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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Feb 28. 2020

당신의 플레이리스트를 책임질 시티팝 앨범

그 여섯 번째, 〈Sunshower〉(1977)

大貫妙子 -〈Sunshower〉(1977)



L : 시티팝 앨범 하나를 파헤치며 소개하는 비정규 리뷰 코너, '당신의 플레이리스트를 책임질 시티팝 앨범.'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P : 반갑습니다.

L : 새해가 밝은 지 얼마나 됐다고 세간이 좀 뒤숭숭하죠.

P : 그렇네요. 이럴 때일수록 즐겁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작은 소식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굳건히 버틸 수 있는 마음 말이에요.

L : 맞아요. 마음도 건강, 몸도 건강.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은 좋은 음악과 함께 집에서 보내는 것도 좋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소개해 드리는 오오누키 타에코(大貫妙子)의 〈Sunshower〉(1977)와 함께요.




Ohnuki Taeko(大貫妙子) - 'Summer Connection' in 〈Sunshower〉(1977)


A side_#1. Summer Connection


P : 저는요, 마지막 가사 네 줄이 'Summer Connection'이라는 곡을 완벽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太陽の島(태양의 섬) / あふれるリズムに乗り(넘치는 리듬을 타고) / 跳ねてる光の中を(튀어 오르는 빛 속을) / 走る(달리네)."

L : 정말 그렇죠. 여름을 만끽하는 느낌이랄까, 희게 부서지는 햇빛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앨범 아트가 그런 것처럼요.

P : 그런데 이 앨범에서 느껴지는 '여름'은, 예전에 함께 살펴본 〈Timely!!〉〈Summer Breeze〉에서 느껴지는 여름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앞의 두 앨범이 바다(휴양지)의 여름이라면, 〈Sunshower〉는 도시의 여름 같죠.

L : 동감해요. 바다 하면 으레 생각나는 낭만적인 휴양지의 이미지는 이 곡에 없어요. 오히려 카페 같은 데 앉아서 유리창 너머로 도시를 바라보는 것 같은 이미지에 가깝죠. 저는 이 부분이 〈Sunshower〉의, 나아가 오오누키 타에코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P : 그래요? 왜요?

L : 낭만적인 바다는 말 그대로 낭만적인 거예요. 도시인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러나 원하고 동경하는 그런 삶의 모습을 해안이라는 공간에 투사한 결과물이죠. 나한테 없는 것을 상상하고 갈구하는 거예요. 뮤지션도 결국은 도시인이잖아요. 반면 〈Sunshower〉는 다르죠. 도시인이 노래하는 도시니까요. 내 눈앞에 있는 걸 직접 보고 노래하는 거예요. 오오누키 타에코는 그런 데 능해요. 도시의 생활을 관찰하고, 포착하고, 노래하고.

P : 그렇군요. 재밌는 지적이네요. 뭐가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L : 아유, 그럼요. 물론이죠(웃음).




Ohnuki Taeko(大貫妙子) - '都会(Tokai)' in 〈Sunshower〉(1977)


A side_#4. 都会


P : 우리가 아까 열심히 했던 얘기가 헛되지 않았군요. 4번 트랙은 아예 제목이 '都会(도회)'니까요.

L : 다행이네요(웃음).

P : 이 트랙까지 오면, 보컬에 대한 얘기를 또 안 할 수가 없겠죠.

L : 당연하죠. 오오누키 타에코는 좋은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니까요.

P : 뭐랄까, 음색이 독특해요.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지만요.

L : 맞아요. 엷고 여리면서 결정적으로 약간 탁한 듯하죠. 개인적으로는 창호지 같다고 생각하는데……. 고운 무명천 같기도 하고.

P : 그렇죠. 요즘 데뷔했으면 음색깡패라는 별명이 붙었을 것 같은(웃음), 그런 특유의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조금 건조하달까, 동시대에 활동한 타케우치 마리야(竹内まりや)나 마츠바라 미키(松原みき)처럼 감정을 듬뿍 싣는 보컬과는 다른 매력이 있고요.

L : 맨 앞에서 좌중을 휘어잡는 주인공 같은 보컬이 아니죠. 이 앨범에서 오오누키 타에코의 목소리는 마치 체계적으로 편성된 악단 속 하나의 악기 같은 느낌을 줘요. 가수 본인마저 커다랗고 정교한 설계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처럼.

P : 설계가 탄탄하다는 데 동감해요. 키보드, 드럼, 베이스, 퍼커션이 일정한 톤을 유지하는 동안 색소폰과 기타, 피아노 같은 악기들이 슬쩍슬쩍 모습을 비춰요. 담백한 보컬이 이리저리 튈 수 있는 사운드를 한데 모아 매듭지어 주고요. 그러면서도 "その日暮らしは止めて(그런 하루살이는 그만두고)/家へ帰ろう ー緒に(집에 가자, 함께)"라며 시원하게 쭉 뻗어나가는 순간엔 또 묘한 울림을 주기까지 합니다. 뜯어 들으면 뜯어 들을수록 즐거운 트랙이죠.

