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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Aug 24. 2022

검은 개

너는 자유롭게, 묶여있지 않고


검은 개가 죽었다. 검은 개는 일 년간 우리와 함께 했고, 9년을 타인과 살았다. 9년만에 검은 개의 소식을 들었다. 한 줄의 짧은 카톡을 보고 나는 고맙다고 했다. 함께 잘 보내줘서 고맙다고. 그 말을 끝으로 9년만의 연락은 마무리되었다. 검은 개는 암으로 죽었다.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하려다 거절당했다. 

검은 개는 9년간 함께 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죽었다. 나는 검은 개의 죽음을 목격함으로써 무엇을 충족하려 했는지를 생각한다. 생각하다 그만둔다. 죽음의 순간에 네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샘솟았기에,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살아가는 동안 나는 몇 번 너를 마주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삶처럼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무책임한 마음만 핥았다. 십 년의 삶동안 고작 일 년을 함께한 나는 과분한 감정을 느끼고 넘치는 무언가를 받기를 바란다. 너는 어쩌면 쫓겨나듯 그곳으로 갔기 때문에 나를 미워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개는 후회하지 않는다. 추억하지 않는다. 검은 개는 우리와의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을까, 생각한다. 나와 함께 보냈던 검은 밤을 추억할지도, 생각해본다. 생각들만 부유하는 동안 너는 천천히 떠나고 있다.  


검은 개는 혼란함없이 떠났을 것이다. 그날 꿈 없는 잠을 잤다. 잠에서 깨었을 때 너는 이미 죽고 없어진 세상이라는 걸 체감하지 못해 나는 눈만 끔뻑였고 의외로 혼란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했다. 9년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체감했다. 아무렇지 않게 네가 없는 첫날이 지나갔다. 여느 때보다 선선한 날이 많은 여름이었다. 그날도 비가 온 뒤 선선했다. 네가 무덥지 않은 날, 길을 떠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쓴다.


너와 단둘이 함께한 단칸방에서의 밤을 떠올린다. 우리는 껴안고 겨울밤을 보냈다. 너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나보다 조금 더 따뜻했던 너의 온기 한 줌만 옅게 남아 있다. 선선한 여름 날, 아직 남은 온기 때문에 내 몸은 타인보다 조금 더 뜨거워지고 몸 어딘가에 고여 있던 물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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