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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삘릴리 Oct 09. 2021

뮌헨에서 취리히까지

꽁트로 떠나는 열세 번째 유럽여행 

        

  #그녀는 잘 웃었다. 소리 내어 웃지 않아도 그 웃음으로 주위가 환하게 빛나는 기적을 행하는 그녀를 우리는 ‘백만 불 미소’라 불렀다. 처음 그녀가 동아리방을 들어서던 순간부터, 그녀가 선배들을 향해 활짝 미소를 짓던 그 순간부터, 그녀는 우리들의 여신으로 등극했다. 문제는 그녀 옆에 껌 딱지처럼 붙어 있던 윤석이었다. 그녀와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녀석은 보디가드를 자청하며 속 시커먼 우리들로부터 그녀를 철통같이 방어했다. 그깟 후배가 뭐가 무서워서 그녀에게 다가서질 못했냐고 우리를 비웃겠지만, 그건 모르는 말이다.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장착한 100kg 이상급 유도 특기생인 윤석이 앞에 서면 우리는 저절로 비굴해져서 꼬리를 착 내리고 그녀를 향한 마음을 접은 채 돌아서곤 했었다.      



  #슈바빙 근처 카페에서 동하와 맥주를 마시며 노닥거릴 때였다. 마주 앉은 녀석의 시선이 자꾸 내 어깨너머로 향했다. 아까부터 대체 뭘 보는 거야?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린 순간, 맥주를 홀짝이며 책을 읽던 그녀를 발견했다. 반가움과 동시에 가슴이 찡하니 아려왔다. 솔직히 졸업과 취업의 산을 넘으며 동아리와 인연이 흐지부지 끊어졌을 때, 유일하게 그녀가 궁금했었다. 언젠가 바람결처럼 그녀가 보디가드를 자처하는 윤석이 녀석을 완전히 떼어버렸다는 소문이 들려왔지만 적극적으로 그녀를 찾아 나설 용기는 없었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고, 괜히 흑심을 보였다가 좋은 선배 이미지에 먹칠하게 될까 두려워서, 겁쟁이 모드로 아주 가끔 그녀를 떠올리며 그리워한 것이 전부였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산다면 한 번쯤 우연처럼 마주치기를, 그 우연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기적이 이곳 뮌헨에서, 슈바빙의 한 카페에서 일어났다.

      

  “어머머, 선배!”


  놀란 얼굴로 나를 반기는 그녀의 입가로 백만 불짜리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를 둘러싼 주위 풍경이 갑자기 환하게 빛났다. 황홀했다. 동시에 우리들의 여신이던 그녀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고, 추억에 젖어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기막힌 우연에 어쩔 줄 몰라하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복기하듯 우리 사이에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 틈을 파고든 건 동하였다. 우리 두 사람의 기막힌 우연에 흥분하며 이런 날은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맥주를 마셔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기적의 밤을 축하했다. 그녀는 유럽의 MIT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이었고, 뮌헨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 중이었다.      


  “선배, 뮌헨에 온 지 얼마나 되신 거예요?”

  “1년 좀 넘었나? 처음 지사 발령받고 이 녀석 도움을 많이 받았지.”

  “지금은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고 있어요. 형 덕분에 공짜 술 마음껏 마시면서요. 하하하하”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그날 처음 만난 그녀와 동하는 어색함 없이 잘 어울렸다. 정치학과 대학원생답게 동하의 말발은 화려했다.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서울과 취리히보다 뮌헨과 취리히는 얼마나 가까운 거리냐면서 앞으로 자주자주 연락하자고 했다. 뮌헨에서 열리는 옥터버 퍼스트를 함께 즐기고, 휴가에는 스위스 빙하특급을 함께 타자는 약속까지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코로나19와 함께 유럽이 봉쇄되는 암흑기에 접어들고 말았다.      



