼 합법화, 낙태죄 폐지 등에도 반대한다. 학생들이 불량해지고, 학교 분위기가 엉망이 될 것을 알면서도 두발, 복장을 자유화하는 것은 학생들을 바른 길로 이끌고, 질서를 유지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직무유기다.



역사적으로 '투표권'도 좋은 예다. 우리나라야 해방이 되고 나서 바로 국민이 투표권을 가졌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투표권은 특정 계층만이 가진 특권이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서민들은 정치적 판단을 수준이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질서와 올바름을 위한 '통제'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차별 없는 투표권을 주장했다. 사람에 대한 믿음, '자유와 책임'에 대한 요구였다.



진보와 보수가 없다고?? 우리가 조심해야 할 사람들...


이렇게 진보와 보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형태로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진보와 보수를 모두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정치인들 중에서도 "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자신은 "상식파, 합리파"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를 모르는 바보이거나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기회주의자, 둘 중 하나다. 정치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에 기초를 둔다. 그리고 "내가 어떤 세상을 원하고 만들고자 하는가"는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진보와 보수의 철학에 기초를 둔다. 상식파라고? 한번 생각해보자.



누군가에겐 "이재용은 이건희 아들로 태어난 그 '운' 하나만으로 부자가 되었으니 당연히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가 상식일 수 있고, "이병철이 열심히 노력해서 가난을 극복하고, 부자가 되었으면 당연히 그 아들, 손자들은 혜택을 보는 거지. 그걸 왜 뭐라고 하냐"가 상식일 수 있다. 상식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그런데 합리파라니? 상식파라니?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오히려 진보와 보수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진보 '정치인,' 보수 '정치인'은 모두 더럽고, 부도덕한 세력이며, 자신은 그들과 다른 '상식파'"라고 주장하며 우리를 속이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기존의 진보와 보수 세력이 모두 더럽고, 부도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식파'라는 사람들의 주장은 "나는 원하는 세상의 기준이 없어요. 그냥 그때그때 좋은 거 해서 내가 당선되기만 하며 돼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느꼈기를 바라지만, 보수와 진보는 둘 다 논리적이다. 둘 다 합리적이고, 둘 다 말이 된다. 그래서 결국 이건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어떻게 세상을 볼 것인가? 그 선택은 내가 살아온 인생, 내가 경험한 바, 그리고 내가 원하는 세상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멀리 볼 필요 없다. 내 바로 옆에 있는 전교 1등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자 ^^



#1장 나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질문과 코멘트가 있다면 언제든지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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