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내는 일이면
최근에 4대 폭력 예방교육 강의를 진행했다. 글쓰기 수업과 글쓰기 수업 사이 우두커니 적힌 4대 폭력예방교육 강의라고 적어놓은 캘린더를 째려보면서 그 난생처음 진행하는 낯선 강의를 준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실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법정의무교육 그거. 누가 제대로 듣기나 하냐고. 하면서 대충 정해놓은 자료를 가지고 짜깁기해서 줄줄 읽어 내려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강의를 많이 나가고 있었으므로 나름 무대에 서는 게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찰나였다.
주위에 다른 강사님 몇 분에게 질문했을 때에도 그냥 유튜브 보고 있는 자료를 보면서 만들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문득 내가 겪었던 몇몇 성희롱과 성추행 사건들이 떠올랐다. 너 못생겼어.라는 말부터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팔을 못 움직이게 하고 강제로 당했던 키스와, 모 선생님이 볼을 꼬집으면서 귀엽다고 했던 일까지. 생각해 보니 끔찍했다.
그리도 또 하나. 작년 하반기 계속해서 뉴스 지면을 채웠던 딥페이크사건. 아, 얼마나 열이 받고 화가 났던지 조선일보 칼럼에도 한번 쓴 적이 있었지만 피해자가 숨는 현실.
그래서 제대로 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먼저, 휴넷이라는 사이트에서 과거 팔로워십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꽤 괜찮았기에 이번에 4대 폭력 교육도 검색해 보았다. 오 있다! 금액이 12만 원이 넘어서 내가 받는 강의비에서 이 금액을 빼면 금액이 너무 작아지지만 그럼에도 신청해서 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강의가 아닌 방송느낌? 듣는 사람으로는 괜찮았는데, 전달자로서는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민하고 있던 찰나, 4대 폭력 강의를 포함한 법정의무교육을 많이 나가는 교육업체 대표님을 알게 되었다. 그 분과 블로그로 소통한 뒤 1대 1 수업을 듣게 되었다. 강의료는 50만 원이었는데 (금액은 나중에 변경되었지만 비밀로 하겠다.) 하루 종일 강의를 진행해 주기로 해서 금액이 합당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것까지 결제를 한다면 이미 내가 받기로 한 강의료가... 고민을 했지만, 그럼에도 신청했다.
그리고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 강의를 정말 듣기를 잘했다는 것을. 아주 심도 있게 4대 폭력에 대해 알려주셨고,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해 대답도 정말 잘해주었다. 중간중간 내가 전달자로서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었다.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6시간쯤을 들었다.
또한 대표님께서는 며칠 뒤 다시 줌으로 시연하는 것도 보시면서 피드백을 해주었고 내게 필요한 정보들도 덤으로 주었다.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다. 동시에 조금은 이제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분의 5시간이 넘는 강의를 녹화를 하고, 2배속으로 빠르게 매일 듣는 나날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안해서, 그분이 했던 멘트를 다 녹음해서 프린트해서 읽어 내려갔다. 내가 항상 새로운 과목을 강의하거나, 공부할 때 하는 방법인데, 대사를 그대로 따라 하면 그 강사 고유의 말투와 흐름을 빼길 까봐 스스로 불안했던 때도 있었지만 여러 번 이 방식으로 해본 결과 오히려 아니다. 오랜 기간 현업에서 강의한 공부한 분의 말을 그대로 여러 번 따라 하다 보면 알맹이를 알게 된다. 알맹이를 알게 되면 머릿속에는 '내 말로' 더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그래서 그 프린트한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강의 D-3. 주변 강사님 한 분께 시연을 해보았다. 뭔가 괜찮아지긴 했는데 그럼에도 너무 교육 같은 교육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현재를 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당시, 예전에는 내가 신문을 읽지 않았으므로 생생한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때, 내 주변 경찰들이 떠올랐다. 나는 비록 경찰이 되지 못했지만 현업에서 10년 넘게 경찰로 활동하고 있는 든든한 내 친구들.
그들에게 전화해서 이런 교육을 하는데 이게 실무와도 맞냐고 여쭤보고 지금 현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래서 관련된 내용을 추가하니, 조금은 살아있는 강의가 되는 듯했다.
그리고 강의 전날, 강의를 쭉 보다가 아무래도 활동을 추가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80명 가지고 활동을 하는 게 조금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대표님이 알려준 멘티미터를 활용하기로 했다. 이것 역시 결제를 해야 했는데 1년 결제가 16만 원쯤이 되었다. 이제 이쯤 되면 내게 강의료는 의미 없는 돈이 되었다. 그냥 이걸 보상받으려면 무조건 잘해야 한다.
멘티미터 활동을 4시간 교육시간 중 3개를 넣고 영상을 곳곳에 배치를 하고 2번 정도 시연을 했다. 강의 전날 밤 12시. 다음날 교육 때 입을 옷들을 꺼내서, 스타일러에 넣어두었다. 아침 10시 교육이 시작되었다.
그들에게 아주 재미가 없을 4대 폭력예방강의가 내게는, 마치 20대의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 권력에 의해 발생하는 수많은 불평등.
빠르게 4시간 강의가 끝났다. 더운 여름날. 또 하나의 고개를 넘었다.
이 강의를 진행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질문에 해당하는 답을 말이다. 나는 글쓰기강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물론 어제도, 그저께도 글쓰기강의를 했지만 말이다. 단순히 그런 기술만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사용해서 누구나 쉽게 목소리를 내길 바랐다. 자신만의 고유한 내면의 마이크를 켜서 사용하길 바랐다.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 과거에는 글쓰기 밖에 없었고, 그 뒤 시간이 지나고는 글쓰기강사로, 작가로 목소리를 냈다면, 이제 수많은 강의로 내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뭐지? 난 뭐 하는 사람이고, 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하지?라는 의문이 늘 있었는데 이번 강의로 그것은 목소리를 위해서였음을 깨달았다.
나는 글쓰기강사이다. 작가이다. 하지만 다른 무언가도 될 수 있다. 나는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에 서고 싶고, 그런 공간에 내 생각과 가치관을 표현하고 싶다. 또, 누군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
비록 강의를 하고도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았지만, 사실은 강의를 할 때 강의준비 비용이 강의료보다 자주 많이 들지만 그럼에도 생각보다 잘 살고 있다. 지금도 커피숍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호사스럽게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셀프리더십, 글쓰기, 4대 폭력.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무대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내가 부끄럽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