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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 Nov 27. 2023

그렇게 마시다가 손가락도 꼬부라지고 말았습니다

효율적 미식생활 네 번째, 즐거운 프랑스 와인 모임


수능이 지난 다음 날, 지난번 와인 모임(https://brunch.co.kr/@yumimiya/14)의 지인들과 또다시 만남을 가졌다. 매번 수능이 다가오면 날씨가 추워지더니, 올해도 겨울 맞나 싶게 따뜻하던 날씨가 수능 주차가 되자마자 귀신 같이 기온부터 뚝 떨어지며 찬바람이 숭숭 불었다. 연말이 다가오니 누적된 피로에, 연말 특수 피로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피로감까지 어우러져 몸이 늘어지고 피곤하기 그지없는데 날씨까지 추워지니 이러다간 지독한 감기에 걸리겠다 싶어 롱패딩을 주섬주섬 찾아 입고 성내동으로 향했다.


이 날 마신 와인들... 숙취가 왜 이렇게 있지 했더니 그냥 많이 먹었던 것이다


이 날도 와인을 공부하는 지인이 프랑스 주요 지역의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 와인을 셀렉하고 구매, 장소 물색까지 정성을 쏟은 모임이어서 나도 뭔가 들고 가고 싶다는 마음에 뭘 가져갈지 고민하다가 성수동 베이커리 '뺑드에코'에서 슈톨렌을 사갔다. 슈톨렌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먹는 독일 빵으로, 술에 절인 말린 과일과 견과류, 향신료들이 들어간 빵을 버터로 코팅하고 슈가파우더를 눈처럼 잔뜩 뿌렸다. 음식은 맛도 중요하지만 음식의 설명 역시 맛있어야 한다는 지론이 있는데, '술에 절인 말린 과일', '설탕', '견과류', '향신료'라는 단어라니 마음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나는 음식 묘사가 있는 글에 아주 환장한다. 봤던 것 중에 좋았던 것은 조안 해리스의 '블랙베리와인'과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 그리고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들이다) 특히 말린 과일을 좋아하는 내게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메뉴라서, 언젠가 한 번 먹은 뒤로는 매년 다른 가게의 슈톨렌과 와인을 함께 먹고 마시며 행복해하고 있다.


사고 포장까지 찍었지만 먹은 사진은 없었던 슈톨렌... 맛은 좋았다


나도 슈톨렌을 가져간 것처럼, 다른 지인들도 와인 도네이션에 케이크, 와인전용숙취해소제, 치즈까지 챙겨 와 더욱 즐겁고 맛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이 날부터는 지인의 리드에 따라 와인 공부를 해보자며 나도 핸드폰에 노트 기능을 켜고 열심히 받아 적었는데(나는 갤럭시 노트 10+를 잘 쓰고 있다. 펜이 진짜 혁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사람이, 술을 마시니까 손가락도 꼬부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정신이 분명했던 왼쪽과 손가락이 많이 취한 오른쪽 메모


술을 마셨지만 쓰려는 의지는 가득했던 것이다... 뭐 뒤에 마신 건 엄청 떫었고 3.7만 원짜리였나 보지..? 아무튼 이 날 마신 와인 리스트와 느꼈던 맛은 다음과 같다.


베르테네 부르고뉴 알리고떼(BERTHENET, Bourgogne Aligote 2020)

최근에 뜨는 가볍고 트렌디한 스타일. 와인 공부하시는 분들이 테이스팅 노트에 쓸 때 '심플와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가볍고 시원한, 목 넘김이 좋은 느낌으로 시트러스 하고 산도는 낮은 편. 웰컴 와인으로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트렌디한 와인이라는 말을 들으니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마시는 술(와인, 위스키)이 각광받으며 와인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져, 합리적인 가격+보장된 맛의 무난한 화이트가 합쳐서 알리고떼와 같은 와인이 많이 생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1.9만원이라면 무척 가성비가 좋다고 느꼈는데, 이건 내가 강한 산미나 탄닌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입맛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굳이 따지면 리슬링, 미네랄이 강한 화이트를 선호하는 쪽)


도멘 윌리엄 페브르, 샤블리 프리미엄 크뤼 바이용(Domaine WILLIAM FEVRE, CHABLIS PREMIER CRU VAILLONS, 2020)

도멘 윌리엄 페브르는 샤블리 하우스 중에서도 훌륭한 곳이라고 한다. 마셨을 때의 느낌은 세밀하고, 복잡하고, 맛의 층위가 상당히 다양하는 느낌.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이 상당해서 일단 비싼 와인(10만 원대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라벨 읽는 법도 잘 모르지만(그래서 이 날 지인이 알려줌) 맛의 층위가 복잡하고 세밀하다고 느껴지는 와인이 있는데 이런 건 꼭 비싸더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미네랄리티도 느껴졌고. 신기한 건, 처음에는 아주 세밀하고 날카로운 맛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확 풀어지면서 달콤한 향이 올라오고 훨씬 맛이 좋아져서 더 즐겁게 마실 수 있었다.


조르쥐 뒤뵈프, 보졸레 빌라쥐 누보(Georges Duboeuf, Beaujolais Villages Nouveau, 2023)

모임과 날짜가 비슷했던 '보졸레누보의 날(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맞춰 지인이 준비한 도네이션! 프랑스부르고뉴 바로 아래 있는 '보졸레'에서 올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햇와인'이다. '햇와인'이라 그런지 아주 맛있고 좋다기보다는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맛은 상당히 달고 시큼하고 새큼한 어린 느낌이 물씬 났다. 처음엔 크림쿠키와 소다향 같은 향이 났는데 나중엔 딸기요거트 같이 변했는데, 기본적으로는 달고 시큼 새큼한 느낌의 궤는 같았다.


뱅상 지라르댕, 뫼르소 레 끌로(Vincent girardin, Meursault Les Clous, 2018) 

뫼르소는 화이트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의 혀가 지치기 시작했는데...? 깨 볶는 향이 났는데 이 냄새가 나도 비싼 와인(10만원대 이상)이라고 해서 얘도 비싸겠군 하고 생각했다. 여운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이때 같이 먹은 요리 때문일까? 이런 와인은 좋은 프렌치나 프렌치스타일로 조리한 생선 요리와 먹고 싶어 진다!


즐거웠지..


그리고 이후부터는 결국 피로와 지친 혀와 술기운으로 메모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아무튼 맛있다는 느낌적인 느낌은 있는데 아래 와인은 잘 기억이 안 나서 너무 슬프다. 쓰는 와중에도 머리를 막막 때려서라도 기억을 돌리고 싶다...


도멘 제라르 뻬라조, 모레 생드니(Domaine GÉRARD PEIRAZEAU et Fils, MOREY-ST-DENIS (COTE-D'OR), 2020)

스테판 오지에, 르 템프 에스트 베누 꼬뜨 뒤 론(STEPHANE OGIER, LE TEMPS EST VENU, COTES DU RHONE, 2021)

엉끌로 드 비오, 라랑드 뽀므롤(ENCLOS DE VIAUD, LALANDE-DE-POMEROL, 2016)


이 날도 역시 다양한 음식과 함께 했다



식사와 와인을 함께 하니, 역시 페어링이 중요하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와인과 와인숙취해소제와 케이크까지!


다음번 모임은 이탈리아, 스페인 콘셉트로 각자 한 바틀씩 가져오기로 했는데 벌써부터 기대된다.





※. 같은 글을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arundia )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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