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에 눈을 떴다.
늘 부아앙 달리는 자동차 소리, 배달음식 오토바이 소리에 잠을 설치던 나.
오늘은 숙면을 취하고 기지개를 켠다.
캠핑카 파란 바람 밖으로 나오니 싱그러운 숲의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고요함.
울창한 전나무 사이로 아침햇살이 빛난다.
차가운 이슬이 숲의 이야기를 동그란 물방울 안에 담은 체 조금씩 대기 속으로 사라져 간다.
"또야, 넌 어떻게 살고 싶니?"
나와 단짝이었던 별 그 아이는 나에게 묻곤 했다.
"웅, 일단은 대학에 가야지. 그리고 멋지게 독립할 거야."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독립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나 아주 예전부터 받은 용돈이랑 아르바이트비 모두 모으고 있거든. 지금도 알바 몇 개 하고 있고."
별은 나를 바라본다.
아무런 동요도 없는 담담한 얼굴이다. 다만, 눈빛이 왠지 모를 공허를 담고 있다.
"나는 갇힌 것 같아......"
"우리 모두 그런 것 같은데 학교라는 곳에 갇힌 것 같아."
"그래도 너는 홈스쿨링도 해보고 자유롭게 살았잖아. 나는 꽤 큰 새장에 갇힌 새 같아. 여기는 어느 정도 날개를 푸덕거릴 공간이 있어. 조금 날 수도 있지. 그렇기 때문에 잘 몰랐어. 하지만 나는 이제 커다란 새장 안에 갇히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았어."
"그래도 조금만 버티면 자유잖아. 대학만 들어가면 말이야. 너는 성적도 잘 나오는 무슨 걱정이야."
"대학에 들어가면 새 장에서 살아가는 생활이 너는 끝날 거라 생각해?"
"당연하지. 나는 공부에 취미도 없지만 일단 대학을 갈 거야. 그리고 그 다음은 다 내 맘대로 하고 살 거야. 그럼 새장에서 탈출한 거지."
그때 별의 눈빛 속 공허함은 점점 더 커지더니 텅 빈 운동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늘 하는 푸념정도 생각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것처럼 고등학교에 들어온 우리는 대학이라는 일생일대의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경주마가 되었다.
별과의 짧은 대화 이후 몇 달이 순식간에 흐르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대학 수시전형이 있었다. 별은 수시전형으로 누구나 선망하는 대학의 경제학과에 합격하였다. 하지만 입학식을 하고 나서 별은 우리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니 지구에서 사라진 것만 같았다. 별의 부모님은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별의 거주지와 평소 이동반경을 중심으로 CCTV 등을 확인하고 가족과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중심으로 찾아보았으나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꿈꾸던 우리나라 최고 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하자마자 감쪽 같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 일하며 살았다. 최저시급을 모았다. 그리고 캠핑카로 개조된 매우 낡은 차를 샀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부리나케 나는 그곳을 떠나왔다.
여기는 맑고 싱그러운 숲이다.
여기 나는 왜 별을 생각하는가? 나는 신경이 쓰인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불현듯 그 눈빛이 생각났다.
나는 별의 텅 빈 눈동자를 보았다. 그러나 나 또한 경주마였으므로 바짝 다가온 대학입시를 향해 달렸다.
'그때 내가 그 아이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었어야 했어. 그 텅 빈 눈동자를 마주 보고 무슨 걱정 있냐며 그 아이의 손을 마주 잡고 한 시간쯤 더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했어.'
나는 성적이 좋지는 않았으나 궁금한 것은 직접 하면서 궁금증을 해결해 나가곤 했다. 그 때문인지 남들이 보기에 엉뚱하고 돌아이 같은 행동을 종종 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집이나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교무실이나 안방으로 불려가 '또 너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런 일이 잦아지자 나는 '또야'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사물함에 가수들이나 입을 눈에 띄는 옷을 넣어놨다가 하교시간에 입고 하교한다던지,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를 학교로 데리고 와 운동장 한쪽에서 함께 논다던지, 체육시간에 선생님이 잠깐 운동장을 비웠을 때 친구들 몇 명과 학교 매점에 다녀온다든지 뭐 그런 종류의 소소한 일이었다.
