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하는 몸 Mar 14. 2019

[전문] 2화. 번역가 노지양의 몸

http://www.podbbang.com/ch/1769459


"이 책을 쓰는 건 고백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가장 추하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헐벗은 부분을 드러내겠다는 말이다. 나에겐 이런 진실이 있다고 털어놓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몸에 대한 고백이라고 말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대체로 내 몸과 같은 몸의 이야기들은 무시되거나 묵살되거나 조롱받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몸과 같은 몸을 보고 쉽게 단정해버린다. 왜 저 사람이 저런 몸이 됐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들은 모른다. 나의 이야기는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말해야만 하고 더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를 번역한 번역가 노지양입니다.


제가 읽은 부분은 <헝거> 초반에 나오는 부분이에요. 이 책이 그렇게 분량이 많지도 않고, 어려운 단어나 조사해야 할 내용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번역하는 기간도 오래 걸렸고 쉽지가 않았어요. 


한 문장 한 문장... 록산 게이의 심정이 돼 번역하지 않으면 문장이 살아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다시, 다시 고치고 했거든요. 


이렇게까지 몸에 대해서만 내밀하고 적나라하고 진실한 고백을 한 책이 있었나? 말하기 부끄럽고 힘들지만 더 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더 해야만 할 것 같아서 했고 그럼으로써 큰 화두가 됐잖아요.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많은 분들이 자기 몸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이 몸에 들어있는 갖가지 사연, 굴곡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왔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이 몸에도 다 아픔이 있고 사연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을 잘 안 하고 지냈던 것 같아요. 특히 저는 록산 게이가 자기 몸을 '우리'라고 '감옥'이었다고 '갇혀있다'라고 했는데 이 말이 굉장히 많은 여성들에게 와 닿았다고 생각해요." 


록산 게이


"록산 게이는 1974년생이고 네브래스카에서 태어났고 아이티계 미국인인데 블로그에나 인터넷에 글쓰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들을 모아서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발표했어요. 그러면서 미국에서는 굉장히 화제가 된 흑인 여성 작가가 됐어요. 


지금은 아마 강연이 3년 정도 잡혀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특히 트위터에서 영향력이 있는데, 록산 게이의 특징은 굉장히 신랄하게 이야기하면서 유머러스하다는 거예요. 아픈 책임에도 가끔씩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게 글을 쓸 줄 알거든요.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사람이. 


제가 록산 게이가 하는 방송을 듣는데 정말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보석 같아요. 재미있어요. 엔터테이너로써 대중문화를 워낙 많이 알고, 자기만의 매력이 있어요. 


번역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힘들 때 록산 게이를 생각해야지.' 


록산 게이가 자기 계발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다시 파이팅해서 모든 문제를 극복할 거야'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냥 '나는 이렇게 괴롭고 나는 이렇게 아프고 있어'에서 끝내지만 이게 진실이라서 너무 그냥 제게 위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죠. 


미국 여성들, 흑인 문제에 대해서도 늘 목소리를 내고요. 성폭력 문제, 특히 개인적인 것도 있지만 또 페미니스트로서 성폭력 문제,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선수들의 성추행 문제에 대해 항상 발언을 많이 하는 편이고요. 


영향력이 이렇게 큰 데도 또 친밀하게 느껴져요. 장난도 치고. 정말 이 시대에 가장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작가가 아닌가 싶어요. 


흑인 여성의 목소리라는 점, 미국에서는 특히 그렇죠. 미국에서 백인 중산층 이상 여성들이 항상 페미니즘계를 끌어왔잖아요. 그런데 록산 게이가 정면으로 나서면서 흑인 페미니스트, 퀴어 페미니스트가 (나온 거예요.) 굉장히 많은 북 토크를 만들면서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계속 많이 들려지고 있거든요. 그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헝거>를 번역하고 진행한) 북 토크에서 이야기를 할 때, '여러분 자기 몸에 만족하세요?' 하면 '부족하다'라고 말씀하세요. 어떤 분은 굉장히 마르신 분인데 사람들에게 항상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너는 왜 살이 안 찌니.' '너는 왜 이렇게 말랐니.' 풍만하고 여성스러운 몸매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질'을 당해요. 그분은 열심히 먹고 운동하고 해도 살이 찌지 않는 체형인데, '이런 것 때문에 내가 계속 이렇게 말을 들어야 하나.' '여기서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울먹이시더라고요. 


