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효정 Jun 29. 2024

평생 무료 카페

평생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언제든 편안하게 들러서 마시고 싶은 음료를 주문하고 음료가 만들어지는 동안 턱을 괴고 앉아 창밖의 풍경을 살펴보거나 마당으로 나가 이제 막 피어나는 계절꽃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마음이 참 넉넉해질 것입니다. 


저에게는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시골집이 평생 무료 카페입니다.

이 카페는 신기하게도 말만 하면 뭐든지 다 나옵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뭐 시원한 거 먹고 싶다."

"그래? 그럼 수박 둥둥 매실차 먹을까?"


수박 둥둥 매실차를 먹기 위해서는 밭으로 나가서 수박을 따 와야 합니다. 손님은 슬리퍼를 신고 밭으로 가서 지푸라기 침대 위에서 둥근 배를 내놓고 뒹굴고 있는 수박들을 하나씩 두드려 보고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나는 수박을 따서 시원한 물에 담궈놉니다. 잠시 후 수박을 꺼내서 깍둑썰기를 하고 매실차에 넣어줍니다. 여기에 미리 얼려놓은 매실얼음을 넣어 얼음이 녹아도 음료의 농도가 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이 평생 무료 카페는 수박 둥둥 매실차를 주문하면 시키지도 않은 커다란 수박이 세모 모양으로 큼직하게 잘린 채로 서빙됩니다. 


"비가 오는데 커피 한 잔 할까요?"

"단 커피, 쓴 커피 다 있어. 여기서 골라봐."

"와, 외국인도 오면 좋아하겠어. 엄마"

"여기 인삼차, 홍삼차도 있네."


엄마가 활짝 열어놓은 주방 장에는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인기 있는 차는 대부분 들어있습니다. 예전과 비슷한 구성인데 딸들이 쓴 커피를 찾자 카누가 하나 추가 된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쓴 커피를 먹을 때는 봄쑥으로 만든 쑥개떡이 사이드 메뉴로 따라 나옵니다. 엄마표 쑥개떡은 영혼을 다독여 주는 '내 마음의 닭고기 수프'입니다.


"엄마가 만든 떡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그렇다면 정말 고맙지. 봄쑥이 요렇게 손톱만 할 때 뜯은 거야. 겨울 동안 찬바람을 이기고 조금씩 자라난 쑥이라 얼마나 좋은 에너지가 많겠니?"

"그래서 힘들 때 먹으면 몇 개만 먹어도 힘이 나나 봐."


저는 다른 집 딸들처럼 엄마와 카페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합니다. 엄마는 왜 비싼 차를 밖에서 사 먹느냐며 우리 집이 평생 무료 카페라고 웃으십니다. 평생 알뜰하게 살아오신 엄마는 카페 음료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평생 무료 카페의 장점은 시절 메뉴가 있다는 것인데요, 한겨울엔 시루떡에 식혜와 수정과가 나오고 여름에는 무조건 삼계탕을 먹어야만 커피나 차를 먹을 수 있습니다. 


6월 20일쯤부터는 커다란 살구나무에 열린 왕살구들이 탐스럽게 익어 수확해야 합니다. 살구로는 살구쨈, 살구주스, 건살구 등을 만들 수 있는데 밀크티에 살구청을 넣어 살구밀크티를 만들어 먹거나, 시원하게 살구주스를 해 먹어도 향긋함과 새콤달콤함이 아주 일품입니다.

평생 무료 카페 마당의 살구나무, 2023.6.24


이 살구나무는 50년이 넘은 나무인데요, 봄이면 이 살구나무의 꽃을 찍으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사진작가가 몇 있을 정도로 아름답게 꽃을 피웁니다.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나무, 그 열매를 먹고 자란 아이들이 이제 중년이 되어 서로의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을 바라봅니다. 


이 나무도 힘에 겨웠는지 작년에는 청을 담그고 냉동으로 얼리고 이 집 저 집 나누어도 남을 정도로 살구가 열렸었는데 올해는 겨우 한 두 광주리를 수확하였습니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친구처럼 정겨운 나무입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시골집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무도 받지 않습니다. 다시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깻모종을 심으셨다고 하시는데 목소리에 기운이 없습니다. 현재 그곳의 날씨는 28도, 이 온도가 어제 보다 2도 낮아진 온도랍니다.


평생 무료 카페의 주인장은 평생 농사를 지으며 그것을 먹고 먹이며 살았습니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여린 깻모종을 심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지금. 전화기 너무로 하신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엄마, 너무 더울 때 나가면 안 돼."

"더워도 힘닿는 데까지 뭐라도 심어야지."


 농사일로 지친 부모님께 살구주스 한 잔 시원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은 날.

 자꾸만 어릴 적 풍요로운 일상이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이전 25화 운동화 신고 어슬렁 거리다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