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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Jun 06. 2023

밤은 축축하게 식어가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는데, 회식을 하자고 해서 주말에 다들 모였다. 장소를 제공받아서 얼결에 넓은 가게에 우리만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몰라서 잘 모르는 만큼 술을 마셨고 틈이 벌어질까, 자주 웃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가까워졌나, 생각하다 그만두고 나도 반말을 했다. 어색하지 않기 위해 반말을 시작했는데, 반말을 한다는 것 자체도 어색해서 자주 말을 버벅거렸다. 존댓말과 반말이 섞이고 그럴 때면 또 술을 마셨다. 점점 취해갔다. 취하면서 우리는 의미 없이 낄낄 거리고 서로에게 농담을 던졌다. 농담을 던지고 낄낄 대는 게 아닌, 낄낄 사이에 농담이 끼어 들어왔다. 우리는 낄낄 대며 밤을 유영했다.

소설 이야기를 하고, 문학 이야기를 나눌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런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런 회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냥 술 마시고 취해버리면 우리는 무얼 남긴 거지. 그냥 허비되어버린 건가. 그래서 술자리를 마친 뒤 허무해졌다. 집으로 가는 오르막을 비틀비틀 올라가다 주저앉아서 새벽을 보냈다. 곧 있으면 해가 뜨겠는 걸, 하는 생각으로 하늘을 보았지만 해는 뜨지 않았다. 하늘은 그냥 푸르스름하게 변할 뿐 해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다시 터덜터덜 비틀비틀 집으로 갔다.



어지러운 상태로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런 만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눈을 감자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아니, 눈이 아니라 천장이 돌기 시작했다. 어지러워서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 웅크리고 잠에 들었다. 나는 고통을 느끼면 몸을 웅크렸다. 이 고통이 지나가길 고대하면서. 그러다 의미 같은 걸 생각하니까,

네 주위에 사람들이 다 떠나는 거야, 누군가가 너에게 어떤 의미가 되주길 바라니까 네가 혼자인 거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누가 나한테 이런 뼈 때리는 소리를 하는 거지. 누구긴 누구야. 나지. 나니까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지.

그래,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의미를 강요했고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소망했다. 그래서, 혼자가 되었다. 나에게 사람이란 의미 있음과 의미 없음으로 규정되어 있으니까. 의미가 없어지면 사라졌고 의미가 있으면 찰싹 들러붙었다. 중간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중간에 머물렀던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웅크린 채로 물었다.

이 사람들은 나한테 의미 있음의 존재들이야?

나도 몰라.

그러면 이번 술자리는 의미가 있었어?

모른다고.


모른다며 나 스스로를 속였지만 나는 알고 있다. 뜨겁게 익었던 땅은 해가 지자 축축하고 서늘하게 식어갔고, 축축한 땅이 내뱉은 선선한 한숨 같은 바람이 불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던 그 시간에 아무 의미 없음 이라는 도장을 쾅 찍었음에도 나는 알고 있다. 아무 의미 없는 밤이었다는 걸, 아무래도 좋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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