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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걱정 많은 아저씨 Jul 22. 2024

나의 설레는 바다

나의 설레는 바다

 나에게 바다는 여럿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즐기는 흥겨운 곳 이라기보다는, 바다와 나, 단둘이 만나서 서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사적대상이었다. 뭔가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고자 할 때 그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내주는 편안한 존재.

 서울촌놈인 내가 7년 전 제주로 이주할 때, 잘 알지 못했던 이곳으로 큰 망설임 없이 떠나올 수 있었던 중요한 까닭 중 하나 바로 이 ‘바다’를 가까이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는, 도시사람이 갖지 못했던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 ‘그곳에 바다'가 있기 때문이었다.

 낯선 곳에 처음 가거나 정착할 때 우리는 일가친척이나 연고가 있는지 알아보곤 하지만, 이곳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내가 기분 좋게 찾아와 정착하고 편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바다’ 때문이었으리라. 그만큼 언제 가도 조용하고, 좋은 소리와 냄새가 나고 기분 좋게 받아주는 바다.


 그리고 이 바다는 당연히 모두들에게 그런 존재였는지, 나와 같은 많은 ‘것’들이 모이고 만나게 해 주었다.

 이 좋은 바다를 걷다 보면 어김없이 보게 되는 다양한 쓰레기들, 모레와 해초들 사이에 조금조금씩 모여있는 ‘스티로폼 눈송이’들. 이런 것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매일같이 나와서  바닷가를 치우는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는 아픈 사람들을 돌보느라 바쁘신데, 항상 따님과 함께 나와 바닷가를 청소하는 다정한 경옥님과 채은누나 모녀. 매번 일가친척과 키우는 반려견까지 총출동해서 바닷가를 탐험하듯 발견하고 청소하며 일상을 나누는 미성님과 소율이네 가족. 그분들과 만나 바닷가를 즐겁게 청소하고, 일상을 나누는 '쓰줍인 제주'라는 플로깅 모임은 바다가 선물로 준 것 같다.^^


 ‘바닷가의 이 쓰레기들은 모두 어디서 오는 걸까? 바닷가만큼이나 바닷속에도 뭔가 어마어마하게 많겠지?’라는 궁금증, 그리고  그 궁금함을 해소하고자 시작한 ‘프리다이빙’과 '플로빙 코리아'. 바닷속에서는 정말 어마어마하고 다양한 쓰레기들을 만난다. 그만큼 다양하고 예쁜 바다생물, 그 속의 물살이들을 정말 작은 결심만으로도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다.

햇살 좋은 날 뜨거운 바다 안에서, 바다 바닥의 생명들과 물속을 비행하는듯한 물살이들과 그 사이에 작고 조용히 떠다니며 섞여있는 크고 작은 쓰레기들을 한눈에 확인하고 있자면, ‘이게 현실인가?’ 싶을 때도 있다.


 바다는 또 나라는 인간이 평소 느끼고 생각했던 좁은 시공간이 실은 매우 넓고 깊다는 깨달음도 준다. 수십 년 전, 내가 어렸을 때 먹어봤던 아이스크림, 사탕 봉지들도 만나보고, 아마 나보다 먼저 이 지구에 태어났을 각종 음식포장용기들을 발견할 때면, 놀랍고도 재밌다. 분명 중국이나 대만에서 입수한 듯한, 바다를 통해 나에게 닿은 한자 투성이의 생수병들을 제주의 북서쪽에서도 만나고, 귀여운 캐릭터가 웃고 있는 '히라가나'가 가득한 일본 과자봉지를 제주의 동남쪽에서 주워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바다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당신! 내가 이웃나라 중국, 일본, 그리고 당신네 인간들 사는 모든 곳이랑 연결하고 있어요."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직접 바다에서 만난 건 아니지만, 바다를 통해서 맺게 된 다양한 인연들도 있다. ‘육식을 줄이거나, 채식을 해보자’라는 호기심으로 참여한, 'NGO 쓰줍인'의 비건 프로그램. 이를 통해 인간이 바다에 버리는 주요한 쓰레기 중  하나가 ‘다 태운 담배꽁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던 인류가 바다에 보내는 가장 큰 메시지 중 하나는 ‘발암물질과 플라스틱의 복합체’인 ‘담배꽁초’다. 인류가 이런 '욕설'을 바다에 뱉어냄을 미안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렇게 '험한 것’이 바다에 닿는 것을 막으려, 사용하고 버려진 바다부표들을 이용해 ‘바담깨비’라는 이름의 재떨이를 만들어 세우고, 보살피는 '지구별약수터'도 만났다.

 출퇴근길에 건널목 신호등에 서서 핸드폰을 보면, 이런 분들이 제주와 전국의 ‘하수구와 배수로'에 "여기서부터 바다의 시작"이라는 예쁜 메시지를 고래들과 함께 그려놓은걸 인스타그램으로 확인하곤 한다.

그리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나는 상상한다. ‘지금 나 서있는 하수구 옆 건널목, 여기도 바닷가구나..^^’


 그들을 직접 만나서, 혹은 인터넷 화상회의에 모여 바다와 담배꽁초를 이야기를 한다. 담배꽁초 줄이, 잘 버리, 재활용하, 그리고 캠페인을 어떻게 하고 등진지하게, 마치 입에서 불을 뿜듯이, 하지만 종종 웃기도 하며 토론하는 현장에 참여하고 있자면, 내 나이 20대, 몸도 맘도 지치고 어렵던 군생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았던 울 아버지의 편지,  "담배 태울까 걱정" 이 한 문장이 전부였던, 그 편지 생각난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시골집에 더 이상 안 계시지만, 해가지면 눈앞까지 우주가 내려오는 어두운 밤, 자연스 밝은 달님과 맞닿은 것 같은 그때,  “달님~ 우리 맛있는 거~ 재밌는 장난감~ 사주세요~오. 우리 할아버지한테 말해주세요~”라고 외쳐대는 내 아들 둘을 보고 있자면, 내 아부지도 꼭 그렇게 멀리 계신 게 아닌 것 같다.


 그냥 바닷가에 맨발로 서서 발만 바다에 적셨을 뿐인데, 이 많은 시간과 공간, 다양한 것들과 만나게 해주는 바다. 감히 여러분들을 언급하면서도 ‘이 분’이 아니라 ‘이 것’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의인화'가 오히려  바다와 그 안과 밖을 둘러싼 것들의 격을 낮추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만드는 바다, 바다는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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