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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Nov 14. 2024

새해 계획은 더 느려지는 것

원래의 속도를 찾아서

원래의 속도를 찾아서.   


  

“강사님, 저는 원래 강의 준비를 15일 이상 했던 사람이에요. 그 강의안을 짜는 것만 해도 수십권의 책을 읽고요. 그리고 난 뒤 강의 시연을 강의시간만큼. 예를 들어 2시간이면 2시간 동안 해요. 그리고 그것을 강의 직전까지 매일 반복하는 거예요.”     




그 말을 하고서야 내가 그렇게 강의준비를 했던 사람이었던 것이 기억났다. 말은 생각보다 빠른 걸까. 사실 남의 글의 피드백을 해 주는 것도 그랬다. 한 명의 글을 며칠 동안 보고 피드백을 썼다가 지웠다. 프린트해서 보고 모니터로도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 키즈카페에 가서도 마트에 갈 때도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사실 그렇게 일을 해도 내가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100만 원 남짓이었다. 원하는 작가의 글을 읽는 대신, 원하는 글을 쓰는 대신에 내가 했던 강의나 피드백이 주는 수입은 생각보다 적었다. 물론 당시에는 작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치킨 한 마리 값 이상 글로 번다는 것에 매일이 감사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니 최근에는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게 되었다. 업무는 일단 처리하면 돈이 된다. 그러니까 피드백은 많이 할수록 많은 돈을 벌고, 강의는 많이 할수록 강의료를 자주 받게 된다. 내가 처음에 집착했던 그 퀄리티, 또는 정성 같은 것은 정말 나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점점 생산성에 집중하게 되었다. 모든 일을 5시간에 걸쳐서 해야 할 일을 4시간에 걸쳐서 끝내면 그것을 뿌듯해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최근 '슬로우 워크'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으로 인해 여러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나온 부분 중 아주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는데 4시간에 걸릴 일을 8시간으로 계획을 짜고 하루가 걸릴 일은 이틀로 짜라. 그리고 그 퀄리티에 집중하라 라는 내용이 있었다.     

퀄리티라. 퀄리티가 와닿은 건 아니었는데 일하는 시간을 천천히, 더 많이 할 것은 왜인지 아주 공감이 갔다. 왜 내가 항상 시간을 줄일 방법만 생각했던 걸까? 그러면서 생산성이 높아진 거라고 생각했을까? 진짜 중요한 것들. 내가 해야 하는 브런치 글쓰기는 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강의 준비를 조금 더 길게 하기로 했다. 끝나면 끝이 아니다. 내가 끝을 내야 일은 진정으로 끝이 난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하나의 일을 길게, 제대로 하자. 시간표를 짤 때 쫓기듯 짜지 말자. 내가 정말 중요한 것 이외의 일들을 제거하자. 그리고 중요한 일을 아주 길게 하자.      

사실은 이제는 강의와 피드백을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돈벌이 이상으로 그것들이 내게 주는 가치가 커졌다. 그러니까 조금 더 길게 해 봐야지. 느리게, 길게. 시간을 가지고 꼼꼼하게. 천천히 일을 하자.      


4시간에 끝낼 일을 8시간 동안 하기. 8시간 동안 끝낼 일을 이틀에 거쳐서 끝내기.      


아주 멋진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중요한 것들을 먼저 하고 그 뒤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게 서서히 자리를 내어주지 않겠다.      

강의. 피드백. 산책. 신문 읽기. 책 읽기 같은 것들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시작해 보자. 슬로우. 슬로우. 원래 느리지만 더 느려지기.


몇몇 내게 바쁨을 자랑하는 이들의 얼굴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이내 고개를 젓고 춤을 추는 나를 떠올렸다. 그들이 내게 바쁨을 자꾸 이야기하는 것은 1. 내가 힘든 걸 알아달라. 2. 습관적으로. 3. 나 대단하지 이렇게 3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원래 느리고 사실은 그런데 최근에 일이 너무 많아져서 잠시 일을 빠르게 하는 것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게 일을 잘하지 못한다. 이왕 일은 많아지고 있고 나는 이 모양 이 꼴이니, 조금 더 일을 느리게 해 보겠다. 더 집중해서 느리게 최상의 성과를 내보자. 아주 아주 오랫동안 빛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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