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세입자가 불편한 바닥공사를 받아들이는 방법
6월부터 시작된 바닥 공사. 공사 일은 실제로 며칠 걸리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던 먼지가 폴폴 날리는 집에 들어가서 자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되어 바깥 생활을 생각보다 오래 하게 되었다. 불편한 것은 생각보다 더 불편하다. 세입자인 나만, 피해를 보는 것 같다는 억울한 마음이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번 공사 건. 그냥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숙소 역시 아주 싼 곳을 뒤지면 5만 원대 숙소를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면 일주일 정도라면 35만 원에 해결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하루는 풀빌라, 하루는 해운대, 하루는 일광 신도시. 내 친 김에 변화된 신도시 (예전에 사려고 했지만 놓친 것을 한탄하며) 구경도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숙소도 엄청 비싼 호텔 바로 옆(그러니까 엄청 비싸지는 않지만 나름 가격이 나가는)에서 머무르고 있다. 옆에는 바다가 펼쳐지고, 외부 수영장도 하루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어제 가족들과 함께 호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지금은 아이들을 보내놓고 혼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내일까지 머무를 예정이다.
바닥공사로 시작된 엉뚱한 일광신도시 숙박은 부산 에코델타시티로 임장을 가게 만들었고, 내친김에 모델하우스까지 둘러보게 되었다. 더현대가 생긴다는 것을 마침 또 일광신도시 숙박업소에 들고 간 신문을 통해 알게 된 것도 있었다.
그러니까, 6월부터 시간이 내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원래의 나는 집에만 보통 있고, 이사 와서도 바다나 조금 왔다 갔다가 하고, 정해진 루틴 같은 것은 없어도, 크게 오차범위가 많은 인간은 아니었다. 밤에는 주로 글로성장연구소 일을 하고, 밤늦게까지 외부강의 교안을 만든다. 외부강의도 오전이나 낮에 있을 때가 많은데 그때도 지하철을 보고 가장 빠른 길을 탐색한 뒤 강의만 하고 곧바로 집으로 오기 바쁘다. 다음 스케줄이 내게는 늘 있으니까. 그것이 꼭 일이 아니더라도. (하지만 대부분 일 관련인 것 같다.)
아파트를 구경 가고, 이 아파트의 미래를 그리며 모델하우스를 살펴보고. 집이 아닌 곳에서 일주일씩이나 머무르고. 머무른 김에 그곳 주위를 산책하면서 앞으로의 투자가치를 따져보고. 호캉스를 홀로 즐길 때도, 아무리 좋은 호텔이라도 물놀이는 하지 않는 편인데, 가족 모두와 호텔 수영장에서 계속 수영을 하고. 매번 다른 숙소를 예약해서 가고.
마치 내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멀리서 구경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평소 글쓰기를 할 때도 새로운 시도를 하라고 사람들에게 말을 많이 하지만 기껏해야 내 새로운 시도는 산책의 길을 조금 바꾸는 것. 늘 가던 커피숍에서 메뉴를 변경해서 시키는 것 정도였다. 이렇게 부동산을 알아보고, 매일 수영복을 입는, 그런 시도는 상상에서도 없었는데. 내가 아닌 다른 영혼이 내 안에 머무르고 있는 걸까?
또 지난 토요일에는 친한 기획자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장소는 울산이었고, 내가 아는 이는 거의 없는 결혼식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전혀 뻘쭘하지 않고 (덥긴 너무 더웠으나) 옆에 앉은 사람에게 자꾸만 말을 시키는 이상한 나를 발견했다. 실제로 결혼식이 시작되고 끝나는 동안 아주 당당하게 그곳에서 나는 하객으로 머물렀다. 밥도 두 그릇이나 먹으면서 말이다.
아니, 이런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 얼마나 내성적이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고, 쉽게 뭔가 바뀌지 않는 사람인지 스스로는 잘 아니까 변화가 낯설다. 그래서일까. 배가 급류를 타고 휙 흐르는 게 연상되지 않고 자꾸만 그 급류를 멀리서 바라보는 내가 떠오른다. 어 빠르네. 괜찮겠어? 혼잣말을 하는 나.
어어어어? 하는 사이 6월이 10일이나 지났다. 실제로 6월에 일을 많이 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집을 떠난 공간에서는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기는 어려웠다. 대신에 여기저기 살펴보고, 많이 걷고, 새로운 곳에서 잠을 잤고, 새로운 결정도 몇 가지 내렸다. 10일 동안 꼭 해야 하는 일. 신문사 칼럼은 마감을 해서 보내드렸다. (그래, 그러면 된 것 아닐까.) 제대로 쉰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이렇게 조금 다른 결로 살게 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 내게는 10일을 돌이켜보니 필요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6월 1일부터 10일까지 돈을 참 많이도 썼다. 일주일씩 집에 못 들어가면서 호텔비용뿐만 아니라 식사 역시 바깥에서 많이 해결했기에. 200만 원은 썼지 않을까. 5월에 많이 벌어놓은 돈이 6월에 그렇게 다 날아가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흥미롭다. 6월은 아직 20일이 남았고, 내게는 어떤 변화가 남아있을지. 나라는 인간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을까.
6월이 두근두근 설렌다. 혹시 새로운, 엄청난 변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바다 수영을 즐기며 서퍼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책에서 치즈 창고를 발견하고 난 뒤 그곳에 머무르며 치즈나 먹는 작은 인간 두 명보다, 계속 새로운 곳을 쿰쿰 거리며 치즈를 미리미리 찾아 나서는 쥐가 되고 싶다. 어쨌거나, 지금 내 소비가 치즈를 찾는 소비인 지 분명치는 않지만..
내친김에 시애틀에도 (정말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