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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 몸 Mar 27. 2019

같지만 같지 않다

02. '이야기가 중복되지 않겠어?'라는 물음에 대한 제작진의 대답

팟캐스트 <말하는 몸> 청취자님들, 안녕하세요.


“어제 새 에피소드 올라왔더라”라고 인사말을 건네는 회사 동료들이 종종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꼬박꼬박 올라오는 새 에피소드를 보며 ‘일 잘하고 있구나’ 짐작하는 용도로 제 팟캐스트를 구독하고 계시지요. 


그 외에, 저와 연고도 없고 인연도 없는데도 이 팟캐스트를 구독해주시는 분들이 누구일지 궁금합니다. 어제 올라온 에피소드는 잘 들으셨나요? 자신과 닮은 이야기에 먹먹한 마음으로 들으셨을 분도 있겠고, 아니면 오늘은 조금 지루해서 일시정지를 누른 채 유튜브 어플을 켜신 분도 계시겠죠. 오늘 밤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다가 문득 이 팟캐스트를 떠올려 서너 개의 에피소드를 연달아 듣는 분도 계실 테고, 혹은 고단한 일상에 지쳐 머리 복잡하고 우울하기도 한 누군가의 속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방문이 뜸한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처럼 한 번쯤 이 팟캐스트에 대해 알고, 찾아보고, 들어본 적 있는 모든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꼭 마주 잡아 데워진 손만큼 은은한 온기를 느끼곤 한답니다. 


제가 이번엔 편지글을 써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이번에 유지영 기자님과 이번에 쓰기로 한 주제가 ‘반복되는 이야기’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들에게, 들어주는 분들에게 콘텐츠의 성패 요건이라든가 좋은 말로는 피드백, 나쁜 말로는 지적질에 대해 논하는 것이 부적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콘텐츠 업계의 생리는 냉정해서 그 안에 속한 저는 <말하는 몸>이라는 멋진 콘텐츠를 만들고도(여러분들의 이야기를 그저 공급할 뿐이지만) 곧잘 무력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여성들은 왜 그렇게 다이어트에 대한 얘기만 하느냐’ 같은 반복성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실제로 저는 편집을 하며 많은 것들을 잘라냅니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가 반복되어 있습니다. 가슴이 봉긋, 허리는 잘록, 다리는 얇지 않은 나의 몸에 대한 혐오. 그 혐오는 몸을 찢어버리고 싶다고 느낄 정도의 강렬한 혐오감입니다. 또 그런 혐오감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대부분 ‘살찌면 안 된다. 넌 딸인데 예쁘게 커야지’라는 부모님의 채근이라든가 ‘넌 왜 팔뚝살이 덜렁대?’, ‘넌 긁지 않은 복권이야’와 같은 종류의 남성들이 함부로 내뱉은 말을 들은 경험이 있죠. 전부는 아니지만 물리적인 폭력을 당한 이들도 있습니다. 변기를 붙잡고 토하는 분들도 많고요. 용기를 내 출연해주신 분들에게도 이 자리에서 못다 한 심연의 경험들이 있으리라, 가끔 짐작합니다.


이곳은 함부로 ‘말해진’ 몸에 대해 스스로 ‘말하는’ 자리입니다. 이처럼 동일하고 반복적인 이야기가 여성 각각에게는 개인의 특수한 사정이자 사연으로 각인돼 모두가 나의 탓을 하고 나를 혐오하고 있을 때 <헝거>와 ‘말하는 몸’과 같은 시도, 거기에 동참해 자신의 몸에 대해 말해주시는 분들을 통해 ‘그건 네 탓이 아니야’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겪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을 혐오하던 눈을 세상 밖으로 돌려볼 수 있다면. 저는 같은 이야기에 다른 색을 입히고, 다른 색도 같은 역사로 기억되도록 노력해보려 합니다. 여러분들도 나의 이야기가 작거나, 같거나, 너무 검다고 주저 마시고 연락 주세요. 있는 그대로, 이 역사의 한 조각이 되어 봅시다.


- 박선영 




'너무 이야깃거리가 중복되지 않겠어?'


미국의 작가 록산 게이의 책 '헝거'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여성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팟캐스트를 만든다고 했을 때 건너 건너서 들었던 우려가 있었다. 이야기를 할만한 게 고만고만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물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이 우려를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써보자면 다이어트를 중심으로 한 몸매 강박 등이 주소재가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따라서 한 에피소드로서 다양성이 없지 않겠냐는 말이다. 실제로 록산 게이의 책이 비만인 자신의 몸을 사유하는 것을 주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어느 정도 이야기가 겹치는 건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겹치면 또 어떤가? 어쩌면 그 사실 또한 여성들의 몸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에 대한 어떤 특이한 방식의 증명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성들은 사는 내내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로부터 한결같이 동일한 요구만을 받곤 한다. 


그러니까 '여성은 예뻐야 한다'는 한결같은 요구를 듣는데, 그 예쁨의 기준조차도 늘 한결같다. 큰 가슴, 잘록한 허리, 너무 납작하지 않은 엉덩이, 늘씬한 다리 같은 것들 말이다. 만일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송에 나와 동일하게 '보이는' 이야기를 반복한다면, 이는 이대로 유의미한 결과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적어도 그 결과는 결코 방송의 탓도, 여성의 탓도 아닐 것이었다. 


선영님과 나 중에 '말하는 몸' 프로젝트에 훨씬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인 건 내 쪽이었다. 크고 작은 피드백에 귀를 쫑긋 세우다가 그 말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흔들리곤 하는 평소 내 성정과는 좀 달랐다. '말하는 몸'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한 가지의 이유가 더 있다. 기쁘게도 동세대를 사는 걸출한 작가들의 작품에서 레퍼런스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언더그라운드>라는 인터뷰집이다. 


일본의 종교 단체 옴진리교가 1995년 도쿄 지하철에 독성이 강한 사린가스를 살포한 사건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린가스 사건의 생존자들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그로부터 2년 뒤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을 내놓는다. 사린가스를 마주치던 당시의 지옥 같은 순간, 그 전후의 기억들... 지엽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으므로 당연히 이야기는 중복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일한 기억을 여러 사람이 증언한다는 건 그 자체로 특별하다. 단순히 개인적인 증언을 넘어서 하나의 사회적 목소리를 만드는 일. 뭇사람들의 우려들을 들을수록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애정이 생겼다. 물론 이야기는 겹칠 것이었다. 물론 같을 것이었다. 하지만 결코 같지 않았다.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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