  #하루 종일 내린 비 때문이었을까? 문득문득 그녀가 그리워져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일부터 휴가라 처리할 일이 많은데 낭패였다. 차오르는 우울을 떨쳐내며 겨우겨우 일을 끝내고 동하를 불러냈다. 이런 날은 알코올 충천이 필요했다. 박사 논문 때문에 바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동하는 충실하게 내 옆을 지켜주었다. 

  그날,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고 SNS로 안부만 전하는 게 문제였다. 어정쩡한 상태에서 그녀에게 마음을 보여주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싶어서 가끔 소식만 주고받자니 더 애가 탔다. 차라리 그날 만나지 말 것을, 그랬더라면 그녀를 향한 그리움으로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애꿎은 동하를 붙잡고 찌질하게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맥주를 마셨다.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죽을 것처럼 아픈 가슴을 동하에게 어떻게 털어놓았는지 기억이 없다. 어렴풋이 내 마음에 동조하는 녀석이 고마워서, “역시 나를 알아주는 건 너밖에 없어”라며 그를 와락 끌어안았던 희미한 기억이 전부다.      


  “형, 일어나. 어서 일어나서 준비해요.”        


  나를 깨우는 다급한 녀석의 손길에 화들짝 놀라 깨어보니,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어느새 말끔하게 차려입은 동하가 그녀에게 가자며 나를 재촉했다. 비몽사몽 중에 헛소리를 들은 건가, 어리둥절하는데 녀석이 친구에게 빌린 자동차 키를 흔들어 보이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연락도 없이 어떻게 그녀에게 가냐, 네 마음은 고맙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며, 몸을 빼는 나를 녀석이 부여잡았다.         


  “뭐야, 밤늦게까지 윤지 보고 싶다고 울며불며 난리 치더니?”

  “그건 그렇지만... ”


  동하는 나를 거의 반 강제로 차에 태우고 취리히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뮌헨을 떠나 퓌센을 거쳐 취리히까지 6시간을 쉬지 않고 달렸다. 니코틴은 적어도 1시간에 한 번, 카페인은 2시간에 한 번씩 꼭 공급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녀석이 휴게소를 쌩하니 지나치며 맹렬하게 길을 달렸다. 그렇게 취리히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 그녀의 연구실 앞에 선 내 심장은 폭주하는 증기기관차처럼 요란하게 뛰었다. 

  똑똑. 정중하게 노크를 하고, 빼꼼 연구실 문을 열었다. 조용한 연구실 분위기를 느끼며 눈으로 그녀를 찾는데, 동하가 큰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동시에 우리를, 아니 나를 발견한 그녀가 놀란 토끼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입가로 백만 불 미소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게 피어났다. 새벽부터 달려온 피로가, 괜한 치기로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말끔하게 씻겨 나갔다.  

  레스토랑에 둘러앉은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재잘재잘 떠들었다. 우리의 깜짝 방문에 들뜬 그녀는 흥분 상태였다. 이른 새벽부터 뮌헨을 떠나 취리히까지 달려온 정성에 완전히 감동한 눈치다.    

   

  “형. 나 친구 녀석한테 전화 좀 하고 올게.”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동하는 슬쩍 자리까지 비켜주었다. 나를 위해, 내 사랑을 위해 먼 길을 달려와 주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며 자리까지 피해 주다니, 눈물 나게 고마운 녀석이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평생 은인으로 모시고 살아도 부족할 것 같다며, 마음으로 동하를 예찬하고 있을 때였다.     


  “선배, 고마워요. 이렇게까지 해 주시고”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아뇨. 제가 동하 씨랑 잘 됐으면 하는 선배 마음, 충분히 알겠어요.”   

  

  뭐? 동하가 뭘 어쨌다고? 그녀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그날 동하가 좋았다고,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정말 고맙다며,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 위로 유난히 오버하던 녀석이 오버랩됐다. 우리가 재회했던 슈바빙 카페에서 그녀에게로 향하던 동하의 눈빛, 그녀 때문에 가슴 아파하던 나를 요란스럽게 부추기던 녀석의 극성스러움, 연구실이 떠나갈 듯 크게 그녀를 부르던 녀석의 목소리가 묵중한 체기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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