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것을 먹다가 왈칵 눈물이 나는 것은 순전히 별 때문이다. 별은 어디로 숨었을까.
나는 늘 분주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부리나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답답한 강의실을 벗어나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또야에게서 톡이 온다.
뭐 해?
지금 알바 가고 있어. 정원이 거대한 그 집에.
오늘도 잘 버텨라. 그 돌아이 앉혀놓고 공부시키려면 힘 좀 빼겠다.
또야? 네가 그런 말 하니 참 우습다. 이제 대학생 되었다 이거야?
내가 그런 돌아이였기 때문에 너의 고충도 이해하고 그 아이의 고충도 아주 이해한다는 뜻이야.
(정적)
대학에 와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갈 즈음, 아직 청소년의 얼굴이 남아있는 한 아이가 나타났다. 앞뒤 재지 않고 솔직한, 손해를 보더라도 할 말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이 아이에 대해 나는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또야는 가끔 나를 웃게 한다. 이런 톡에서 내가 히읗을 여러 번 쳐서 보내지 않아도 아무 말 없는 타이밍에 내가 웃고 있다는 것을 이 아이는 알고 있다. 내가 웃을 때 나를 한 참 들여다보여 '너도 웃을 땐 참 밝구나. 좋다. 그렇게 좀 웃어봐.'하고 신기한 얼굴을 하곤 했다.
이번엔 내가 톡을 건넨다.
너는 뭐 해?
나는 오늘 수업 없어. 11시부터 알바 중. 쌀국숫집이야.
아내의 열매라는 소설 알아?
아니, 처음 들어.
한 강 작가의 소설이야.
웅 그래, 어떤 이야기인데? 어, 손님이다. 다음에 얘기하자.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쯤 와서 내렸다. 거대한 대문이 큰처럼 벌리고 선 골목을 지난다. 그중 하얀 대문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자 집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 소설에 나오는 아내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생각이 일어난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싶어 하던 여자는 모아놓은 적금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지 않았지. 그 대신 결혼이라는 것을 했어. 그다음 13층 아파트에서 조금씩 식물화되어 간다. 여자는 몸에 멍이 생기면서 말 수가 줄고 멍이 부풀어 오르며 커지면서 점차 식물이 되어 간다. 햇빛과 바람, 물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고 싶어 했고 마침내 식물이 된다.
그 소설을 읽으며 나는 처절하고 아름다운 양 극단의 감정을 느꼈다.
왜 나는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S대 정문을 날마다 통과해서 교정을 거닐어도 즐겁지 않은가?
왜 나는 지금 이 육중한 대문을 밀치고 들어가는가?
한 달 과외가 끝나면 제법 적지 않은 돈이 통장으로 입금된다. 나는 싫어도 최저 시급 받으며 여러 사람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되는 이런 일을 그냥 꾸역꾸역 하고 있다.
여자는 왜 식물이 되었을까?
무엇이 그녀를 식물이 되도록 휘몰아쳤을까?
나도 이 거대한 사회에서 조금씩 식물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다. 정원은 버스와 지하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소시민의 삶과 전혀 알 수 있는 나에게 과외를 받는 아이가 사는 화려한 세상 사이에 놓인 완충지 같다.
이 집의 정원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소수의 사람만 향유하는 개인 소유유료 미술관 같다. 5월의 정원은 마치 살아 숨 쉬는 화려한 정원 박람회처럼 눈부신 모습을 자랑한다. 싱그러운 초록빛 잔디밭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고, 따스한 햇살을 받아 은은한 금빛을 띠며 반짝인다. 잔디 사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향기로운 봄꽃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멋진 굴곡을 자랑하는 소나무가 푸른 잎과 웅장환 자태를 자랑하듯 서 있고 붉은 빛깔을 띄는 잎이 매력적인 홍가시나무가 담장 가까이 둘러져 있다. 정원에 한쪽에 놓인 티테이블 가까이에는 올리브 나무의 은빛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린다. 정원에는 계절에 따라 색감을 고려하여 잘 계획된 꽃들이 끊임없이 피고 진다.
커다란 꽃잎을 풍성하게 피워 올려 화려한 핑크빛과 붉은빛을 뽐내며 정원의 중심을 화사하게 밝혀주는 작약이 아름답다. 엄마도 작은 화분에 작약을 키운 적이 있다. 하지만 푸른 잔디와 어우러진 작약은 엄마의 작약과는 비교할 수 없이 화려하고 싱그러우며 생동감이 넘친다. 아이리스는 은은한 보랏빛의 작은 꽃들이 뭉쳐서 피어, 달콤한 향기를 퍼뜨리며 산책길을 따라 한층 더 운치를 더하니 잠깐 마음이 조금은 느긋해진다.
정원에는 다양한 색상의 고급스러운 장미들이 만발하여 정원의 가장 화려한 공간을 장식한다. 특히 벽을 따라 피어난 연분홍 덩굴장미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야외 결혼식 장소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잠깐 나는 '아' 하고 작은 한숨 비슷한 소리를 낸다. 내가 좋아하는 데이지가 정원 한쪽에 배치된 바위옆에서 산들바람에 한들거리고 있다. 순백의 꽃잎과 노란 중심이 귀여운 느낌을 주며, 잔디밭 주변을 화사하게 장식한다. 그 귀여운 얼굴을 쪼그리고 앉아 잠시 바라보다가 일어난다.
먼지 한 톨 없이 반짝이는 거실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현아는 핸드폰에서 얼굴을 들어 나를 보더니 헤헤 웃는다.
쌤~오늘은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수업 잘 받으면 해 줄게.
에이~~그냥 첫사랑 얘기 해줘요. 수업은 했다고 할게요.
눈이 반짝인다. 이 아이는 살아있다. 공부에 관심은 없지만 사랑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사람에 관심이 있다.
때로는 자신의 부모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대해 차갑도록 객관적이다.
우리 엄마 예쁘지요? 그거 다 현대 의료기술의 힘이에요. 선생님이 올 때 엄마가 거실에서 선글라스 끼고 앉아있을 때 있지요. 아빠랑 엄청 싸운 날이에요. 우리집은요 겉으로는 다 좋아 보여요. 우리 집 정원처럼요.
이 아이는 나에게 왜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걸까. 나는 나도 모르게 이 아이가 궁금해졌다. 수학과외 수업은 짧게 마무리하고 나는 나의 첫사랑 이야기를 현아에게 들려주었다. 핸드폰에 울리는 톡도 보지 않으면서 이 아이는 나의 이야기 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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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에도 고요하게 성실하게 쓰고 꾸준히 성장하는 작가가 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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