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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May 08. 2020

너무나도 부드럽고 기꺼운 비가역

웨스 몽고메리와 그의 기타

어떤 사건은 시대를 양분한다. 러시아 혁명과 무한도전이 그랬던 것처럼. 뒤샹과 찰리 파커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웨스 몽고메리의 기타 연주가 그랬던 것처럼.


양분 이후를 살아가는 인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어떤 비가역은 공포를 낳는다. 그러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우며 또한 기꺼운 비가역 또한 존재하는 법이다. 웨스 몽고메리는 후자에 속한다. "내 관심은 하나의 맥을 아무런 장애 없이 다른 맥으로 옮겨 놓는 데 있다(My aim is to move from one vein to the other without any trouble.)"는 그의 말처럼.


John Leslie "Wes" Montgomery(1923~1968)



연주자의 역량과 즉흥성을 중시하게 된 비밥과 모던 재즈의 시대에 접어든 후에도 퍼포먼스의 중심은 여전히 관악기들의 몫이었으나, 웨스 몽고메리는 기타만으로 청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타리스트 중 하나였다. 물론 그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찰리 크리스천이나 장고 라인하르트처럼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는 기타리스트─심지어 빅 밴드 편성의 스윙 속에서도!─는 있었으나,  웨스 몽고메리는 선행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즈 기타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65년 런던 라이브 공연에서 연주된 'Here's That Rainy Day'는 그가 추구하고 즐겼던 재즈 기타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점은 악기 구성이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에 금관악기를 편성하는 일반적인 콰르텟 구성과 달리, 해당 공연은 금관악기 대신 기타를 편성했다. 요컨대 웨스 몽고메리는 기타를 들고 색소폰이나 트럼펫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이건 꽤나 눈여겨볼만 한 지점이다. 유명한 재즈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금관악기 연주자였으니까. 마일스 데이비스와 쳇 베이커는 트럼페터였고, 찰리 파커와 존 콜트레인은 색소포니스트였다. 무대의 맨 앞에서 긴장감 넘치는 퍼포먼스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역할이 그들의 몫이었던 반면, 기타는 주로 화음을 넣고 리듬을 만드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웨스 몽고메리는 특유의 주법을 통해 새로운 사운드를 창출하며 그간의 기타 연주가 성취하지 못했던 지점을 개척해나갔다. 그는 기타로 재즈를 리드할 줄 알았던 가장 뛰어난 연주자 중 한 명이었다.


Miles Davis(1926~1991), John Coltrane(1926~1967)



웨스 몽고메리의 연주는 마치 기타가 아닌 것처럼 부드럽다. 남무성 재즈 평론가는 이를 두고 '구수하다'고 표현한 바 있는데, 실로 그럴 듯한 표현이다. 엄지손가락만을 이용해 쓰다듬듯 줄을 튕기고, 여러 옥타브의 같은 음을 함께 연주하면서 소리를 중첩시키는 그의 독특한 주법은 그 울림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할로우바디의 둥실거리는 반향과 맞물려 꼭 편안하게 숨을 쉬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한 음색이 그의 연주를 더욱 블루지하게 만드는데, 이는 그의 연주를 단순히 신기한 기교 수준에 그치지 않게 만든다.


재즈 기타의 신기원을 연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는 그지만, 탁월한 기타 실력과 함께 겸비하고 있는 그런 대중적 감성이야말로 웨스 몽고메리를 다른 재즈 기타리스트들과 구별시켜 주는 중요한 기준점이다. 실제로 그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찰리 크리스천의 레코드를 들으며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고, 고향 클럽의 기타 연주자가 되고 난 다음에도 공장 일을 겸하며 아내와 일곱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이었으며, 평생 술과 마약을 멀리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요컨대 그는 괴팍한 천재나 고고한 엘리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자신의 연주처럼 살았고, 자신의 삶처럼 연주했다.




웨스 몽고메리의 죽음을 전후하여 재즈는 대중 예술로서의 영향력을 급격히 잃어가기 시작했다(<위플래쉬>나 <라라랜드>가 조형하는 이미지를 보라). 물론 그가 살아 있었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말년엔 팝 음악에도 발을 걸쳤을 정도로, 애초에 재즈라는 장르에 완고한 자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씬을 이끌어나가는 뮤지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웨스 몽고메리에게는 '재즈 뮤지션'보다 '재즈 씬에서 활동한 기타리스트'라는 호칭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런 유연함이야말로 그의 재즈를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을까. 그는 '그것은 재즈가 아님'을 떠들기보다, '이것 역시 재즈'임을 보여 주는 사람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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