L : 정말 그렇습니다. 편하게 듣기도 좋고, 집중해서 듣기도 좋고. 그래서인지 인기도 매우 좋아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가수들이 커버하고 있어요. 역시, 듣는 사람이 편하려면 만드는 사람이 고생을 좀 해야 해요(웃음).




Ohnuki Taeko(大貫妙子) - '振子の山羊(Shinshi No Yagi)' in 〈Sunshower〉(1977)


B side_#5. 振子の山羊


L : 방금 '都会' 같은 곡이 편하게 듣기 좋은 트랙이었다면, '振子の山羊(진자의 염소)' 같은 곡은 조금 다르죠. 의외의 구석으로 통통 튀어가는 멜로디를 따라 모험하는 듯한 트랙입니다.

P : 모험. 그렇네요. 오케스트라로 시작했다가, 돌연 세련된 보사노바 재즈가 되었다가, 후반부는 아주 쫀득한 그루브의 펑크(Funk)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더니 갑자기 담백한 한 줄짜리 내레이션으로 끝나는 구성. 따로 노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멋지게 조합한 트랙이에요.

L : 바로 그게 이번 코너의 맛보기 트랙으로 '振子の山羊'를 선정한 이유죠. 오오누키 타에코가 소화할 수 있는 음악적 스펙트럼이 이렇게나 넓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어서(웃음).

P : 그렇죠. 우린 어디까지나 소개를 하는 거니까. 레코드 A면의 유명한 트랙 말고도, B면의 숨은 보석 같은 트랙도 알리고 싶은 게 또 팬으로서의 소망 아니겠습니까.

L : 그럼요. 당연한 말씀.

P : 그럼 이런 생소한 트랙이 어쩌다 탄생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안 해볼 수가 없겠는데요.

L : 물론 오오누키 타에코의 음악적 감각이 낳은 산물이겠으나, 시대적인 흐름이 또 한 축을 이루죠. 마일즈 데이비스의 〈Bitches Brew〉(1969)를 계기로 크로스오버 재즈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재즈와 클래식뿐만 아니라 록, 힙합, 보사노바, 펑크 등 여러 장르가 뒤섞이기 시작했어요. 오오누키 타에코와 그녀가 교류하던 동료들도 이에 영향을 받았고, 이는 자연스레 앨범 작업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해요.

P : 동료들이라면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나 야마시타 타츠로(山下達郎) 같은 사람들 말이죠?

L : 맞아요. 특히 사카모토 류이치는 〈Sunshower〉앨범의 숨은 주역이죠. 모든 트랙에 참여한 건반 연주자였을 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의 편곡과 음악 감독을 맡았어요. 특히 '振子の山羊'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직접 작곡한 트랙이기도 하고요.

P : 함께 록밴드 'SUGAR BABE'를 결성해 활동했던 야마시타 타츠로는 코러스 보컬로 참여했어요. 야마시타 타츠로는 좋은 연주자이기도 한데, 연주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같은 해 발표된 자신의 앨범 〈SPACY〉(1977) 때문이었겠죠.

L : 아마 그렇겠죠. 본인 앨범으로도 바빴을 테니까.

P : 그 외에도 시미즈 야스아키, 호소노 하루오미, 와타나베 카즈미 등 머지않아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르게 되는 연주자들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이런 멤버들을 다 모으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L : 힘들었을 거예요. 더구나 〈Sunshower〉는 솔로 데뷔 후 두 번째 앨범인데, 첫 앨범이었던 〈Grey Skies〉의 성적이 영 신통치 않아서 레코드 회사가 별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해요. 게다가 소속 사무소가 문을 닫기도 하는 등 상황이 굉장히 열악해지기도 했고요.

P : 그런데도 앨범은 아주 좋은데요. 두고두고 남을 명반이잖아요.

L : 오히려 그래서 명반이 나온 것 같아요. 주변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하고 싶은 걸 쭉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거죠. 오오누키 타에코 본인이 인터뷰에서 말하길, 그때는 팔리든 안 팔리든 상관하지 않고, 좋아하는 대로 만들어버렸다고 하니까요.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런 느낌.

P : 멋지네요. 물론 버블 경제 시기인 만큼 경제적인 면에서 걱정을 덜었다고는 해도, 기껏 내놓은 앨범들이 좋은 평을 못 받으면 의욕이 떨어지기 마련이었을 텐데.

L : 꾸준함 또한 오오누키 타에코의 재능이었던 셈이죠.

P : 그러게나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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