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는 없다.
사람이 죽었다.
배달원이 고가 승용차에 치여 죽었다. 파렴치한 어린 것들이 저항할 수 없는 어린 것들을 성노예로 만들었다. 술 먹은 차가 아이가 죽였다. 택시가 불러온 지연은 숨을 멈추게 했다. 이들이 죽어간 자리에 들불이 일어섰다. 여기저기 흩날린 불씨가 번져 10만 50만 100만 화염이 한사람, 한사람을 겨눈다. 불타오르는 분노 앞에 한사람은 악소리 한번 못하고 사라진다. 분노 앞에 국가는 말을 잃어간다. 논리, 원칙을 감히 꺼내들지 못한다. 100만 들불은 말한다.
“죽여라”
죽은 자 생겼으니 연관된 자 죽음에 버금가는 죽음을 선사해라. 죽음 앞에 뻔뻔한 자태를 들이미는 저 자는 용서할 수 없다. 너희가 못하겠다면 우리가 해주겠다. 너희의 방만함으로 도저히 인간 세상에 있어선 안될 것들이 생겨난다. 우리가 죽이겠다. 우리가 죽인다. 우리 손으로 처단하겠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엄마와 아빠가 생겼다. 아이는 크면서 엄마와 아빠에게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배웠다. 아이가 모여 엄마 아빠가 되고 집단이 됐다. 집단은 살아남기 위해 손에 꼽는 약속을 만들었다. 형제자매끼리는 짝이 되지 말자. 집단끼리 뭉쳐 사회를 만들었다. 잡다한 약속을 걷어내고 꼭 이것만은 하지 말자는 원칙 몇 가지를 합의했다. 좀 더 잘 살아보자고, 좀 더 안전하게 살아보자고 사회가 합쳐져 국가가 됐다. 국가 아래 사람의 삶을 위해 최소한으로 최저점으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도덕과 양심보다 한없이 낮은 곳에 위치한 울타리였지만 넘으면 삶이 위험해진다는 걸 국가 아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울타리는 계속 고쳐졌다. 나무였던 것이 쇠로 변하고 울타리 주위에 철책도 추가했다. 몇십년 동안 구실을 다하지 못한 울타리는 제거됐고 이중 삼중 울타리가 세워지기도 했다.
울타리는 넘으려 하는 자, 엉겁결에 넘는 자, 치밀하게 피해 가는 자를 막지 못했다. 울타리를 넘을 생각도 하지 않는 자들이 보기에 울타리를 넘어간 자들은 너무 쉽게 다시 울타리 안으로 돌아왔다. 울타리를 넘어간 자 뒤에 죽음이 남아 있어도 넘어간 자들은 5년 뒤, 10년 뒤 죽음이 있었던 자리에 슬며시 돌아왔다. 울타리 안의 양들은 겁에 질렸다. 저 울타리는 안전한 것인가. 양의 탈을 쓴 양도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하는가. 넘어간 자도 결국 양인가. 두려운 양들은 소리 내 울었다. 양이 울자 옆의 양도 울었다. 울타리 안의 양이 계속 울어댔다. 하지만 울타리는 양들의 우는 높이만큼 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마리 양이 운다고 세워둔 울타리를 없앨 수도 없었다. 세 마리 양이 운다고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 수도 없었다.
양들의 마음속에는 어렴풋하게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세워지는 울타리를 기대하지 말자. 다섯 양이 모여 양의 탈을 쓴 양을 둘러싸자. 여섯 양이 모여 넘으려 하는 자, 넘으려 했던 자, 넘었던 자를 몰아내자. 감정과 감정으로 보이지 않는 칼날 같은 울타리를 만들자. 용서, 참회, 반성, 변화라는 실낱같은 낌새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용서받지 못할 죄, 참회하지 못할 놈, 반성할 수 없는 자, 변화하지 못하는 양만 있는 것이다. 죽어간 자들 앞에 도달하지 못할 말들을 지껄이지 말자. 살아남아 치욕스런 양에게 고집스런 말들로 둘러싸지 말자. 양치기는 없다. 양들이 양들을 몰아내자.
붕괴인가. 변화인가. 어리숙한 한 마리 양은 어리둥절 무섭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