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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May 04. 2023

시계탑의 사망 시간, 다섯 시 육 분

아파트 초입에는 낡은 시계탑이 하나 있었다. 시계탑은 아무렇게나 자란 덩굴에 쌓여 있었다. 시계탑을 꾸물꾸물 기어오른 덩굴은 시계탑을 곧게 자란 나무처럼 보이게 했다. 나는 아파트를 나서면 꼭 시계탑을 보았다. 무의식적으로 그곳을 응시하면 시계는 언제나 다섯 시 육분에 멈춰 있다. 그렇게 언제나 다섯 시 육분이 아닌 시간에 다섯 시 육분을 보고 있다 보면 그런 의문이 들었다. 시계탑이 보았던 다섯 시 육분의 세상은 어땠을까. 사물에 이입해서 사물의 시선으로 피사체를 바라보는 것만큼 소설적인 게 있나 싶어서 또 또 소설을 얼른 써야지 하고 재촉을 해보지만 떠오르는 건 시계탑이 바라본 하나의 이미지뿐이었다. 그곳엔 인물도 없고 서사도 없고 단편소설에 있어야 하는 특유의 한 방이나 주제의식도 없었다. 시계탑의 시선에 대한 상상은 그 순간을 바라보는 시계탑의 마음으로까지 번져갔다. 다섯 시 육 분에 눈을 감는 시계탑의 마음. 어쩌면 새벽 다섯 시 육 분이라서 시계탑이 아무도 보지 못한 채 쓸쓸히 눈을 감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시계탑은 그렇게 자신의 사망 시간을 적어둔 채 계속 서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스스로 아주 무쓸모하다고 자조하는상상의 가지들이었다. 나는 한껏 움츠러든 몸으로 무쓸모의 쓸모를 외쳐왔다. 그렇다고 해서 쓸모가 있어지는 건 아니지만. 맞아, 그럴 수 있지, 라고 말해주는 이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래왔다. 상상의 가지는 아파트를 떠나는 계단을 하나하나 밟을 때마다바스러지듯 부서지고 나는 상상이 끼어들 수 없는 일상을 끔뻑끔뻑 견뎌냈다.

한숨을 푸우푸우 쉴 때가 늘었고,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서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는 주저앉아서 푸우푸우 하고 있었다. 글을쓰려고 타자를 두드리면 시한폭탄이 째깍 째깍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풍선이 터지는 것도 무서워서 풍선 부는 것도 못 보는 사람인데. 차라리 펑 하고 터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삶은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쏠 듯 말 듯하면서 장난을 쳤다. 고통은 짧고 불안과 공포는 길었다. 차라리 쏘라고 비명을 질러도 삶은 과녁을 향해 쏘지 않은 채 방아쇠만 매만졌다. 이게 결국 모두 이렇게 살아온 너의 업보이자 탓이라고, 현재는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라느니 한다면 할 말이 없었다. 내 탓이 아니라고 해도 할 말은 없었지만,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네 탓보단 내 탓이 나았다. 시계탑은 초침과 시침을 째깍 째깍 흘려보내며 불안했을까. 그리고 다섯 시 육 분 때 흐르는 삐이, 하는 바이탈 사인 속에서 조금 편안해졌을까. 자신의 사망 시간을 달고 서 있는 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상상이 여기까지 흐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소설적이라고. 그리고 너무나 우울한 소설의 도입이라고. 글쓴이가 자신의 우울을 시계탑에 투영했다고. 사실 시계탑은 아무것도 사유할 수 없는, 정물일 뿐이라고.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 시계탑의 소설적 삶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다섯 시 육분. 시계탑이 죽는다는 공포도 느끼지 못할 만큼 빠르게 초침과 시침이 멈췄다. 아무도 그 순간 시계탑의 시간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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