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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May 17. 2023

글을 쓰면 우울의 조각들만 뚝 뚝




언젠가부터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눈을 뜨면 누군가를 기다렸다. 누군가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제나 그랬다. 어제는 침묵했으니까, 오늘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기대. 그 덕분에 하루는 언제나 기대감으로 시작되었고 아무것도 없는 핸드폰 화면을 보면 기대는 조금 깎였다가 하루가 지나고 나면 허무해졌다. 하루는 허무해질 일로 가득해서, 나는 허무로 가득 찬 가슴을 두드리며 잠에 들었다. 허무해지지 않는 삶이 있었을까 가늠해보지만 그것들은 삶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했다.



당신, 당신들. 특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나는. 그래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불특정 다수에 포함되었고 당신은 나를 찾지 못했다. 찾지 못하는 게 아니라, 찾지 않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불현 듯 들 때면 머리를 휘적거렸다. 나도 모르게 진실을 들여다본 것 같아서, 아직은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천천히 가라앉아갔다. 가라앉으면 바닥도 있을 텐데. 심해는 끝나지 않았다. 이런 생각들이 바닷속 플랑크톤처럼 머릿속에서 헤엄쳤다.



그래. 매일 이런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니까, 글을 쓰면 우울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우울을 토해내는 행동은 토해냄에 의미가 있는 건지, 토해냄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함인지, 그 무엇도 우울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글을 쓰기가 갈수록 힘들어졌다. 쓰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가도 축축한 우울이 그걸 뒤덮었다. 축축한 우울은 거대한 젤리처럼 물렁물렁하게 굴러다녔다. 나쁜 말들을 진액처럼 끈적하게 내 마음에 흘리면서. 나쁜 말들을 씹다 보면 너무 많이 씹어서 턱이 아팠다. 턱이 덜렁덜렁 빠질 때까지 그러고 있다 보면 우울이 풍선껌처럼 펑, 하고 터졌다. 펑, 하고 터지면 우울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이빨 사이에 이물질처럼 꼈지만 펑 하고 터진 우울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날카로운 이쑤시개가 돼서 이물질같은 기대를 제거했다. 그러면 나는 깨끗해진 이빨로 다시 우울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래턱이 빠져서 사라질 때까지.


이제 그만 씹고 버리자는 생각으로 퉤 하고 바닥에 뱉어내자 누군가 말했다.

우울을 왜 뱉어. 바닥에 들러붙잖아. 차라리 삼켜.

그걸 왜 삼켜요. 뱉어야지.

그냥 삼켜. 어차피 똥으로 나와.

어차피 사람도 죽어서 똥 되는데 뭐하러 사십니까.

똥같은 놈.


하는 수 없이 바닥에 떨어진 우울을 다시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턱이 아팠다. 언젠간 똥이 되겠지. 나도, 이 우울도.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다 허무해졌다. 하지만 허무해진다고 우울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으니까, 나는 또 잘근잘근 거릴 거고 턱이 아플 것이고 허무한 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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