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그리고 리영희
한 번은 교수님께서 질문을 던졌다. 자기가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어릴수록 진보적 가치를 따르기 마련이라고 하나, 공간을 채운 친구들 중엔 보수를 가리키는 손바닥이 꽤 있었다. 그럼 진보는요. 비슷한 숫자가 손을 들었다. 나머지는 잘 모르는 건가요. 동의의 수군거림이 군데군데서 들렸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하시는 분. 정부가 기업에 더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일본과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질문마다 서로 다른 손들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교수는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는 듯 한 학생에게 물었다. 본인은 보수라고 했는데, 왜 성소수자 인권은 지지하고, 기업의 입장은 후순위에 두려 하고... 진보 쪽에서 자주 언급되곤 하는 가치를 지지하는 거죠? 얼떨결에 변명 타임이 시작됐다. 그러자 교수님이 말했다. 우리가 특정 정치적 성향이라고 해도,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서로 다른 가치가 존재할 수 있죠. 우리는 언제나 다양한 가능성이 공존할 수 있는 존재란 걸 잊어선 안 됩니다.
다양성의 공존. 진보라 하더라도 보수적 생각을 할 수 있고, 보수라 하더라도 진보적 사상을 갖출 수 있다. 교수님께서 몇몇 질문으로 간파해냈듯이, 물음표 몇 개로 추릴 수 있는 문장을 간과했었다. 나 역시 보수와 진보는 이분법적 가치관이란 생각을 어느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에 맞춰 재단하곤 했다. 진보라는 친구의 말에 꺼내기 힘들었던 말들, 보수라는 말에 나누기 힘들었던 주제가 얼마나 많았는지. 나도 모르게 흑백으로 우리나라를 칠하고 있었다.
리영희의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읽으며, 당시 부지런히 손을 들었어야 했던 기억과 보수와 진보를 비교적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었던 공간이 떠올랐다. 리영희는 대표적 진보인사다. 군부독재 집권 시절에 여러 번 감옥을 오갔으며, 반미친중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글이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내력을 살피면, 그의 자서전격 책이란 것도 '진보 짱짱맨'으로 채워질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사유를 정답이 아닌 일종의 해석으로 보았고, 공부와 비판적 대화를 통해 정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그의 인생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에게 모 아니면 도란 사고방식은 진전 없는 발걸음일 뿐이었다.
공자의 논어에 <정언> 편이 있어. 제자가 공자에게 "정치의 요체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데에 대해, 공자는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이다(정명)"라고 답했어요. (...) 이처럼 모든 형태나 관계나 성격이나 형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실체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인간 상호 간의 생존에서 혼란을 예방할 수 있고, 또한 그 사고의 주체인 개인의 의식과 행위에 괴리가 생기지 않는 것이에요. (p. 374)
정부 비판적인 활자를 썼다 하면 따가운 눈초리를 온 곳에서 받던 시절이 있었다. 암묵적인 입단속이 팽배했고, 함부로 입을 벌렸다가는 무슨 일이 닥칠지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정명을 말하려 한 사람이 리영희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은밀했던 논의들과 실태를 미국이 발표한 문서를 토대로 언론에서 목소리를 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대해 판단한 것, 즉 미국은 사이공 주민들보다 미국의 국제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전쟁을 이어간다는 것을 통해 미국이 항상 남한을 대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설파했다. 그는 미국이 정답처럼 여겨지던 시절에 단순히 해외 통신사를 통해 전달되는 글을 옮기는 걸 넘어, 직접 문서를 읽고 이에 따른 판단을 전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항상 정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리영희는 마오이즘에 긍정적인 입장을 타진하기도 했다. 참사로 일컬어지는 문화대혁명이 벌어질 당시, 공산주의의 궁극적 가치에 한 발짝 다가서는 발걸음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무조건 폄하할 수만은 없다. 권위주의 정부 특성상 특정한 정보만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그가 자료조사를 통해 괴뢰로만 여겨지던 중국에 대해 그 이름을 명확히 말하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지 않나 싶다.
그렇기에 스피커가 무얼 말하느냐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자의 자세 역시 정명에서 중요하지 않나 싶다. 우리는 정보가 특정 색채를 띄었다고 무시할 게 아니라 그것이 왜 아닌지를 부단히 고민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우리 사회에 적합한 아이디어를 헤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자유민주주의란 아니라고 해서 손가락질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상호 간 설득을 통해 한걸음 나아가는 사회니 말이다. 따라서 공자의 말처럼 사물의 이름을 남이 말하는 대로 받아 적는 게 아니라 서로가 그 이름을 정확히 쓰려는 노력을 그쳐선 안 된다. 저자의 말처럼 하나의 낱말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깊이 생각하고, 또 그 타당성 여부를 여러모로 검증(p. 373)하는 자세는 필수다.
