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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장어는 포장마차 안에 있고 나는 커피숍 안에 있고

포장마차를 싫어하는 사람 있나요

by 김필영

자신이 없다.

수많은 일들을 벌려놓고 자신이 없어질 때면 어김없이 키보드 위에 손을 얹는다. 매번 이렇게 글쓰기에 빚을 지는 줄 알면서도 결국 괜찮아지기 위해서는 뭐든지 적어야 하는 걸 알기에.








어제 강사님 몇몇 사람과 함께 1차로 돈가스를 먹고 2차로 포장마차에 갔다. 포장마차에서 곰장어를 시키고 맥주 두병을 시켜서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때마침 강사님 한 분이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고, 그 비밀 이야기에 나도 뭔가, 뭐라 뭐라 대답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대화가 끝나고 다른 강사님 한 명이, 내게 물었다.

“강사님은 고민이 없어요?”




흠, 고민을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떠오르지 않았다. 내게는 고민이 없는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매일 사투를 벌이면서 하루도 몇 번씩 업에 대해 이게 맞나, 이렇게 일을 계속하는 게 맞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고민한다. 그리고 업에서도 대표 업무를 하고 있을 때면 창작자 업무로의 시간이 부족한 것 같고, 외부강사로 뛸 때면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결국 이것을 할 때는 저거가, 저거를 할 땐 이것이 그리워진다. 그러면서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러면서도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는 내 가치를 지키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 고민을 많이 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것을 어떻게, 그 곰장어 앞에서 풀어야 할 것인지 당최 그냥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웃고, 생각이 나면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언제까지 그렇게 격식을 차릴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 강사님의 말이 호의가 섞인 말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지만, 나는 나대로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게, 대답은 ~습니다 체로 하는 게 편하다. 남편과도 결혼 9년 차 서로 존댓말을 하는 사이이고, 내 주위에 모든 사람은 내게 이름으로 통한다. oo강사님은 내게 강사로 존경하는 분이지만 그렇다고 내게 언니나 오빠나 이런 사람은 아니다. 아니 사실은 내게 그런 사람은 없다. 언니나 오빠가 아니더라도 나는 이름으로 모두를 존중한다. 나이와도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오가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사회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VS 상관없다는 주제가 방송에 나온 적이 있다며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두 강사님은 모두 아르바이트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나 역시 그 부분은 동의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자란 사람은 가정에서 제대로 모든 부분을 습득했을 수는 있지만 안 좋은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으므로 아무래도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는 게 훨씬 더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그 부분에서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으로는 의문이 가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남편이다. 나는 사실 아르바이트를 꽤 많이 하고 자랐다. 어쩌면 그곳의 두 강사님보다 억세지는 않지만 아르바이트의 종류로만 따지자면 내가 더 많을 수도 있었다. 사소한 아르바이트까지 더하자면 부동산에서 공실을 체크하는 전화 아르바이트를 비롯해서, 모델하우스에서 사무직도 했고, 아파트 분양상담사도 했다. 영화관 아르바이트, 술집 서빙 알바와 낙지집 알바, 그리고 커피숍 알바 등등. 하지만 나는 사실 사회성이 좋지 않다. 사람들과 쉽게 잘 어울리지 못하고, 립서비스도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 누군가에게 그런 핀잔을 듣지 않았지만 그 정도는 내가 아니까.

20대 초반, 휴대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시절, 엄청 슬픈 날이었는데 명의변경을 처리하고 신분증을 복사하며 눈물을 꼭꼭 참다가 억지로 웃으며 업무처리 다 됐다며 손님에게 안내를 했다. 그 손님이 가고 나니, 환멸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그 외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런저런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도 목소리도 못 냈던 그런 일들이 나의 사회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과연 했을까. 아니 어쩌면 사회성이 아닌 부분에서 나는 좀 더 강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편은 아르바이트를 거의 하지 않고 자랐다. 가족 간의 사이가 좋은 편에 속하고 부모님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컸다. 그래서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나보다 덜하고, 무엇보다 소중한 지금의 우리 가족을 진심으로 아껴줄 줄 안다. 그리고 심지어 교우관계도, 나보다 좋다.

그래서 이런 것은 아르바이트 만으로 단편적으로 결과를 내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생각을 나 혼자서 했지만 그들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말하지 않은 건 아닌데 무슨 말이든 첫 시작을 하려고 하면 단어들이 춤을 췄다. 무슨 단어가 맨 앞에 올래? 다들 두 번째 세 번째에 서서, 첫 번째 단어가 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 나는 별 수 없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나 할까.






술을 마신 곳은 포장마차였는데 포장마차를 17년 만인가 처음 가보았다. 시끄럽고, 메뉴는 늦게 나오고, 주인은 할머니셨는데 자꾸 주문을 잊으시고. 계산할 때는 소자를 먹었는데 대자를 먹었다고 대자요금을 결제하려고 해서 여러 번 소자라고 말씀드려서 결국 소자로 결제를 했다. 옆 곰장어는 꺼낼 때마다 내 옷에 물을 튀고.

강사님들 두 분의 텐션은 너무 밝고. 너무 부럽고. 나는 그곳에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계속 곰장어의 물에 맞으면서 그곳에 시끄러움에 끝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메뉴가 하나 나오지 않았지만 큰 소리로 말하지 못했다.

이모, 고갈비가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라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34번째쯤 하는 사이 술자리가 끝이 났다.

처음에는 밝은 강사님 두 분이 부러웠고, 중간에는 포장마차가 싫었는데, 술자리가 파하자 내가 싫어졌다. 아, 진짜 최악이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나이네. 결국 고갈비는 나오지 않았고, 고갈비 값을 지불한 것도 아니지만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고갈비가 있다.

그 강사님 둘과의 대화도 여전히 머릿속에 가득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예의만 차리다가 그곳에 앉아서 곰장어가 튀긴 물에 맞으면서 점점 작아지고 있는 나.





다음 날, 아침이 되니 그냥 모든 게 팔자소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스레드에 조심히, 포장마차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냐고 글을 올렸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포장마차도 시끄러운 장소도.

스레드에서 위로를 받다가 문득 생각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려본다.

그러니까,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고갈비도 포장마차도 함께 한 사람들도 곰장어도 아무 잘못이 없다. 그냥 취향 차이. 성격 차이. 나도 나대로, 이런 사람도 있는 거니까.


우리가 먹은 곰장어는 생을 마감했고, 나는 아직도 여전히 앉아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 어제 가치 없다고 생각한 나. 이런 나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증명하기 위해, 혹은 이런 취향도 있음을 알리려고, 혹은 같은 취향의 사람을 찾으려고 이렇게 글을 쓴다.



포장마차가 그곳에 있고 곰장어는 포장마차 안에 있고 그 안은 시끄럽고 나는 조용히 조용하고 넓은 커피숍에서 글을 쓰고 행복하고 그냥 그게 모두가 만족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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