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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정 Jul 01. 2024

뜨거운 여름 시원한 카페

알뜰살뜰하게 살아가는 것이 몸에 밴 그녀가 가장 과감하게 소비한 것이 있다면 신혼여행입니다.

이 무더운 여름에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싱그러웠던 그때 아름다운 하와이의 풍경들이 여름이면 늘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모래사장과 맑은 공기, 맛있는 커피 향과 여유 있는 사람들의 얼굴표정들이요.


"야외촬영은 어떻게 하지?"

"여행 가서 자연스러운 사진 찍는 게 더 좋아."

"오케이!"


" 그럼, 예단은 어떻게 하지?"

" 거품 다 빼고 양가 부모님 좋은 옷 한 벌씩 해 입으실 수 있을 만큼씩 드리자."

"그것도 오케이!"


"결혼식장은?"

"시부모님께서 연세가 많으시니까 시부모님 댁 가까운 곳에서 하자고 하셨어. 우리 부모님께서."

"감사하다. 정말!"


그녀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스물여섯에 그와 결혼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일이던지 제가 하자는 것은 모두 오케이를 하는 사람을 만나 응원을 받으며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습니다. 줄이고 줄이고 아끼고 아끼며 신혼여행 비용을 마련했고 꿈에 그리던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에서 맨발로 산책을 하고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즐겼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커피를 쓰게 먹지?"

"그래도 나는 맛있기만 한데?"


"여기 참 좋다. 우리 10주년에 다시 오자."


그는 맨발로 해변을 걷고 또 걸으며 한적하고 아름다운 하와이에 반했나 봅니다. 결혼 10주년에 꼭 다시 그곳에 오자고 먼저 제안하였지요. 하지만 삶은 그리 녹녹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살피고 연봉이 높은 회사를 박차고 나와 자영업을 하며 광야에 홀로 선 듯한 세월을 살아내야 했습니다. 그 사이 그와 그녀 사이에는 동지애가 생겨 그 어떤 파도도 함께 넘어가는 강력한 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언제 와이키키 해변을 다시 걷지?"

"조금만 기다려봐."

"기다리기 힘들어. 좀 서둘러 봐 봐."

"웅, 거의 다 되었으니 기다린 김에 조금만 더 기다려줘."


와이키키 해변 대신 동네 산책길을 맨발로 걸으며 종알종알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흙길을 30분쯤 걷고 시원한 물에 발을 씻고 다시 1시간쯤 더 걸었습니다.


"너무 덥다. 시원한 커피 한 잔 마시자."

"좋아. 여기가 하와이다 생각하고 마시면 되지."


신이 난 아이들이 바닥분수에서 뛰어놀고 있습니다. 치솟는 물줄기 사이를 맨발로 뛰어다니고 이미 젖은 옷과 머리카락, 작은 몸에 찬란한 햇살이 튕겨져 나옵니다. 부모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들을 챙기고 지나는 사람들이 이들의 모습을 보고 미소 짓는 완벽한 여름날입니다.


그녀와 그는 창밖으로 이 풍경을 바라보며 향긋한 커피를 즐깁니다.

뜨거운 여름을 시원한 카페에서 마주합니다.


"올여름 운동 좀 해서 살도 좀 빼고 건강하자."

"넵 그리하겠습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창밖으로 보이는 아이들을 봅니다.

여름처럼 찬란한 아이들의 순간!

펄떡이는 숭어 같은 아이들의 생동감에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기서 저렇게 놀았었는데 언제 이렇게 컸을까?"

"세월이 달리기를 하나 봐."



훌쩍 자란 아이들  2024.7.1



그때 전화벨이 울립니다.


"엄마아빠, 어디야?"

"웅, 우리 산책하다가 이제 카페야."

"나 수석합격이래."

"와~축하한다, 아들!"


그녀와 그의 큰 아이가 지난번 치른 대학원 시험에서 수석입학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묵묵히 성실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는 아이.

학부까지 부모의 지원을 받고 이제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아이가 고맙습니다. 힘들고 외로운 순간 많았겠지만 내색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날들이 달디단 열매로 열리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합니다. 아직도 헤쳐나가야 할 수많은 험한 길 또한 씩씩하게 잘 걸어 나갈 것을 믿습니다.


이제 그와 그녀의 여름날은 가고 아이들의 여름날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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