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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May 03. 2023

아이에게 클로버를 받았다.



아이는 엄마 뒤에 숨어서 내게 클로버를 건넸다. 새끼손가락만큼 작은 잎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주는 거야? 하면서 웃었고, 나는 얼결에 클로버를 받았다.어딘가 부끄러웠고 나는 애매한 얼굴로 아이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아이가 떠나고 오랫동안 클로버를바라봤다. 클로버는 세 잎이었다. 어릴 때는 네잎이 아닌 걸 보면 아쉬웠는데 이제 그렇진 않았다. 세잎도 아주 오랜만에 보았으니까. 매일매일 땅만 보고 걸었던 것 같은데. 왜 못 보았을까. 클로버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빙글빙글 돌렸다. 목이 똑, 하고 뜯긴클로버는 벌써 시들시들해져가고 있었다.


천천히 클로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를 알만 한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가끔 이렇게 모르는 사람의 눈길, 손길을 받으면 당황스러웠다. 저기, 혹시, 와 같은 말이나 악수도 아닌 세 잎 클로버 하나를 건네받는 순간. 순간은 정말 순간으로만 남아서 어떤 의미도 끼어들지 못했다. 클로버가 지난한 하루를 바꿔주길 바라는 마음은 수초의 시간이 지난 뒤 허무하게 잊혀졌다. 하루는 또 지난했고, 허무했고, 훌렁훌렁 사라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클로버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식물도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들시들 죽어가는 클로버는 그때  무슨 마음이었을까. 죽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더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클로버에게 생애 처음으로 하늘 위에 떠 있는 기분 같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아마도 그러면 클로버는 말했을 것이다. 다시 바닥에 내려 달라고. 자신을 짓이겨질 만큼 쎄게 던져달라고. 하지만 그때 내가 클로버를 어디다 두었는지조차 기억 나지 않았고, 클로버의 삶과 죽음은 영영 불분명으로 남았다. 삶은 모든 게 다 불분명하니까. 확인할 수 없는 무언가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클로버도 그 중 하나 일 뿐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아이는 어디선가 또 클로버를 똑, 하고 떼어내고 있을 것이다. 아이는 이제 목이 뜯긴 클로버를 나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전과 다름없이 일상은 일상처럼 클로버의 잎을 하나하나 떼어내듯 하나 둘 셋, 하면 끝나 있을 것이다. 넷을 외치지 못하는 일상의 연속에 불현듯 새벽에 깨어나 아무도듣지 못할 넷, 을 더듬더듬 말한다. 그리고 다시 꿈 없는 잠을 자려고 베개에 몸을 던지듯 눕는다.


나는 전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네잎 클로버를 찾지 못 할 것 같았다. 그건 불분명한 세상 속에서 분명한 사실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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