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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홀로 우는 강사입니다

심각한 무기력과 싸우는 날

by 김필영





아침 7시 20분.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깨달았다. 오늘은 그날이다. 심각한 무기력과 싸우는 날.

나도 이걸 한때는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정말 오랫동안 나 자신을 탓했다. 하지만 글을 쓰고 난 이후부터는 조금씩 달라졌다. 이런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최대한 노력하는 방식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용서’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루 종일 많은 일을 해내지 못해도,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낼 나 자신을 미리 용서하며 시작하는 하루.







7시 55분까지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자고 있던 아이들을 깨웠다.

“엄마가 오늘 늦게 일어났어. 우리 늦었으니까 빨리 준비하고 가자.”

아이들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리 없다. 결국 나는 얼굴에 로션도 바르지 않은 푸석한 상태로 5분도 안 돼 소리쳤다.

“늦었다고! 빨리 일어나라고!”

그제야 아이들이 일어나고, 나는 부랴부랴 아이들 옷을 입혀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괜찮아 보였지만, 물통을 씻지 않은 게 생각났다. 그래도 괜찮다. 걸어가다 보면 편의점이 있으니까. 아이들과 종종걸음으로 편의점에 들렀다. 아이들 아침으로 우유를 사주고, 그 사이 물 두 개를 골라 뚜껑을 따서 가방에 넣어주었다. 아이들이 고른 마이쮸도 가방에 넣어주었다. 편의점을 나서니 25분. 30분까지 교실에 가야 한다. 아이들을 서둘러 학교에 보내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3분 카레를 데워 아침을 때웠다. 친정엄마와 30분 넘게 통화를 하고, 멍하니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하지만 얼굴이 간지럽고, 긁으면 아프기까지 했다. 로션을 찾을 힘도 없다. 마침 손에 잡히는 아이들 바디로션을 얼굴에 듬뿍 발랐다. 그리고 종이신문과 노트북을 챙겨 집 앞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런 날에는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걸 알기에.








스타벅스에 도착해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그중 우선은 내일 묵을 숙소를 정해야 했다. 지금 머무는 아파트는 신축 전세인데, 바닥이 수평이 맞지 않아 내일 공사를 진행한다. 생각보다 큰 공사라 3일에서 일주일가량 걸릴 수 있다기에, 어쩔 수 없이 바깥 생활을 해야 한다.

아이들은 수영을 하고 싶어 한다. 해운대 주변 가성비 숙소를 검색하며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괜찮은 숙소는 비싸고, 저렴한 곳은 이미 마감.

‘나는 왜 이런 걸로 시간을 보내고 있나’ 싶다가도, 집주인을 생각하면 당연히 공사를 해야 하는 일인데, 오늘따라 모든 게 짜증스럽다. 결국 조금 비싼 풀빌라로 예약했다.








하루 종일 힘이 없고, 무기력하다. 이미 오전부터 좋은 엄마는 아니었고, 앞으로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 실패작이다. 정말, 나라는 엄마. 이 와중에도 일 욕심은 얼마나 많은지, 이번 주 내내 외부 강의가 잡혀 있다. 수요일인 오늘을 제외하고 월, 화, 목, 금 모두. 그런데 그 강의들이, 모두 ‘나만이 할 수 있는 강의’인가? 물어본다면, 잘 모르겠다.







어제는 모 센터에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감정 회복 실천 가이드’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벌써 다섯 번째 강의였다. 반응이 좋아서인지 감사히도 매달 그 주제로 강의가 이어지고 있다.

인생 2막은 정해진 답이 없기에, 스스로 탐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3시간 수업 중 활동 시간이 긴 편이다. 나 역시 답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늘 습관처럼 정의를 내리곤 했는데, 어제는 달랐다.

어떤 노래를 하나 들려주고,

“이 노래에서 말하는 OO은 여러분에게 무엇일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 이야기를 인생 2막의 방향성과 자연스럽게 연결해보려 했다.







감동의 클로징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내가 울컥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여러분, 처음에 보여드렸던 배 사진 기억하시죠? 제가 2막에는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말은 쉽게 했는데요… 방향성을 정한다는 것, 하루하루 어떤 선택을 할지 정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저도 매일매일 이 방향이 맞나 고민하면서 살고 있어요.”


말을 멈추고, 눈물이 차올라 잠시 숨을 골랐다. 몇몇 학습자,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던 분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었다. 그 순간, 그 공간은 하루가 지나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선생님들, 오늘 이야기들을 강의가 끝나고도 꼭 스스로에게 대입해 보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박수를 받고 강의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삶은 계속된다. 나는 오전에는 나쁜 엄마였고, 오후에는 미지근한 엄마였다. 그래, 어쩌면 아직 저녁이 남아있을지 모른다. 날마다 새로운 선택을 하고, 조금씩 나아가면 된다. 밤에는 아이들을 더 사랑해 주고, 안아주자. 사는 게 쉽지 않다. 쉽지 않을 때마다, 이렇게 타자기 앞에 손가락을 염치도 없이 갖다 댄다. 평소엔 일할 때만 쓰던 손가락을.


너무 심하게 바보 같을 때, 길을 잃었을 때, 내가 싫어질 때. 나를 용서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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