중학교 때는 딱 한 번 목에 보자기를 두르고 슈퍼맨처럼 날아서 바닥에 착지하기 위해 2층 교실에서 화단의 동그란 나무 위로 뛰어내린 것도 있다. 생물 선생님이 정성을 다해 동그란 곡선으로 다듬어 놓은 향나무 가지가 부러져 버리는 피해를 준 것을 제외하곤 그냥 혼자만의 일탈이었다.
그래. 나는 또야다.
아무도 하지 않는 엉뚱한 일들을 하는 아이. 하지만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주는 일은 조심 또 조심한다. 다만 궁금한 것들을 참을 수 없으니 실험해 볼 뿐이었다. 나는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 겨우 들어갔다. 수업료는 매우 비쌌고 대학교 수업은 고등학교 수업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이 지루했다. 나는 수업시간에 니체를 읽고 수업이 끝나면 퀘퀘한 냄내가 나는 베트남 쌀국수집이나 카페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학업은 대충, 아르바이트는 열심히 했다. 도전하고 모험하고 내 생각대로 한 번 살아보려해도 자본주의 사회는 수많은 가격표를 들이밀며 나를 비웃었다. 나는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며 웃음이 조금씩 줄었다. 아주 미세하게 줄었기 때문에 처음엔 인식하지 못하였는데 어느날 무심코 셀카를 비교해 보니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굴 표정이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특히, 눈이 말이다. 나는 나의 눈을 보면서 별을 생각한다.
'별은 정말 저 멀리 우주로 날아간 것일까?'
'어떻게 그 많은 CCTV를 따돌리고 숨어버린 것일까?'
배가 고프다. 아침으로 먹을 와플을 만들어야겠다.
엄마는 내가 우울해 보일 때 와플을 구워줬다. 그래서인지 나는 와플을 먹으면 무언가 마음이 안정된다.
나는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를 체에 내려 넣는다. 가루가 천천히 내려앉으며 공기 중에 고소한 밀 향이 감돈다. 녹인 버터와 우유를 섞는다.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지며 고소한 향이 퍼진다. 달걀과 설탕을 넣고 휘저으니 부드러운 질감이 손끝에 전해진다. 고루 섞으니 마침내 몽글몽글한 반죽이 완성된다.
와플 기계를 예열한다. 뜨거운 철판이 달궈지며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반죽을 조심스레 올려 뚜껑을 닫는다. 그리고 와플이 익기를 기다린다. 반죽이 익어가며 따뜻한 향기가 퍼진다. 겉은 노릇하게 익어가고, 와플 틈새로 달콤한 내음이 스며든다.
이제 완성된 와플을 꺼낸다. 바삭한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이제 접시에 담아낸다. 메이플 시럽을 뿌리니 윤기가 흐르며 달콤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와 딸기, 망고를 곁들이니 색감이 한층 생동감 있다. 손으로 들면 따뜻함이 전해지고, 한입 베어 물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하다. 한 순간 한 순간이 예술이 될 수 있다. 맛도 향기도 접시 위에 담는 음식의 모양도 얼마든지 예술이 될 수 있다.
숲 한가운데 앉아 따뜻하고 향긋한 커피 한 잔과 달콤한 와플을 먹는다.
햇살과 바람, 초록의 세상이 와플과 함께 내 입으로 들어온다. 지저귀던 새의 노랫소리는 이제 다른 새로 바뀌었다. 가슴이 탁 트인다.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와 숲 안에서의 안온한 충만함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하지만 그도 잠깐 나는 와플을 베어 물고 왈칵 눈물이 났다.
#캥핑 #전나무숲 #와플 #커피 #남효정 놀이와 교육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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