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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삘릴리 Jun 30. 2021

따로 또 같이 프로방스를 걷다

1편


                                        1

                           5월 19엑상프로방스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엄마는 없다. 미양은 낯선 곳에 버려진 고아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어라이벌 게이트를 나서기는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난감해진다. 정서 불안증 환자처럼 그녀의 눈동자가 초점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 시선 끝에, 어린 아들을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트리는 여자가 보인다. 뮌헨 공항에서 환승할 때, 옆자리에 앉았던 프랑스 여자다. 3년간 동거하던 독일 남자와 헤어지고 친정에 맡겨두었던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며, 살포시 들뜬 얼굴로 웃던 그녀다. 

  명치끝이 저린다. 여전히 엄마는 없다. 미양은 습관처럼 입술을 앙다물고 마르세유 프로방스 공항을 빠져나온다.      

  서늘한 프로방스 밤공기가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와락 달려든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시원하고 달콤한 공기다. 뮌헨 공항에서 환승하며 기다리던 시간까지 꼬박 20시간을 날아온 피로가 한순간에 씻겨나간다. 미양은 엑상프로방스로 가는 공항버스를 타러 가며 다시 한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늦게라도 엄마가 공항에 도착해서 나를 찾을지 몰라.’ 


  혹시나 했던 기대가 무참히 깨졌다. 한여름 땡볕에 시든 채소처럼 온몸에 힘이 빠진다. 엄마가 연락을 못 받은 것이 틀림없다. 벌써 일주일째 그녀가 보낸 톡은 물론이고 이메일까지 ‘확인 안 함’ 상태에 머물러있다. 처음 엄마가 보내온 엽서를 받던 순간, 어렴풋이 들었던 예감. 어쩌면 엄마를 쉽게 찾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불길하게 스친다.   

   

  공항을 출발한 버스가 텅 빈 고속도로로 빨려 들어간다. 

  어둠에 덮인 창밖 풍경이 고집스럽게 제 정체를 감춘다. 얼마 만인가 이 길을 정처 없이 지나던 것이.  

  기억 속의 미양은 프로방스에서 펼쳐질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보다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이 길을 달렸다. 그때도 오늘처럼 고속도로는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둠으로 가득했다. 암담한 그녀의 미래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길이었다. 

  미양은 프로방스에 사는 동안, 이 길을 수 없이 오갔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밤과 낮이 확연하게 달랐던 길옆의 풍경을 되새겨 본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이 길을 달리며 바라보던 경치는 캉캉 춤을 추던 무희의 치마 속처럼 아름다웠다.  

  하늘 높이 솟아난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붉은 기와지붕 집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길옆으로 펼쳐진 낮은 구릉에는 상록수들이 우거졌다. 일 년 내내 풍경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처럼 변함없었다. 벌써 14년 전의 기억들이다.      

  미양은 칠흑같이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쉰다. 공항버스는 엑상프로방스 테제베(TGV) 역에서 한 번 더 정차한 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밤 10시. 시외버스터미널은 한적하다. 작은 도시 엑상프로방스는 벌써 깊은 잠에 빠진 듯 주위는 어둠으로 가득하다. 공항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길고양이처럼 익숙하게 터미널을 떠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짐 가방을 찾아든 미양은 주위를 둘러본다. 희미한 가로등과 싸늘한 밤공기가 그녀의 방향감각을 마비시킨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미라보 거리로 가는 길이 어딘지 모르겠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미양은 그대로 터미널 바닥에 주저앉는다.    

   

  “씰 부 플레 마담! 쥬 브드레 알레 꾸흐 미하보……”


  다른 도시에서 오는 버스가 속속 터미널로 들어왔다. 미양은 개학 첫날, 단짝이 될 친구를 찾는 아이처럼 승객들을 주시하다가 마음씨 좋아 보이는 마담에게로 다가간다. 

  미라보 거리로 가고 싶은데요. 오랜만에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프랑스 말이 어색하게 공중을 배회한다. 생글생글 웃는 눈을 가진 마담이 미양을 쓱 훑어본다. 커다란 짐가방을 가진, 가녀린 동양 여자에게 호감 가득한 미소를 보여준다.      

  마담은 미양을 미라보 거리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나섰다. 엄마 말대로 대책 없이 친절한 프랑스 사람을 만난 것 같다. 어린 미양의 눈에 프랑스 사람들은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였다. 친절과도 거리가 멀었다. 다소 게을렀고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미라보 거리로 가는 동안, 마담은 강한 남프랑스 사투리로 수다스럽게 말을 붙여온다. 만난 지 5분 만에 미양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는 듯 질문을 쏟아낸다. 여행을 온 것인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프로방스에는 처음인지, 프로방스에 도착한 첫인상은 어떤지. 미양은 터져 나오는 하품을 참으며 한국에서 왔고, 프로방스는 처음이라고 둘러댄다. 

  호기심이 강한 여자는 딱 질색이다. 주책 부리는 여자도 싫다. 가장 최악은 하이 소프라노 톤의 여자가 궁금증을 드러내는 일이다. 다행히 그녀의 호기심은 참을 만하다.  엑상프로방스가 프랑스에서 최고로 시크한 도시라며 자랑을 늘어놓는 그녀의 목소리도 부드럽고 친근하다. 미양은 자신이 왜 이 도시를 찾아왔는지 털어놓고, 엄마를 찾아달라고 매달리고 싶어 진다. 점점 약해지는 자신을 추스르며 명랑한 몸짓으로 마담과 대화를 이어나간다. 


  “다 왔어요. 저기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호텔이 보일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미양이 그녀와 헤어지기 싫은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피곤할 텐데, 잘 쉬세요. 아! 그리고 엑스를 떠나기 전에 세잔의 발자취를 따라다녀보세요. 아시죠? 여기가 세잔의 고향이잖아요.”


  마담은 오래된 친구처럼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선다. 

  마담과 헤어진 미양은 갑자기 밀려드는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몸을 움츠린다. 오랜만에 찾아온 이 도시가 사악한 계모처럼 그녀를 외면할 것 같아 불길하다. 공항에서 엄마를 만나지 못한 것처럼 이곳에서도 엄마를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불안해진다. 

 아니다. 아닐 거다. 미양은 입술을 깨물며 호텔로 들어선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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