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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삘릴리 Jun 30. 2021

따로 또 같이 프로방스를 걷다

2편

                                           2     


  ‘1년만 쉬고 돌아올게요. 잘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가 남긴 메모는 1년 치 김치와 밑반찬이 담긴 대형 김치냉장고 앞에 붙어있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엄마가 남긴 메모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저녁때가 지나서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뚱한 목소리로 미양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거기 있지?”

  “아뇨. 갑자기 엄마는 왜 찾으세요?”


 아버지는 피곤하다는 듯이 정말 엄마가 거기 안 갔느냐, 장난치는 거면 하나도 재미없으니까 엄마 보고 빨리 와서 저녁을 차리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까지 미양은 그날 아버지가 출장에서 돌아왔다는 것도 엄마가 메모 한 장 달랑 남기고 사라졌다는 것도 몰랐다. 늘 그렇듯이 미양은 친정 일에 무신경했고, 퇴근길에 사 온 오징어를 손질하느라 바빠서 아버지의 전화를 건성으로 받았다. 

 미양이 데친 오징어를 초고추장에 버무리고 있을 때 다시 전화가 왔다. 


 “정말 엄마 거기 안 갔어?”
  “그렇다니까요. 왜 무슨 일 있어요?”


  미양의 목소리에 살짝 짜증이 섞였다. 아버지는 바로 떼를 쓰다 야단을 맞은 아이처럼 풀 죽은 소리로 엄마의 부재를 알렸다. 

  김치냉장고에 붙어있던 메모지를 확인하고 보니 붙박이장 밑에 넣어두었던 여행용 가방이 사라졌고 엄마의 옷들과 화장품도 안 보인다며 한숨을 쉬었다. 신발도 몇 가지 없어진 것 같다는 부분에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가 부쩍 약해졌다. 마음이 무거워진 그녀는 곧 친정집으로 가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친정으로 가는 차 안에서 미양은 이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의 소재를 물었다. 이모들도 엄마를 만난 지 오래됐다며 오히려 그녀에게 엄마 소식을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미양이 엄마를 만난 것도 꽤 오래됐다.      

  돌아가신 할머니 유품 때문에 엄마와 싸운 것이 마지막이었다. 장례를 치른 지 얼마나 됐다고, 엄마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할머니 물건을 버리고 있었다. 너무 노골적이었다. 단 며칠을 못 참고 본색을 드러낸 엄마가 미워서 가시투성이 독설을 퍼부어댔다. 서늘해지는 엄마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이번에는 엄마의 침묵이 꽤 오래가겠다는 예감이 스쳤다. 

  예상대로 엄마가 공수해주던 김치와 밑반찬이 당장 끊어졌다. 그녀의 안부를 물어오던 엄마의 전화도 사라졌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친구 같던 엄마의 SNS도 자취를 감췄다. 모녀 사이의 단절과 화합은 늘 있는 일이었으나 이번처럼 길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메모지가 붙어있던 김치냉장고는 원래 미양의 혼수였다. 

  엄마가 세일이라며 덜컥 사들인 김치냉장고는 신혼집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컸다. 미양이 점찍어 놓은 다른 가전제품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미양은 세일이라는 사실에 불나방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든 엄마의 궁색함이 싫었다. 상의 한마디 없이 그녀의 신혼으로 불쑥 끼어든 엄마의 독선도 미웠다. 그래서 또 한바탕 하고 말았다.  

  김치냉장고는 엄마네 집으로 배달되었고 그날 이후 엄마는 발품을 팔며 딸의 혼수를 사러 다니던 일을 중단했다. 미양은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에부수수한 엄마 취향대로 신혼집을 꾸미지 않게 돼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미양은 김치냉장고에 붙은 포스트잇을 뜯어내 다시 읽었다.       

 ‘1년만 쉬고 돌아올게요. 잘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1년만 쉬고 돌아온다니, 도대체 엄마는 왜 쉬겠다는 것일까. 이제 시집살이를 시키던 할머니도 돌아가셨는데, 평생 집과 회사밖에 모르는 성실한 아버지를 두고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면서 쉬고 싶다는 것일까. 

  미양은 쉬겠다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이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솔직히 엄마에게 주어진 가사노동의 강도는 새털만큼 가벼웠다. 적어도 미양이 보기엔 그랬다. 모두 할머니 덕이었다. 

  엄마보다 키 크고 기운 센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몸을 움직이며 모든 집안일을 챙겼다. 집안의 크고 작은 모든 행사를 주관했고, 그에 따른 음식 준비의 총괄 책임자였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버지를 위해서 장을 담그고 김치를 버무리는 일도 모두 할머니 몫이었다. 

  남들은 엄마를 호랑이 시어머니 밑에서 순종하는 착한 며느리라고 칭찬했다. 과연 그럴까. 미양은 늘 의문이었다. 그녀가 본 엄마는 게으른 고양이처럼 할머니의 그늘 아래 숨어있었다. 할머니를 방패 삼아 늘 뜨거운 태양과 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오는 길에 이모들한테도 전화해 봤는데, 아무도 모른대요. 혹시,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 가는 데 없으세요?”

