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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익화의 세계가 있다고?

저는 35살 작가 흥부입니다.

by 김필영
흥부님의 6월 카드값은 504,990원입니다. 6월 5일 인출 예정입니다.





‘아, 카드값을 어디서 구하지. 이제 리볼빙도 막혔는데 하….’

흥부는 눈앞에 있는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이거라도 팔아야 하나….’

어쩌면 노트북이라도 팔면, 정말 5만 원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노트북을 팔기엔 망설여졌다. 이걸로 글을 쓰고 있는데 노트북마저 없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침을 꼴깍 삼키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모니터에 살짝 비치는 내 모습이 오늘따라 더 늙어 보인다. 며칠 깎지 않은 수염 자국, 이미 생기기 시작한 이마 주름. 퍼석퍼석한 모공과 입가에 유독 처진 피부. 그리고, 흐리멍덩한 눈동자.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떠오르는 사람이 놀부밖에 없었다. 휴대폰에 최근 통화 목록을 눌렀다. 첫 번째로 통화한 사람도 놀부고 두 번째 통화한 사람도 놀부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한숨을 한번 쉬고 전화기 모양을 눌렀다.

세 번 정도 신호음이 가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반박자 빠르게 놀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흥부야. 왜? 또 돈 없어?”

“형, 미안해. 이번 달까지만….”

잠시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담배를 피우는 거겠지.

“흥부야. 너 이제 서른다섯이야. 지금까지 100만 원이 없어서 나한테 전화를 거는 게 말이 돼?”

“......”

정말 말이 안 된다. 35년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는데 그깟 100만 원이 없어서 형에게 전화해야 한다니. 아니. 이번 달을 어떻게 형이 내준다고 해도 다음 달에 또 돈이 없어서 형에게 전화하겠지? 이게 올바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글쓰기 강사이자 책을 7권 출간한 작가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강의를 다니고, 작은 커뮤니티도 운영한다. 한때 나도 이 정도면 글로 먹고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강의가 갑자기 코로나 때부터 조금씩 줄더니 완전히 끊겼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람이 있지만 점점 빠져나가더니 이제는 100명 남짓한 인원만 남아 있다. 그마저도 대부분 본인 홍보만 하지 글다운 글은 올리는 사람이 없다. 책은 7권을 냈지만, 계약기간 5년이 지나고 현재는 3권만 팔리고 있다. 그렇지만 3권도 뭐…. 1쇄에서 막을 내렸으니 거의 팔리지 않는다. 8번째 책은 곧 출간이 된다. 나는 계속 책을 낼 수 있지만 책이 팔리지를 않는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벌 수 있는 경로가 없다.

조금만 일찍 태어났었어도…. 바람이 부는 곳에서 하하 호호 웃으면서 서원 같은 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하루 종일 글만 쓰고도 생활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1988년에 이렇게 가난한 흥부로 태어났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지난 1년간은 생존을 위해 대필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 정치인의 대필에 참여했는데, 금액은 800만 원. 두둑이 챙겨 받을 줄 알았는데 그 정치인이 결국 투표에서 당선이 되지 못했고, 내게 80만 원밖에 줄 수 없다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누군가의 자기소개서와 유튜브 대본을 대신 써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앵벌이가 아닌 글 벌이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그래도 집에는 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수도세, 가스비, 집세도 내야 했고, 애들 학원비도 내야 했다. 아이들과 아내는 항상 돈이 없는 나를 원망했다. 아빠도 놀부 삼촌처럼 부자일 수는 없냐면서, 새로 나온 게임이 갖고 싶다고 했고 전교생 중에서 해외여행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아내와 나는 결혼식을 하며 신혼여행도 갔다 오지 못했고, 그때 당시 다음 해에 가자고 미뤄놓았던 신혼여행지는 그다음부터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때 만든 여권은 아직도 도장 하나 찍히지 않고 귀와 이마가 보이는 모습을 한 내 사진만 있다. 하, 그때 비하면 또 지금 아주 많이 늙어버렸다.

“돈은 보냈다.”

딴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놀부의 말이 귀에 들렸다. 그 말이 나올 때까지 걸린 침묵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혹시 이번에는 거절당할까 봐 마음 한편이 쪼그라들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게 중요하다. 이 돈으로 빨리 카드값을 내야 한다.

“형 고마워. 정말. 내가 다 갚을게 꼭.”

“... 네가 갚는다고? 무슨 수로?”

“형 내가 이것저것 지금 하고 있거든. 글쓰기로 이것저것….”

“흥부야.”

놀부가 약간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흥부야. 내 말 잘 들어. 계속 똑같이 살면 똑같은 결과가 나와. 세상이 변하지 않는 한 당연한 거야. 세상이 변하면 똑같이 살아도 다른 결괏값이 주어지기도 해. 근데 그러려면 세월이 10년 넘게 지나야 해. 네가 지금 매일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쓰고 글을 팔면, 지금처럼 살게 되고 내 돈은 평생 못 갚는 거야.”










똑같이 살면 똑같은 결과만 주어진다? 형의 말을 듣고 그래도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형 놀부가 했던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건 글쓰기에 관련한 말이 아니었다. 인생 전체에 대한 조언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이 경계선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렇게 살다가,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삶을 보여주고, 물려주게 될지도 몰랐다. 이 말의 뜻을 깨닫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도 글로 돈을 벌어야 했다. 오늘의 과제는 뺑소니 사건에 대한 반성문을 쓰는 것이었다. 의뢰인은 내게 말했다.

