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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Jun 21. 2023

누굽니까, 접니다




누군가 문을 똑 똑 두드릴 때가 있다. 똑 똑 똑, 혹은 쿵 쿵 쿵. 그러면 심장도 쿵 쿵 쿵 뛰었다. 불청객의 방문은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않았고, 가끔 꿈속에도 찾아왔다. 나는 잠금 장치를 여러 개 달고, 숨죽이고 있다. 문을 끝없이 두드려도 답하지 않았다. 이곳은 비어 있음을 자각하고 사라지길 바랐다. 하지만 꿈속의 불청객은 물러나지 않았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다보면 잠금 장치가 홀로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하지만 꿈속에서의 행동은 굼떴다. 나만 굼떴다. 물속에서 몸을 움직이듯 팔은 느리게 움직였고 잠금 장치는 계속해서 하나 둘 풀려갔다. 문은 결국 열렸고 작은 틈새로 불청객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뒷걸음질치며 숨죽였다.


꿈은 꼭 거기서 끝났다. 잠에서 깨면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잠에서 깰 때 누군가의 비명소리같은 게 섞여 들어오는데 어쩔 땐 가족 중 누군가, 어쩔 땐 집 밖의 알 수 없는 존재였다. 비명소리가 정말로 들렸는지를 가늠하다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잠에 들었다. 악몽이 비집고 들어온 집에서 나는 꿈 없는 잠을 잤다. 그럴 때면 혼자라는 게 두려워졌다.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누군가가 찾아오는 빈도는 아주 적었고 오더라도 대부분이 불청객이었다. 그러면 누군가는 말했다. 집 안에 박혀 있으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속으로만 말했다. 어쩌라고.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현실과 꿈 모두에서 불청객만이 문을 쿵 쿵 두드릴 때면 나는 언제나 말했다.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고.


내 삶의 궤적을 흔드는 말들을 들을 때면 나는 절박해져갔다. 나를 말 몇 마디, 몇 개의 문장으로 흔들 때면 꼭 나는 부탁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달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답도 알려주지 않은 채 문을 닫고 나갔다. 잠금장치까지 잘 잠근 채, 잘 살아보라는 말과 함께.



그래도 가끔은 그렇게 숨죽이며 누군가를 기다리다보면 또 문을 두드릴 때가 있었다. 어떻게 찾아왔는지도 모를, 그 누군가는 문을 똑 똑 두드리고 내가 문을 열어주길 숨죽이며 기다렸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그것이 불행인지, 행복인지 알 수 없는 그러니까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중첩 상태의 기분을 느끼며 나는 잠금장치를 하나하나 풀었다. 중첩 상태의 기분이라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나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얼른 잠금 장치를 풀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가끔 인생에 찾아오는 이벤트 같은 것이 문 뒤에 존재하리라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좋아해주는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드는 상상이 문 뒤에서 펼쳐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문이 열리자마자 누군가 문 틈 사이로 얼굴을 불쑥 집어넣고 문이 닫히지 않게, 발로 막아서며 문을 막았다. 나는 물었다. 누굽니까. 접니다. 접니다가 누굽니까.


악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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