 “없다.”


  아버지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계속 리모컨을 돌렸다. 

  볼륨을 최대한 줄인 텔레비전 앞에 앉아, 쉴 새 없이 리모컨을 돌리는 동작은 아버지가 극도로 화를 참고 있다는 표현이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침착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아버지는 엄마가 날린 직격탄에 맞은 상처를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거실에 널브러진 출장 가방이 피곤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저녁을 먹겠느냐는 미양의 말에 아버지는 대꾸 없이 리모컨만 돌려댔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미양은 쌀을 씻어서 밥을 안치고 김치냉장고를 열어 엄마가 준비해 놓은 밑반찬과 김치를 그릇에 옮겨 담았다. 북어포를 꺼내 북엇국을 끓이려다가 오징어 초무침을 해달라던 남편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전화도 못 했다. 미양은 남편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아버지는 무서울 정도로 침묵했다. 

  평소 같으면 쪽지 한 장 달랑 남기고 떠난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며 펄펄 뛰었을 텐데, 침울한 표정만 지었다. 말을 잃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엄마한테 아직 연락 없어요?”

  “없다.”


  그뿐이었다. 퇴근길에 친정에 들렀던 미양은 아버지의 침묵에 짓눌려 답답한 가슴만 안고 돌아왔다.      

  엄마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불안한 마음의 표현처럼 아버지한테 전화를 거는 횟수가 잦아졌다. 


  “저예요.”

  “그래.”

  “뭐하고 계세요?”

  “그냥 있다.” 

  “외할머니한테는 엄마 이야기, 못했어요.”

  “잘했다.” 

  “혼자 지내기 힘들지 않으세요?”

  “괜찮다.”


  아버지는 화가 나 있었다. 분명, 엄마 때문에 화가 났고 그 화를 억누르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불안했다. 평소처럼 불같이 화를 내며 집을 나간 엄마랑 당장 이혼할 거라고 소리라도 지르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았다.    

  

  “혹시 두 분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일은 무슨……”


  아버지는 말끝을 흐렸다. 하긴, 일이 있었더라도 엄마는 아버지에게 이럴 사람이 아니었다. 감히 아버지의 권위에 이런 식으로 도전장을 내밀 위인도 못 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계속 물어도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 대신 가사도우미를 구했으니 더는 집에 들르지 말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는 미양의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전해주는 아버지 소식도 침울했다.      

  미양은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엄마를 찾아다녔다. 엄마가 머물고 싶어 했던 내소사 주변을 시작으로 엄마가 좋아했던 산사와 근처의 작은 마을까지, 거의 두 달간 미양은 엄마가 갔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엄마를 찾을 거라는 희망은 없었다. 그냥 넋 놓고 앉아있을 수 없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무의미한 일이야.”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으며 미양은 한숨을 쉬듯 말했다. 재작년에 담양 사람과 재혼한 엄마 친구를 만나고 가던 길이었다.   


  “우리, 그냥 장모님을 믿고 기다리자.”

  그녀의 남편이 오랜 망설임 끝에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돼. 대체 엄마는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왜 숨었다고 생각해?”

  “자기는 엄마가 쉬고 오겠다는 말을 믿는 거야?”

  “안 믿으면?” 


  미양은 무의미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를 찾아다니는 일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제 이 일도 그만두어야 할 시점이었다. 


  “차라리 장모님을 인정해주고, 장모님의 결정을 지지해주자.”

  

  엄마를 인정해주고, 엄마의 결정을 지지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익숙한 일이 아니다.  차라리 작정하고 숨어버린 엄마에게 못 찾겠다며 백기를 드는 일이 더 나았다. 항복은 해도 타협과 화합을 꾀할 수 없는 것이 그들 모녀 사이였다.      

  그즈음 아버지가 침울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진료기록을 확인해 달라는 편지를 받았는데 그중에 엄마가 다녔다는 신경정신과 병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아버지는 병원을 찾아갔고, 엄마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을 들었다. 


  “너도 알고 있었니?”


  아버지가 오랜 투병생활을 한 환자처럼 힘없이 물었다. 


  “아니요. 전혀 몰랐어요.”

  “네 엄마가 우울증을 앓았다는데…… 그걸 몰랐네.”


  수화기 너머로 길게 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더라.”

  “네?”


  힘없는 아버지의 사과에 미양은 흠칫 놀랐다.


  “그동안 네 엄마한테 무심했던 것이 후회되는구나……”


  말끝을 흐리던 아버지는 눈물을 감추며 돌아서는 연인처럼 뚝 전화를 끊었다.  

  엄마한테 무심했던 건 미양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엄마가 예전보다 예민해졌고 툭하면 화를 낸다고 느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갱년기 증상 때문이려니 했다. 엄마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니, 미양은 미안하기보다 낯설게 느껴졌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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