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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을 걸어요

by 남효정 Jan 20. 2025

어제 일요일에 제가 몸이 좋지않았는데요, 브런치북을 설정하지 않고 글을 그냥 발행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해당 글을 다시 브런치북 설정을 하여 올립니다. 소중한 댓글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댓글은 캡쳐하여 글 아래에 붙여둘게요. 고맙습니다.



"아침에 일찍 만나."

"그래야 이야기 많이 하지."


우리 세 자매는 가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만나서 걷고 이야기 나누기를 즐긴다. 물론 맛있는 브런치도 우리의 목적 중 하나이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지금이 그럴 때냐 싶었지만 지금이야말로 힘을 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침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용산역으로 향한다. 추운 날일수록 아침해는 더 웅장하게 떠오른다는 것을 나는 일생에서 얼마나 자주 느껴왔던가. 찬란하게 쏟아지는 아침해만큼 신비롭고 기운찬 것이 있던가? 이 시국에 변함없이 찬란한 빛을 비추는 아침해가 따사롭고 감사하다. 우리의 마음처럼 햇살마저 그 빛을 잃었다면 우리는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아침마다 어찌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며 걷는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작은 브런치카페로 들어선다. 감나무에 붉은 감이 그대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 정겨운 시골집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적에는 보이지 않던 감나무. 한 살씩 나이가 들수록 감나무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다. 1월에 가을의 홍시를 그대로 달고 있는 마당의 감나무가 신기하다. 1층에서 주문을 하고 옥외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가정집을 그대로 개조하여 만든 공간이라 아늑하다.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적고 가정집 구조의 공간이 아늑함을 주는 브런치카페.


두 시간쯤 지나 우리는 남대문시장으로 갔다. 사람들이 많아 이동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옷깃을 스치며 걷는다. 그리운 생화향기가 꽃시장 입구 계단까지 넘쳐흐른다. 꽃이 가득한 꽃시장에서 형형색색 꽃다발 사이를 걷는다. 나는 남대문시장에서 백합과 안개꽃을 사서 신문지에 둘둘 말아 들고 덕수궁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그다지 경쾌하지 않다.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는 태극기부대의 함성소리를 들으며 정동길 안쪽으로 들어간다. 덕수궁 외벽을 따라 걷다가 우리들의 아지트 카페로 향하기 위해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고즈넉한 덕수궁 돌담길 걷기를 즐긴다.

이 길을 얼마나 많이 걸었던가? 덕수궁 근처에서 일할 때는 점심식사 후 꼭 이 길을 걸었고 지금도 약속장소를 덕수궁 근처로 잡아 이 길을 지나는 계절의 다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한다. 어떤 날은 혼자 와서 미술관에서 그림을 본 후 조용히 커피 한 잔을 들고 돌담길을 걷기도 하고 버스킹 하는 이름 모를 가수의 노래를 들어보기도 한다.


"지금쯤 그 거대한 은행나무가 아름답게 물들겠는데."

"이제 덕수궁 안 작약이 흐드러질 때야. 이번 주에 만나자."

"가을볕 쬐면서 이야기 좀 해."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핑계 삼아 나의 다정한 사람들과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다. 이 길이 사람이라면 이토록 이 길을 좋아하는 나의 마음에 감동했을지도 모른다. 불현듯 이병률 시인의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여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만나서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차나 커피를 마신 후 걷는 시간들이 참 좋다. 단단한 돌담에 비치는 겨울햇살이 따사로운 날이다. 계절마다 나는 이 길을 부지런히 걸으며 정다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이 겨울이 가지 전 어느 눈이 내리는 날에 덕수궁 돌담길을 다시 걷고 싶다.




감기 기운인지 밤새 잠을 설치고 일어난 일요일 아침.

겨우 일어나 옆지기가 사다 준 사과 한 알을 먹고 이 글을 씁니다.

그동안의 내란성 긴장이 다소 풀린 덕분인지, 부지런히 걷지 않은 지난 주의 생활습관 때문인지 몸이 본격적으로 앓아 누으려나 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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