흔히 한국에서는 지식인들이 지난 역사적 반감 또는 편견 때문에 일본인과 일본 사회를 폄하하고, 일본 사회와 문화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농후해요. 그런 태도는 일본을 현지에서 목격하지 못한 탓이거나, 일본의 진실을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일부러 무시하는 것으로 헛된 우월감에 도취하려는 불성실한 정신자세라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한국 지식인들은 말도 되지 않는 자화자찬과 자기정당화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고 있다는 뼈저린 반성을 했어요. 정말 한국 지식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서 분발해야 한다는 경각과 교훈을 얻고 돌아왔지. (p. 230)
수용자의 자세에 대해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세계 정치의 요지라는 워싱턴 D.C.에서 인턴을 하면서 무겁게 다가왔던 점 중 하나는 일본인은 천지에 널렸는데, 한국인은 왜 이렇게 적을까 하는 점이었다. 다른 국가 사람들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점을 위안으로 삼긴 했지만, 부족한 것에 시선이 자꾸 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여행을 하면서도 한국인을 만날 때 동질감을 느낀 적이 딱히 없었는데, 기관 세미나에 참석한 한국인을 보고 처음으로 말을 걸기도 했다. 서원에서 비교지역학을 하시는 교수님들께서 한결같이 말씀하신 게 학문적 인프라가 일본 발끝에 미치지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맞아, 맞아, 그렇지요 하고 넘겼는데, 실제로 마주해보니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동북아시아를 말한다는 컨퍼런스를 가도 일본은 유유히 자리를 차지했지만, 한국은 핫이슈 북한에 밀려 한 꼭지 차지하기도 어려웠다. 미국 싱크탱크 학자들이 일본을 대변하는 입장이라는 비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더 경각심을 느꼈던 건 일본의 떵떵이는 목소리도, 그에 구색을 맞춰가는 학자들도 아닌 그것을 직접 보고 나서야 위기감에 휩싸인 나였다. 우리나라가 잘 되길 바라고 잘 해왔으니깐, 일본과 비등비등하지 않겠냐는 안일함이 있었다. 엇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수능 성적을 받아보니 차이가 커서 억울하단 심정이랄까. 점수가 나오고 나서야 요래조래 손 써봤자 소용없는 일. 일본을 떠나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관심이 없던 일에도 무작정 무시할 일이 아니라 그것들에서 배울 점을 찾고 자기화시켜야겠다는 걸 느꼈다. 그 전제는 내 위치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려는 노력. 그래서인지 자기비판을 겸하지 않은 타자 비판만으로는 자칫 지난날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느냐(p. 586)는 저자의 말이 와 닿는다.
다양성의 공존과 자기비판. 언뜻 보면 서로 다른 갈래인 것 같지만, 하나로 연결돼 있다. 진보와 보수가 막연히 이분법적으로 갈라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위해선 자신의 관점을 하나하나 발라내어 확인하는 자기 객관화의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남 역시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기 위해선 타인이 발하는 색깔에 따라 판단하기에 앞서, 자기 객관화 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문장들을 곱씹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비판을 위해선 여러 갈래들을 공부하고 자기화해야 한다. 다양성의 공존이란 가치에 다가서려면 끝없는 자기비판과 공부가 필요한 셈이다.
이쯤에서 자유는 형벌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르트르는 어찌 됐든 선택은 개인에게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이를 말했다. 선택이 갖는 무게랄까. 리영희는 독재 권력에 맞서 자신의 사상적 자기충실을 견지해야 한다고 했을 때 이를 느꼈다(p. 389)고 한다.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로선 진영논리로 아웅다웅이는 현실과 형벌이라는 자유가 맞닿지 않나 싶다. 단순히 흑백논리를 받아들여 진보와 보수라는 축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를 가진 사회는 아니다. 다채로운 사상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입을 틀어막고 발상의 자유를 제한하곤 한다. 결국, 우리가 자유를 손에 쥐려면 끊임없는 공부와 자기비판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토론을 장려함으로써 사회를 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자유로울 수 없는 형벌이자 역설이다.
요즘처럼 여기저기 휘둘리기 쉬웠던 적이 있었을까. 개개인이 오피니언 리더가 된 오늘날, 균형 있게 다루려는 노력이나 했을런지 의심스러운 메신저들이 넘실댄다. 자칫 잘못했다간 휩쓸리기 십상. 어느새 보수는 보수만, 진보는 진보적인 생각밖에 할 수 없을 거란 편견이 굳어진다. 진영 안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말하려고 하면 질타와 배신이라는 단어가 오가기도 한다. 말 한마디가 옳은지에 대한 고민보단, 내가 속한 진영에 어울리는지를 우선시하게 된다.
이렇게 타성에 젖어 막연한 비난으로 서로를 뒤흔드는 우리에게 근대를 온몸으로 견딘 리영희는 늘 경계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4.19 혁명, 군부독재 집권 그리고 투표권을 손에 쥔 시대까지. 갖은 탄압과 압박에도 자기비판과 공부로 진영을 막론하고 비판적인 삶을 견지한 게 그다.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읽으며, 더불어 사는 길이 무엇인지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나를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