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미영 sopia Jul 16. 2024

일상 - 산티아고 순례 이야기 삼배경

2024년 7월 13일 율량동 라만차 스페인 식당

교구 ME봉사를 하고 있는 레오&레아 부부님이 4월 15일부터 6월 3일까지 긴 여정의 산티아고 순례와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레오 씨는 소방 공무원이었는데 퇴직하고 아내와 산티아고 순례 패키지 상품에다 자신들이 가고 싶은 루르드와 파티마 성모발현지를 추가해 48일 일정의 여행을 다녀왔다. 단체 모임에서 순례 소감을 듣긴 했지만 순례를 직접 체험했던 우리 부부는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산티아고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라파엘&헬레나 부부와 레오&레아 부부님이 한국에 돌아와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라파엘&헬레나 부부님은 함께 봉사를 했었으나 성가대 지휘와 여러 가지 하는 일들이 많아 그만둔 지 몇 년이 되어간다. 7월 13일 율량동 스페인 음식점에서 모처럼 만나 우리는 5시간 가까이 산티아고 순례 중에 겪었던 이야기로 그때를 회상하고 공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린 같은 순례 길을 걸었고 그 길에서 각자 경험한 강렬했던 체험들을 나눔으로써 당시의 추억을 소환하고 웃으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라만차 식당에서 산티아고 이야기 나눔

오랜만에 만난 헬레나 씨는 5년 전보다 더 젊어 보였다. 손톱에도 한껏 멋을 부려 보기 좋았다. 라파엘 씨는 수수하고 중후한 모습, 그리고 여전히 풍만한 모습으로 밝게 웃으며 레오&레아 부부와 우리를 반겨 주었다. 오늘의 식당은 율량동 신시가지에 스페인 요리를 하고 있는 라만차이다. 스페인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고 순례 중에 먹었던 요리를 떠올리기에 좋을 것 같아 기대되었다. 우리는 약속된 시간에 반갑게 손을 잡으며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엔 장식품인 줄 알았던 치즈볼과 방울토마토를 살짝 데쳐 소스를 뿌린 요리는 보기에도 예쁘고 안주로도 굿이었다. 외인잔에 담겨 세팅이 되어 있었는데 먹기에 아까울 정도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마시는 와인보다 고급 와인과 요리를 주문했다. 스페인의 여러 요리들을 먹으며 마시기에 괜찮을 것 같아 라파엘 씨가 선택해 주문했다. 요리와 와인이 아주 잘 어울렸고 맛도 좋았다. 제법 큰 레스토랑인데 주문과 요리 세팅을 쥔장이 했다. 50대의 여주인은 단아한 모습으로 모자가 잘 어울렸다. 나름 이유는 있겠지만 혼자 주방을 오가며 식당을 운영하는 건 아마 인건비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유리 장식장에는 담긴 와인이 그득했으며 긴 벽에는 빈 와인병들이 장식이 되어 보기 좋았다.

라만차 식당에서 주문한 요리

전체적으로 레스토랑의 분위기가 주인을 닮아 정제되고 정갈했다. 9시가 넘도록 우리 팀만 있어서 마치 전세를 낸 것 같아 주인에게는 미안했지만 대화를 나누기는 최적이었다. 몇 가지 요리는 미리 주문해 순서대로 나왔는데 와인 몇 병을 더 마시게 되어 요리를 추가 주문했다. 라파엘+헬레나 씨는 2022년 4월 6일~5월 8일까지 코로나 막판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왔다고 한다. 갑자기 가는 바람에 별 준비와 정보도 없이 일주일 만에 가게 되었다. 당시 길을 걸을 때 필요했던 등산화와 최소한의 것을 준비해 떠났다. 코로나 때라 비행기 이코노미석과 별차이가 없어 비즈니스석을 타는 행운도 얻었다. 첫날은 눈이 쌓여 피레네 산맥을 걷기 힘들었고 셋째 날에는 오른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주일도 안 돼서 양쪽 네 번째 발톱들이 죽었고 부르고스에 도착하기 전부터 물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름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순레자들보다 덜 아프고 덜 힘들게 걸은 거 같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33일 차에 산티아고 콤포스텐라 대성당에 도착할 때 눈물이 흐를  알았는데 오히려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찬 벅찬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까미노 중에 찍은 사진이 4천2백여 장 동영상이 80여 개가 있을 정도로 까미노 여정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까. 친. 연 2.4방에 글을 올려놓았다.  순례 중 발견했던 콜라도 소개해 주었다. 특히 라파엘 씨는 가는 곳마다 재치 있는 입담과 노래를 불러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냈나 보다. 그리고 앞 일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순례길을 찾아다닌 듯했다. 라파엘 씨는 까. 미. 노(까미노 친구들의 연합) 모임도 순례길을 다녀와서 가입을 했다. 대신 헬레나 씨가 꼼꼼하게 챙기고 알아봐서 갔던 거 같다. 라파엘 씨는 성가대 지휘자이다. 오랫동안 타 본당에 초대되어 지휘를 할 만큼 실력도 멋지고 노래도 잘한다. 그곳에 가서도 순례 중 노래를 불러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직업이 의사였기에 비상약 등을 챙겨가서 필요한 분들께 나눔 하고 불편한 분들의 치료를 돕는 순례길에서 특별한 봉사까지 듯했다. 라파엘은 제대로 준비하고 가겠다고 마음만 먹고 못 가는 것보다는, 마음이 결정되었을 때 바로 훌쩍 떠나는 것도 방법 중에 하나라고 조언했다.   