몇 센티 몇 킬로그램... 그게 무슨 정답인 것처럼 그것이 안 되면 골반이 작고 가슴이 없고 어깨가 넓으면, 넓은대로 항상 이야기를 들어요. 자기 체형에 완전히 만족하거나 신경을 안 쓰시는 분들이 별로 없는 거예요. 록산 게이도 <나쁜 페미니스트>에서도 이야기하거든요. '주변에 보면 자기 몸에 만족하는 여성이 없다'라고. 


그래서 이게 여성들의 가능성을 얼마나 제한하는가? 여성들의 시간을 얼마나 낭비하게 하는가? 이런 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키가 작은 여성


"저는 일단 키가 좀 많이 작은 편이죠. 어렸을 때부터 작았어요. 맨 앞에 앉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어요. 괜찮았어요. 


그런데 20대가 되고 성인 여성으로서 내 몸을 전시하게 되는 상황이 되고 그냥 저희 특징 중에 하나인 그냥 작은 키가 굉장히 저의 큰 약점처럼 여겨지는 거예요. 


특히 이렇게 된 건 저의 소심함이나 저의 열등감일 수도 있겠지만 주변에서 그냥 흔히 너무나 쉽게 제 몸이나 키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하는 일들이 더 많아진 거죠. 이를 테면 동아리 같은 모임에서 선배가 와서 저희들이 동그랗게 앉아 있어요. 그러면 사회 보는 남자 선배가 일어나서 자기소개해보라고 해요. 그럼 제가 일어나면 '어? 일어난 거야 앉은 거야?' 그래요. 


농담으로 웃기려고 한 건데 저는 전혀 웃기지 않거든요. 저는 그 상황에서 화를 내고 싶어요 사실은. 하지만 화내면 분위기 망치니까. '아이 왜 이래' 하면서 넘어가요. 이런 작은 말들이 (작은 키를) 저의 큰 약점으로 만들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그게 키가 작은 사람이라는 게 저의 전체를 정의하는 것처럼 돼버린 거예요. 나는 그건 그냥 일부일 뿐인데. 


난 사실 그렇게 작고 귀여운 사람이 아니고 터프하고 털털하고 내가 내면에 더 보여줄 게 많은데.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적다고 생각하고 사람들 앞에 나가서 발표하고 그럴 때도 자신감이 없어지고 처음 누굴 만날 때도 '날 어떻게 생각할까.'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큰 배낭을 메고 유럽 여행을 가고 싶어도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배낭이 끌린다고 놀리진 않을까?' 그러니까 자꾸만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나의 어떤 취향이나 성격, 내가 생각하는 사고의 깊이는 내게 중요한 게 아닌 것처럼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외모가 너무나 세상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와서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그런 생각이 낭비였다고 생각이 들어요. 외모로 인한 위축감 때문에 젊은 시절 많은 부분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지금은 들어요.


저도 그런 것 있었던 것 같아요. '정상성' 평균 이상이 되고 싶다는. 그게 안 됐을 때, 괜히 나 스스로 느끼는 열등감은 나도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럴 때 '뭐가 어때'라고 하는 사람이 훨씬 아름답거든요. 훨씬 매력적이거든요. 


이건 제가 갖고 태어난 것이고 잘 꾸미고 잘하면 좋겠지만, 이건 그것보다 훨씬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도구, 가능한 잠재력, 다양성이고, 나를 담고 있는 그릇이고,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작가의 이전글 [전문] 1화. 위안부 생존자 이용수의 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