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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May 10. 2023

눈알은 철창 안에 있다



시내에서 조금만 걸으면 개시장이 나왔다.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온 개시장엔 많은 개들이 있었고, 개들은 모두 어디서 오는지 개들을 가둬놓은 철창은 빈 적이 없었다. 개고기를 파는 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람들은 앉아서 김이 나는 뚝배기에 숟가락을 휘적거리며 소주를 마셨고 비명처럼 높은 목소리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말은 어딘가에 갇히지 않고 계속해서 퍼져나갔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뒤엉키듯 섞였다. 해석할 수 없는 언어의 덩어리들은 대화가 아닌 그저 공간을 채우려는 의도만을 가득 담은 채 퍼져갔고 누군가의 거대한 울음처럼 웅얼거렸다. 낮은 음과 높은 음. 울음과 웃음. 노인의 역정과 아이의 옹알이. 그 모든 게 섞인, 개시장엔 개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개들이 울기는 할까. 개 거품을 물며 철장을 물어뜯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목을 물어뜯을 듯 짖어댈까.



개시장에 간 적이 있다. 반려견을 키우기 때문에 개를 파는 곳을 지나가야 하는 게 싫기는 했지만, 딱히  거부감이 있지는 않았다. 나는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저 개시장을 지나가는 것뿐이니까. 시장 초입부터 녹이 슨 철창이 보였다. 철창 내부에서 누런 개가 나를 쳐다봤다. 아무렇게나 자란 털 속에 숨은 까만 눈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외면하며 지나가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개는 짖지 않았다. 까만 눈알엔 무언가가 침전되어 있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한 번도 다리를 멈추지 않은 채 개시장을 빠져나갔다. 가끔은 개고기집에 들어가 주인들에게 개를 풀라고 윽박지르고, 개고기를 먹으며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멱살을 잡은 채 분노를 터트려야 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나에게 그만큼의 분노는 없었다. 분노가 피어오르지 않는 이유는 그게 내가 아닌 너였기 때문이다. 그 철창 안에 들어가 있는 건 내가 아닌 너였으니까. 너의 눈알에 침전된 무언가가 분노는 아니었으니까.



삶은 버티는 게 아니라 즐기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주먹을 꼭 쥐고 하루를 감내하며 천천히 늙어가는 삶은 삶의 본질이 아니고,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 진짜 삶이라고. 그러니 버티지 말고 버티는 삶을 즐기라고.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가 나빠졌다. 하늘 위로 부웅, 날아오르다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무책임하게 즐기며 사는 것도 삶의 본질이니까. 그렇지만 무책임하게 즐기는 삶은 또 그렇지 않다고 누군가 내 머리를 툭 하고 때렸다. 부웅, 날아오르면 뚝, 하고 떨어지는 게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당연하게도 다시 버티기 시작했다. 주먹을 꼭 쥐고 밤과 아침과 새벽과 정오가 오기를 기다렸다. 거울을 보면 무언가 침전된 까만 눈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개시장은 철거됐다. 많은 개들이 철장 밖으로 나왔다. 그 개는 어떻게 됐을까. 주인을 만나 살아가고 있을까. 어찌되었든 그 개는 이제 철장 밖에 있을 것이다. 철창 밖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어다니는 누런 개는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너는 내 눈알에 침전된 무언가를 해석하고 읽을 수 있을까.

살아가다 보면 가끔 누런 개의 말이 들려왔다. 말이라기 보단 짖음 혹은 울음. 왈왈, 멍멍, 왕왕. 그 짖음에 담아 보내는 건조한 다독임, 위로, 혹은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리를 알려주려는 상냥한 조언.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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