라파엘 씨 순례 중 노래

이번에 다녀온 레오&레아 부부님은 레오 씨가 작년에 퇴직을 계기로 산타아고 순례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둘은 처음에 발이 아파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이드가 취소를 하는 건 어떻냐고까지 했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 먹을 수 있었던 건 일하는 것도 아니고 밥만 먹고 걷기만 하는 데 못할 게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팠지만 천천히 걷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했다. 하지만 계속 찜질을 하고 견뎌 내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이 관심과 배려 그리고 응원을 해 주었다. 그리고 하느님이 함께 걸어 주실 거라 믿었고 모든 걸 맡기기로 했다. 점점 갈수록 걷는 게 익숙해지면서 계속 걸을 수 있었다. 걷다가 문이 열린 성당에 가면 하느님께 잘 걸을 수 있게 기도했고, 청주 ME 40주년 기념행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40주년 행사가 끝나자 문 열린 성당이 없었다고 한다.  그게 무척 신기했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그래도 기필코 산티아고 순례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성당에 가서 기도를 드릴 수 있었고 미사까지 드릴 수 있어 감동이었다. 둘은 성지순례를 통해 부부관계가 더 친밀해졌다고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힘과 다양한 경험을 하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 이야기 나눔

무엇보다 두 사람에게 은총을 느낀 순간은 파티마에 가서 친절한 수녀님을 만난 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만난 수녀님께서 전 일정을 함께 해 주셨다고 한다. 하루는 꼬박 7시간을 걸었고 너무나 힘들었지만 수녀님의 헌신적인 모습과 들려주신 성모님에 대한 이야기에 감동을 많이 받았다. 수녀님은 걸음도 빠르고 모든 행동이 빠릿빠릿하셨고 그야말로 순례에 최적화된 분이셨다. 이런 수녀님을 만나 파티마에서 보낸 시간은 전체 산티아고 순례와 성지 순례에 있어 많은 부분들을 돌아보게 했고 감사를 드리는 시간이었다. 아주 뜨거운 곳에 모자도 안 쓰고 걸었던 시간들, 이곳에서 천사 같은 수녀님을 만나 일정을 빡빡하게 보냈지만 정말 은혜로웠던 시간들, 파티마 이곳에 안 왔으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산티아고에서부터 파티마의 여행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사랑과 돌봄으로 인도하셨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후에 가본 포루투는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로 더 머물고 싶었고 요양을 온 것처럼 편안했다. 장시간 순례와 성지 방문은 다양한 경험을 체험하였으며 은총의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했다.

레오&레아 부부님 산티아고 순례

레오&레아 씨는 오랜 시간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도 바로 시차를 적응하느라 노력했다. 그리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그곳에서 체험했던 것들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이게 여행을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늘 익숙한 것들은 기억에 남지 않고 시간도 빠르게 지나간다. 그런데 낯선 곳에서의 체험은 우리 몸의 세포들을 생생하게 살아있게 하여 많은 것들을 새롭게 하고 기억나게 한다. 그래서 여행은 필요하다. 물론 익숙한 것들도 필요하다. 그러나 오래 기억하고 나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서는 여행을 다닐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너무 자주 다녀서 마치 일상이 여행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익숙한 일상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익숙함이 있어야 새로운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패키지보다는 자신이 계획하고 직접 찾아다녀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이다. 여행 작가 김영하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본 이들에게는 여행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언제든 떠나고 싶다는 본능이 생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날 우리는 와인을 다섯 병을 먹었다. 요리는 주문한 것 외에도 서비스로 내온 것도 있다. 혼자 운영을 하면서도 분위기를 맞춰 주는 쥔장의 센스에 감사를 드린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산티아고 순례 이야기로 행복했던 시간들 안에서 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꾸어 본다.


https://brunch.co.kr/@sopia1357/652



매거진의 이전글 시 -비 오는 날이 좋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