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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Jun 22. 2023

작은 숲에 가고 싶어졌다




해가 들지 않는 숲을 보고 있으면, 그곳에 머물고 싶어졌다.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졌고 나무들에 등을 기댄 채 시간을 죽이고 싶어졌다. 이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어서 숲에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며칠 전 큰 공원에 갔다. 작은 숲이 있었고 그곳에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더위를 피하며 피크닉을 즐겼다. 나는 도보를 걸어가면서 그 사람들을 보았다. 저 사람들은 좋을까. 나무들 사이에 앉아 무슨 생각들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까. 나는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그들을 지나쳤다. 나도 작은 숲에 앉아 있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저 숲을 외면하면서 그곳을 빠르게 벗어났다. 돗자리가 없어서 나는 앉지 못했던 걸까. 그런 핑계를 대기도 했지만, 그게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숲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몽글해져가는 마음이 무엇때문인지 알 수 없어서, 몸 어딘가가 간질간질했다.



몽글몽글해지는 마음과 간질간질거리는 옆구리.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와 푹신하게 깔린 나뭇잎. 옛날에 묻어둔 기억 어딘가에 있는 흙내와 똑같은 냄새. 그곳에 발을 오므리고 앉아 느리게 시간을 죽이며 바람을 느끼고 가끔 우는 새 울음과 바람 소리를 듣는 것.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정적을 즐기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임에도 나는 그것을 열심히 외면한다. 왜인지는  알지 못한다. 시간을 길게 늘어뜨려 나른하게 시간을 죽이는 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임에도, 그랬다.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나는 왜, 그러지 않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미뤄둘까. 나는 분명 푹신한 나뭇잎에 앉아 많은 걸 내려놓을 것이다. 그니까 나는 많은 걸 내려놓을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 갈 수 없다. 내려놓기 시작하면 나는 아마 무너질 테니까. 와르르. 겨우 부여잡고 있던 것들을 와르르, 쏟아내면서 몽글몽글 해지는 마음에 푹 빠져 첨벙첨벙 거리며 가라앉을 걸 아니까. 그럼에도 나는 작은 숲에 가는 꿈을 꿨다.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시한부라는 걸, 작은 숲에서 들리는 소음은 다름 아닌 째깍째깍 타이머 소리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결국에 내려놓았던 짐들을 천천히 집어 들어 다시 덜그럭 거리는 몸을 이끌고 작은 숲을 떠날 테지만 나는 언제나 작은 숲을 가자고, 다짐 할 것이다. 그건 기약 없는 다짐이었고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를 삶이 언제고 이어질 것이라는 대책 없는 희망을 품고 있다. 작은 숲에 함께 갔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고, 내가 갔던 이름 모를 작은 숲은 이제 어디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라진 숲과 없어진 사람들. 나무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날 동안 서 있을 테고, 그 사람들은 또 누군가와 작은 숲에 가고 있을 것이다. 나무들이 죽지 않고, 계속해서 뻗어나가길 바라는 만큼 그들 또한 죽지 않고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살아가길 바라지만 마음 한 켠 그들에게서 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그럴 때면 작은 숲에 가고 싶어졌다. 나무와 풀들 사이에서 아무도 듣지 못할 말들을 속삭이고 싶어졌다. 죽고 싶지 않은 삶을 다독이며 아주 오랫동안 살아가라고. 언젠간, 작은 숲에 또 같이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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