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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Jun 26. 2023

나랑 닮았다고



너랑 쟤랑 닮았어. 아주 어릴 적부터 이 말을 들으면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와 쟤가 닮았다. 그건 성격이라든가, 성장 배경과는 무관하게 외모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 외모랑 닮은 사람.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했다. 피하고 싶었고, 너랑 쟤랑 닮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을 피하고 싶었고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그래서 나는 나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피했고 성격, 또는 성장배경과 상관없이 연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나마 나를 닮았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나의 외모가 부각되는 순간들이 싫었을 것이다. 내 외모가 너를 닮아서 싫었던 게 아니고, 내 못난 외모가 너를 닮아 미안했기 때문에.



하지만 요즘 나는 너랑 쟤랑 닮았어, 라는 말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가끔 그런 말을 듣고 있다. 같이 깔깔 웃고 있을 때 문득 너랑 쟤랑 닮았어, 라는 말이 들려오면 기이한 행복을 느꼈다. 서로 함께 할 때 상대의 얼굴, 표정을 보고 그 표정을 닮아간다는 것. 전혀 닮지 않은 이목구비와 얼굴형을 가지고 있음에도 함께 보내온 시간 속에서 서로의 얼굴에 새겨진 삶의 궤적과 같은 웃음을 닮아간다는 것. 그게 너무 좋았다. 그랬던 사람들과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의 웃음 모두 내 얼굴 어딘가에 서려 있다. 입술에 한 줌, 주름진 눈가에 한 줌, 동그란 코에 한 숨. 기억 어딘가에 살고 있는 웃음을 길어와 내 얼굴에 드러낸다.



내 삶의 궤적이라는 건 결국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보며 함께 깔깔 거리며 지나온 시간. 나 혼자만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고 생각해왔던 길을 돌아봤을 때 보이는 수많은 발자국들. 그리고 그들의 신발코가 향하는 건, 내가 서 있는 방향. 그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생각해왔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가슴 깊숙한 곳, 흐릿한 무의식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닌 바로 내 얼굴에 남아 있다. 나는 가끔 웃다가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선가 들어본 웃음이라서. 이건 내 웃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웃음을 따라한 것이라는 걸 느껴서. 그 사람은 지금 내게 없다. 그 사람은 어디서 이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을까. 우리는 다른 공간에 서서 다른 사람들을 보며, 같은 선율로 웃고 있다.  



그들을 떠올리다가도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웃는다. 네 조카 너랑 진짜 닮았다는 말을 듣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닮았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또 삐뚤빼뚤한 발자국을 얼굴에 찍어가며 살아간다.


너, 나랑 닮았어. 닮았다구.

그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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