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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나나나 May 18. 2020

짝사랑 1 : 상상

나의 상상 속에선 늘 너와 내가 함께였다. 다른 흔해 빠진 연인들처럼, 뻔해 빠진 연애 소설처럼, 너와 난 손을 잡고 공원을 거닐었고,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다 입을 맞추고, 서로를 사랑해 마지않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끌어안고, 저녁에 뭘 먹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장을 보고, 양손 무겁게 집으로 돌아왔다. 서툰 요리 실력으로 함께 저녁을 먹고, 설거지는 귀찮다며 미뤄두고, 다시 입을 맞추고, 서로의 손을 잡고, 침대에 누워 눈을 맞추고, 서로의 몸에 입을 맞추고,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따스한 햇빛에 함께 눈을 떴다. 


그래, 이 모든 건 나의 상상이었다. 내가 만든 지독한 감옥이었다. 난 그 감옥에 갇혀 자꾸 널 그리고, 그리워하고, 아파하다 엉엉 울고, 정신 차리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래, 이 상상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넌 나의 마음을 모르고, 넌 하염없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나에겐 눈길도 따스한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 그런 네게 난 내 마음을 말할 자신이 없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넌 꿈속에도 한 번을 나타나지 않았다. 잠들기 전 매일 기도했다. 오늘은 네가 내 꿈에 나와 내 손을 잡고, 내게 사랑을 말하고, 난 그 사랑에 견딜 수 없다는 듯 웃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넌 온전히 내 상상 속에만 존재했다. 넌 내 꿈에도,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긋지긋했다. 말도 안 되는 환상에 사로잡혀 우울해하는 나도, 그 우울 속에서 하염없이 헤엄치는 나도, 그 환상을 지독하게 사랑해 놓지 못하는 나도, 그리고 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버리는 나도, 다 지겨웠다. 홀로 방에서 우울함과 자책감에 허덕이는 나를, 울고 싶은데 울지도 못하는 나를, 너에게 모든 걸 말하고 싶어 머리를 쥐어뜯는 나를, 그럴 용기조차 없으면서 포기하지도 못하는 나를 죽도록 미워했다. 


굳게 마음을 먹어도 난 늘 그 상상 속에 갇혀버렸고, 그 안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는 채로 살았다. 포기하기로 수천번 마음을 먹어도 난 다시 그 자리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날 미워하는 무한 굴레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그런 나를 미워하기보다, 싫어하기보다, 지긋지긋하게 여기기보다, 안쓰럽게 여기게 된 건. 그래서 날 안아 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그래서 스스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게 된 건, 그래서 스스로를 응원하게 된 건. 그래서 울고 싶을 때 목놓아 엉엉 울어버리고, 스스로를 토닥이고, 그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 거울 속 실재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모든 상상이 그러하듯 내가 생각하지 않으니, 내가 한 걸음 멀어지니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제 너를 생각했냐는 듯 너의 모습은 희미해지고, 내가 미워했던 나의 모습은 점차 변해갔다. 


여전히 종종 난 널 떠올린다. 그리고 아파한다. 그래도 이제 조금은 널 생각하며 웃을 수 있고, 조금 남은 너의 생각도 떨쳐버릴 수 있다. 이제 혼자 방 안에 남겨져도, 때론 우울 속에 헤엄을 쳐도, 난 다시 스스로를 안쓰럽게 여기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널 지워버릴 수 있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네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고, 손을 흔들 수 있고, 나도 널 등지고 걸어갈 수 있다. 넌 내게 참으로 끔찍했던 짝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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