“예전에도 음주 운전으로 이런 적이 있었어요. 다시는 술을 안 마셔야지, 술 마시고 운전대 안 잡아야지 했는데 이번에 또 저질렀네요. 이것에 대해 법원에 제출할 반성문 써주세요. 저번에 잘 써주셔서 이번에 특별히 또 부탁드려요. 흥부 님. 돈은 저번처럼 1,000자에 5천 원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문자창을 닫고 음주 운전을 반성하고,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고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는 말을 중심으로, 있었던 일과 함께 적어 내려갔다. 그날의 구체적인 상황, 친구들과의 대화, 집까지의 거리 대리기사가 없었던 이유 같은 걸 메모에 적어둔 내용을 참고하여 써 내려갔다. 타인의 고백을 내 말처럼 바꾸는 일이 점점 익숙해지는 게 슬펐다.

‘지난주 금요일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원래는 술을 마실 생각이 없었지만, 그날은 마침 고등학교 때 친구들도 모두 모여서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고야 말았습니다…. (중략)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면 제가 앞으로 다시는….

어? 쓰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아니다. ‘이 사람은 또 반복될 거야.’

분명히 느껴졌다. 이 사람은 분명히 또 음주 운전을 할 것이다. 다른 도시로 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상황에 부닥치지 않는 한 늘 술을 마실 것이고 운전대를 잡을 것이다. 놀부의 말이 이런 것을 뜻하는 거였을까? 똑같이 살면 똑같은 것만 주어진다! 맞았다. 나 역시 똑같이 늘 책을 내고, 글을 쓰고, 단가가 싼 연속성 없는 글쓰기로 돈을 조금씩 벌고, 생산자가 아닌 늘 일감을 받아서 글을 써주는 구조로 일을 하다 보니 글쓰기로 돈을 버는 것이 잘되지 않았다. 나는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한다. 이것이 뭘 뜻하는가? 늘 이 금액대를 벌 것임을 뜻한다.








음주 운전을 하는 사람이 끊으려면 사는 곳과 친구 모든 상황을 바꿔야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상황이나 배경을 바꾸던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패러다임을 변화하지 못하면 나는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다….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돈을 못 버는 것이 확실해졌는데 갑자기 웃음이 났다.

“여보, 나 잠깐 산책 좀 하고 올게.”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이 생각을 쫓아가면 마치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부자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냥,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고 싶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는 꼭 하고 싶고, 글로 돈을 벌고 싶다. 내 바람은 살을 다 바르고 나면 이 한 줄의 뼈가 남았다. 글로 쓰고 버는 삶.

여천천을 따라 쭉 걷다가 보니 새롭게 만들어진 신축 아파트가 보였다.

‘이런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나도, 패러다임을 바꾸면 충분히 살 수 있어! 하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그럼에도 계속 걸어보았지만, 마땅히 뭘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떠오르지는 않았다. 태양이 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휴대폰을 다시 켰다.

늘 가던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곳에 자주 베스트 글을 담당했던 제비님이라고 있는데 오늘 글은 제목이 솔깃했다.

‘여기도 작가님들 계시나요? 작가님들이라면 꼭 읽어 보세요’ 글쓰기 수익화하기 첫 번째






오? 이건 나를 위한 글인가? 바로 클릭했다.

“작가님들, 글로 수익을 내려면 우선 도메인부터 사세요.”

응? 도메인을 사라고? 홈페이지를 만들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작가인데 왜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하는 거지? 하지만 제비는 작가일수록 자신을 홍보해야 하고, 그곳은 자기만의 땅이므로 거기서 서사를 쌓아가라고 조언했다.

글 뒷부분에는 도메인을 어디서 구매하면 되는지, 금액은 얼마면 되는지가 상세하게 올라와 있었다.

세상에, 이런 것을 하는 게 있다고? 도메인이라고 하는 건 회사나 공식 브랜드에서만 사용되는 거 아니었나? 그걸 작가가 가져야 한다니. 그 말이 생경하면서도 어쩐지 찔렸다. 나는 과연 내 글을 내 이름을 걸고 쌓아왔던 걸까? 문득 낯선 아파트 사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패러다임의 변화인 거지? 새로운 걸 하면 새로운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거지? 놀부 형이 했던 말인 거지?’

제비의 글을 정독한 뒤 캡처를 떠놓았다. 혹시라도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이 기세가 사라져 버릴까 봐 일단은 증거처럼 남겨두고 싶었다. 기분 좋은 바람이 훅하고 지나갔다. 우선은 카드값도 해결했고, 도메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글까지 보았다. 자, 그럼, 집에 가서 샤워한 뒤 한번 해 보자! 다시 한번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저기 17층은 확실히 햇빛이 잘 들어오겠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 방도 저 쪽에 햇빛 많은 방을 주면 좋아하겠지. 내 서재는 반대쪽에 있는 작은 방으로 하면….’

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로 가려면 조금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와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밝았다. 이제 막 한 걸음, 새로운 생각 하나 했을 뿐인데 오랜만에 흥부는, 묘한 자신감이 가슴 깊이 차오름이 느껴졌다. 지금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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